사람은 자기 생각에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런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그 신념의 온전한 근거와
배경지식들을 수집해야한다.
그래서 자기 주장이 분명해 져야하고,
무슨 일을 해도 확신있게 해야한다.
잘 모르고 무언가 일을 벌인다면 하나마나다.
자기의 결정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건.
그렇게 확고한 신념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틀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신념이 다른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사랑
을 실천하며 살 수 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롬 14:22)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 8:1-2)
별
로마서 4장 23, 24절.
제 마음속 어두운 밤 하늘에 그 분은 별을 심어주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심어주신 그 별을 제 어두운 마음 속에도 심어주셨습니다.
저의 어두운 마음은 저의 추한 죄입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깜깜하고 두려운 하늘입니다.
그분이 심어주신 별의 이름은 의로움입니다.
동방박사를 인도하였던 별과 같이 찬란하게 빛나고
그들이 그 별을 바라며 길을 가듯, 나도 언제나 바라보도록 만드는 고귀한 별입니다.
그 별은 어두운 하늘에 의미를 주었습니다.
별 하나가 있다고 해서 밤하늘이 환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별 하나로 인해서 어두운 밤하늘은 더 이상 두려운 하늘이 아닙니다.
아직도 나의 하늘을 바라보면 온통 어두움뿐이지만
하늘의 한 곳에는 그 분이 심어주신 의로움의 별이 환히 빛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밤이 되어도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두려울 때면 하늘 어딘가에 그분이 심어주신 별을 바라봅니다.
소망의 빛을 하늘 가득히 비추는 그 별.
그 별빛을 따라 오늘도
마음 속으로 조용히 노래를 불러봅니다.
내 마음을 비춰주신 그 분을 향한 노래를.
진정한 관심과 사랑
2000년 (대학부 주보에)
학교에서 IVF 를 그만둔지 한 학기가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교회일과의 겹치는 사정으로 남들 다 하는 그런 ivf의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다. 리더가 되기위한 LTC를 수료하지 못하고 3학년이 되었고, 화요일날 매주 모이는 예배도 학교수업, 교회모임으로 거의 못나가게 되니 나로서는 IVF 안에 소속해 있다는 것은 여간 어정쩡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정리했을 뿐더러, 아예 얼굴도 비치지 말자, 생각했다.
말하자면 나는 완전히 그만둔 것이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며 여간 찝찝한 생각들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생각들의 이유가 무언지 몰랐는데, 이제는 생각들이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실망하였던 것이다.
무엇에 대해서?
바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환아 이번학기는 소그룹모임 할 수 있겠어? ivf 그만하는 거니? 학번 모임 하는데 한번 나와라.’ 이런 말 한번 듣고 싶었던 문제였을까? 물론 그렇다. 단지 내가 IVF를 나가지 않은 이유로 나는 IVF 사람들에게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점에 실망하였고, 그나마 IVF에서 나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기대를 묵살당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IVF에게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실망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다. IVF 안에 있었을 당시의 사람들의 나에 대한 관심들은 ‘IVF안에 있는 나’에 대한 관심이었을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자체에 대한 관심과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것은 ‘조건부 관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IVF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IVF 안에 있는 너’에 대한 것이다.’ 그들과 나와의 가졌던 교제들은 ‘IVF’와 ‘IVF에 소속한 자로서의 나’와의 교제였지, ‘그들 자신’과 인간’김진환’과의 교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불행한 사실은 내 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군가의 존재자체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있나?
당장 내가 떠나버린 IVF 사람들에 가졌던 관심들도 사라져버린 것은 나 자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이런 점에서 총체적으로 실망하였다고 느낀 것이다.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들이 이런 조건부 관심과 사랑으로만 엮어져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때로 인간 사이의 관심과 사랑의 조건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소속’과 관련지어진다. 우리 대학부 안에서라면 ‘네가 대학부원으로서의 누구이기 때문에’ ‘네가 나의 순원으로서의 누구이기 때문에’라든지… 가족도 마찬가지다. ‘네가 나의 가족으로서의 누구이기 때문에’라든지. 그러나 ‘소속’하고만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면 문제의 깊이를 너무 얕게 본 것이다.
‘성격, 학벌, 재산, 외모’이런 것들과 관련되어 있는 사랑, 관심에 우리는 진저리를 친다.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한 ‘소속’과 관련된 사랑이 같은 종류의 성질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대제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소속’과 관련된 사랑이 어느정도 ‘조건없는 사랑’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속’과 관련된 사랑도 -안타까운 결론이지만- 본질상 같은 ‘조건부 사랑’이다.
어디까지의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관심이 이런 ‘조건’에 얽매이고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모든 조건에서 벗어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것을 인간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것일까?
