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의 십일조

말라기서에 담겨있는 십일조 정신의 진수를 밝히고자 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이 구절에 대한 바른 설교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구절은 십일조를 행하는 특정 개인에게 복이 퍼부어질 것이라고 전혀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십일조라는게 무엇인가? 신명기 14장을 꼭 참고해야 한다.

신명기 14~15장을 보면 두 가지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한다. 첫째로, ‘매년’ 의 십일조,둘째로, ‘매삼년끝’의 십일조이다. 매년 드리는 십일조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며매삼년에 드리는 것은 성읍에 저축한 후에 재산이 없는 고아 과부 등 빈곤층을 돕기 위해 모아졌던 십일조이다.

그 후에 이어지는 15장을 읽어보면, ‘매칠년’의 면제년 규례가 이어져서 나오는데, 이것은 십일조와 완전히 같은 정신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십일조와 면제년 규례는 이름은 달라도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보아도 좋다.

‘매년'(14:22), ‘매삼년'(14:28), ‘매칠년'(15:1)
이 순서로 나오는데 앞 둘은 십일조에 대하여 말하고 매칠년 끝에 면제년규례를 말하고 있다. 면제년 규례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지 꾸어주고, 7년에 한번씩 꿔준 것을 면제해주라는 것이다. 결국 이 세가지 연결되는 규례는 재산이 없는 레위인과 기타 빈곤층을 돕기 위한 사회적인 제도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가지 규정을 언급하신 후에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읽으면 누구나 이것이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기이한 방식으로 쏟아부어주시는 예상치 못한 복이 아닌 매우 합리적이고 당연한 원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서로서로 돕는다면 너희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그 당연한 원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십일조 규례, 면제년 규례를 열심히 지킨다면, 사회는 풍요로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 사회는 얼마나 복된 사회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쏟아주시는 복은 사회적인 풍요에 대한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우 바르다.

그런데 이러한 십일조의 근본정신은 외면한채, 말라기서의 말씀을 ‘내가 십일조를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신다’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약속으로 이해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를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복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개인에게는 희생이 따르는 일이다. 십일조를 통해 다른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다면, 돕는 사람은 당연히 그것을 자기가 다 누리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부담을 느낄 것이고, 그로 인한 희생이 따르게 된다. 이러한 십일조를 바치는 개인에게는 당연히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누릴 수 있다면 사회는 풍요로울 것이다.  그것이 그가 기대하여야 할 복이다.

하나님이 십일조를 바친 사람에게 복을 준다고 하셨는가? 하나님은 복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친 개인에게 대한 것이 아니다.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인한 복을 누리는 것이다. 십일조를 한다고 사업이 잘되거나 경제적으로 그 사람이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런 의도로 십일조를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결코 거래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왜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했는데 더 사업이 잘 안되지?’

이런 생각은 그러므로 매우 어리석다.

‘내가 십일조를 했으므로 내가 좀더 어려워졌겠지만, 그 십일조로 인해 도움을 받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누렸을 행복을 위해 내가 좀더 희생한 것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께 더욱 큰 영광이 되고 않겠는가’

당연히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십일조의 정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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