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대학부 주보에)
학교에서 IVF 를 그만둔지 한 학기가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교회일과의 겹치는 사정으로 남들 다 하는 그런 ivf의 과정을 거치지는 못했다. 리더가 되기위한 LTC를 수료하지 못하고 3학년이 되었고, 화요일날 매주 모이는 예배도 학교수업, 교회모임으로 거의 못나가게 되니 나로서는 IVF 안에 소속해 있다는 것은 여간 어정쩡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감히 정리했을 뿐더러, 아예 얼굴도 비치지 말자, 생각했다.
말하자면 나는 완전히 그만둔 것이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며 여간 찝찝한 생각들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생각들의 이유가 무언지 몰랐는데, 이제는 생각들이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실망하였던 것이다.
무엇에 대해서?
바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환아 이번학기는 소그룹모임 할 수 있겠어? ivf 그만하는 거니? 학번 모임 하는데 한번 나와라.’ 이런 말 한번 듣고 싶었던 문제였을까? 물론 그렇다. 단지 내가 IVF를 나가지 않은 이유로 나는 IVF 사람들에게 아무런 존재의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 점에 실망하였고, 그나마 IVF에서 나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기대를 묵살당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나는 IVF에게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서 총체적으로 실망하였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정말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에 골몰하게 되었다. IVF 안에 있었을 당시의 사람들의 나에 대한 관심들은 ‘IVF안에 있는 나’에 대한 관심이었을 뿐이었다. ‘나’라는 존재자체에 대한 관심과는 다른 것이다. 이러한 것은 ‘조건부 관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IVF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IVF 안에 있는 너’에 대한 것이다.’ 그들과 나와의 가졌던 교제들은 ‘IVF’와 ‘IVF에 소속한 자로서의 나’와의 교제였지, ‘그들 자신’과 인간’김진환’과의 교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불행한 사실은 내 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군가의 존재자체에 관심을 가져본 일이 있나?
당장 내가 떠나버린 IVF 사람들에 가졌던 관심들도 사라져버린 것은 나 자신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이런 점에서 총체적으로 실망하였다고 느낀 것이다. 인간 사이의 모든 관계들이 이런 조건부 관심과 사랑으로만 엮어져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는가?
때로 인간 사이의 관심과 사랑의 조건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소속’과 관련지어진다. 우리 대학부 안에서라면 ‘네가 대학부원으로서의 누구이기 때문에’ ‘네가 나의 순원으로서의 누구이기 때문에’라든지… 가족도 마찬가지다. ‘네가 나의 가족으로서의 누구이기 때문에’라든지. 그러나 ‘소속’하고만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면 문제의 깊이를 너무 얕게 본 것이다.
‘성격, 학벌, 재산, 외모’이런 것들과 관련되어 있는 사랑, 관심에 우리는 진저리를 친다. 사랑은 아무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한 ‘소속’과 관련된 사랑이 같은 종류의 성질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대제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소속’과 관련된 사랑이 어느정도 ‘조건없는 사랑’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속’과 관련된 사랑도 -안타까운 결론이지만- 본질상 같은 ‘조건부 사랑’이다.
어디까지의 인간들 사이의 사랑과 관심이 이런 ‘조건’에 얽매이고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모든 조건에서 벗어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이라는 것을 인간은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것일까?
성경의 해답은 간단하지만 또한 정답이다. ‘조건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깨달을 때, 우리는 그 분 안에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한번 여쭈어보라. ‘하나님 왜 나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아무 이유가 없느리라.’
이런 노래가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함이라, 나는 너를 사랑함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네가 다른 사람보다 나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네가 죄를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못잊어하고 사랑하는 까닭은 내가 너를 영원히 사랑함이라.
하나님의 사랑의 이유가 있다면 사랑 그 자체가 이유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슴 사무치게 깨달을 수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건없는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가지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이러한 사랑의 문제가 어디까지 ‘조건’으로 얽매여 있는지 통찰력있게 바라보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의 문제를 얼마나 관심있게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우리는 사람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변함없고 끝없는 애정과 관심은 사람들 누구나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하는 것이다. 사랑없는 이 세대에 우리도 공동체 내부지향적인 소속조건의 사랑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세상가운데 빛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드러나는 것은 우리가 조건없고 변함없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때 가능하다.
자기 순원, 양을 사랑하는 것이 나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누가 나의 순원이고 양이라는 것은 하나의 동기나 계기가 되어야 할 뿐 그 사랑과 관심이 ‘순원으로서의 누구’, ‘양으로서의 누구’에게 대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에서부터 사람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절실하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