성경의 해답은 간단하지만 또한 정답이다.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을 때, 우리는 그 분 안에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한번 여쭈어보라. ‘하나님 왜 나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아무 이유가 없느리라.’
이런 노래가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함이라, 나는 너를 사랑함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네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네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못잊어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내가 너를 영원히 사랑함이라.
하나님의 사랑의 이유가 있다면 사랑 그 자체가 이유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슴 사무치게 깨달을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건없는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가지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이러한 사랑의 문제가 어디까지 ‘조건’으로 얽매여 있는지 통찰력있게 바라보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의 문제를 얼마나 관심있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우리는 사람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변함없고 끝없는 애정과 관심은 사람들 누구나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하는 것이다. 사랑없는 이 세대에 우리도 공동체 내부지향적인 소속조건의 사랑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세상가운데 빛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조건없고 변함없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자기 순원, 양을 사랑하는 것이 나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누가 나의 순원이고 양이라는 것은 하나의 동기나 계기가 되어야 할 뿐 그 사랑과 관심이 ‘순원으로서의 누구’, ‘양으로서의 누구’에게 대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에서부터 사람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절실하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
상처
(대학부 주보원고)
상처가 생기는 것은
마치 유리그릇을 싱크대 위에서 떨어뜨려 깨먹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그릇을 일부러 떨어뜨려 깨뜨리고 싶은 경우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실수를 경험하게 됩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었는데 실수로 그릇을 깨뜨립니다.
깨뜨리지 말자, 깨뜨리지 말자 아무리 다짐해도 가끔은 그릇을 깨뜨리고
침착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가 생기는 데에는 떨어뜨린 사람 뿐만 아니라
그릇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릇은 가끔 잊곤 합니다.
그리고 실수로 떨어뜨린 사람을 상처를 주었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그 그릇이 쇠그릇이라면 어떨까요.
자신의 연약함을 강하게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실수를 용납해 줄 수 있는
너그러운 용서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좀 더 자신을 가질 수 있다면
그는 떨어져도 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처를 주지 말도록 더 조심해야 겠지만,
상처를 받지 않도록 너그러운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서로 겸손함으로 자신의 부족함, 상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상처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상담 프로그램
조금전 회계 장부 정리를 하며 라디오 방송을 들었습니다.
지난번 제가 소개했던 김영운 목사님 진행하시는 인생상담 함께 얘기해봅시다.
듣고 있는데 57세된 교회 집사님의 신앙상담이었습니다.
울먹이던 목소리로 자신은 어떤 개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을 자꾸 인간으로 보게 되어 판단할 때도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별 문제 없이 생각하지만 자신이 볼 때는
자기가 너무나 부족하고..
교회 아이들 가르치고 있는데(유치부 부장).. 자기가 너무 부족해서
힘들다고..
교회 목사님 때문에 옮기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앗는데
돌아가신 친정어머님이 교회 옮기지 말라하셔서 그러지도 못했다고..
이 목사님께서 뭐라 말씀하실까 궁금했습니다.
교회 목사님과의 어려움에서 교회를 옮기라고 하실까 아니면
말라고 하실까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목사님과의 어려운 이유를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제가 집사님 말씀을 죽 들어보니까요…
마음이 찡해지는게 느껴져요.
하나님께서요.
집사님을 참 사랑하실거 같은 그런 마음이 들어요.
요즘 세상에 교회생활하는 중에서요,
집사님 같이 교회에 충성하고 또 자신의 믿음을 부족하게 여기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이 참 귀하게 느껴지구요.
오늘 듣고 계신 청취자 여러분한테도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
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목사들도요.
신앙생활하다보면 내가 과연 목사로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될 때도 있구요. 어떨 때는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도망가버리고 싶을 때도
있고 그런거거든요.
단지 사람들에게 그걸 표현하지 않을 뿐이죠. 집사님도 그런걸 다른 사람들
에게 잘 나타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혼자 고민하시잖아요 그렇죠?
그래서요. 집사님의 그런 겸손하고 충성하는 그런 믿음을요.
잘 가지고 지금 신앙생활하신대로
교회안에서 목사님과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그런 신앙을 죽 하시면
하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부디 끝까지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에게는 겸손이란 것이 없는 것 같다.
LTC 에 얼마전에 훈련받고 참여하면서도 나는 리더로 서기에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혼자 생각되었다.
중등부 교사를 맡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만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지금생각해보면 얼마나 기가막힌 교만이었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집사님 같이 자신에 대해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모습은
그저 감상적이고 순간적인 그런 지나쳐야할 모습이 아니라
언제나 마음속 깊이 인정해야할 그런 믿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의 교만에 대해 깊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
오랜만에 이 글을 다시 보았는데
저런 상담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06.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