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과 에서

말라기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에서는 미워하시고 동생인 야곱을 사랑하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을 사랑하셨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편애하시는가?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사람을 택하시는가?
기존에 나는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신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창세기의 내용에서처럼 에서는 장자의 권리를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을 얻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사모했었다. 그 수단방법의 정당한지 여부를 떠나, 그는 그것을 얻기 위한 열정, 특히 천사와 씨름하면서, ‘축복하지 않으시면 보낼 수 없다’고 말할 때의 그 열정이 야곱의 특별한 점이었으며, 그러한 점에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실만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설명이 하나님의 이유없는 편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로마서 9장에서 바울은 야곱과 에서를 언급하는데 로마서 9장을 보면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3)” 라고 하였고, 그 후에 “내가 하고자 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기도 하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바울은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논리적으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신 선민이 되는 것이고 이방인들은 버림받았다는 뜻이 되는가?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 나쁘게 말한다면 ‘편애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러하신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택하기도 하시고 버리기도 하시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로마서의 구조와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에 불과하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 이후에 10장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다’ 고 선언하였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결론지어 말했다. 좀전에 야곱과 에서를 언급해놓고 누구에게나 구원의 길은 열려있다고 말하는 바울의 논리는 무엇인가? 로마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시고 야곱은 사랑하셨다. 그런데 에서는 형이기 때문에, 당연히 혈통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의 맏아들로서 그의 축복과 언약의 혜택을 누리게 되어야 옳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반대로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야곱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이 혈통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야곱(이스라엘)이 자격이 없에도 택함받았다는 사실은 이방인도 자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택함을 받는 것도 아니요. 이방인이라고 해서 다 버림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을 의의 길로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는 혈통에 의존하지 않으시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에 이르는 길을 모든 이에게 열어두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관하여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하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이런 식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보여주시기 위한 상징이라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단지 혈통만으로 에서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의 선택은 혈통에 의존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 것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애초에 아브라함과 약속을 세우셨는데, 그 약속은 너로 인하여 니 아들만 복을 받는다는 게 아니라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의 통로는 아브라함의 몸에서 날 자를 통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식은 이스마엘, 이삭 뿐 아니라 여럿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에게만 주어졌다. 이것은 육체적인 조건이나 다른 어떤 인간적인 조건이 하나님의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그것이 바울의 설명이다.(롬9장)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시는 것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조건이 아닌 주권적인 선택을 받았다는 점을 보여주시는 것이고, 그러므로 역설적으로 혈통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그의 축복의 길은 열려있다는 점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결론
1. 야곱이 택함받은 것은 그가 어떠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님. 그는 아무 이유없이 택함받았다.
2. 에서가 버림받은 것도 그가 무슨 잘못을 했기 때문이 아님.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임.
3.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임.
4.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축복은 땅의 모든 족속에게 향한 것이었고, 약속의 증거로 주어진 할례마저도 그의 후손들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에게도 주어졌음.
5.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복은 그의 육체적 후손 여부를 막론하고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지닌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것임.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모든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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