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십자가는
하나님의 침묵의 절정이었다

십자가의 고통당하시던 예수님의 울부짖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그 침묵은
하나님의 방식 그리고 그분의 사랑의 가장 강렬한 표현이었다.

십자가의 사건 앞에서 어떤 것도 침묵보다 위대할 수는 없었다.
 
침묵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또한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하시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분은 말씀보다는
침묵의 방법을 택하신다.

침묵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분이 자신의 존재와 사랑에 대해 인간에게 가르쳐주실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교수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하나님이 침묵하실지라도 그분을 믿는다.

십자가에 고통이 끝나고 눈을 감으신
예수님의 얼굴에
입맞추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나는 그분의 침묵의 절정에 순간에
그분에게 입맞춘다.

루오, ‘교외의 그리스도’



대전에서 루오특별전이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한번 볼 수 없을까..
나는 예전 홈페이지를 만들 때 루오의 그림을 더 추가하기로 마음먹었다가 그 뒤로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 루오 특별전 광고에 나온 그림들을 보고 예전에 신앙적 깊이가 담긴 루오의 그림들을 보던 기억이 살아났다.

이 그림은 교외의 그리스도라는 제목이다.
그림에 중앙에 있는 인물이 그리스도로 보인다.
옆에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인물이 둘 그려져 있다.
웬지 모르게 쓸쓸한 모습으로 서있는 그리스도와
옆에 두 아이는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분의 존재.. 내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구절처럼
어디나.. 그분은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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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그의 작품이 창작되는 순간, 그것은 항상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작품이란 작가의 온갖 노력 끝에 생산되는 것으로, 그가 항상 그와 같은 긴장의 연속 속에서 온갖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까닭이다. 이 풍경에서 느끼는 것은 세속적인 소요나 허식이 없다는 것이다. 쓸쓸한 표정을 지닌 집이 몇 채 있을 뿐, 아득히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길 저편에는 달이 외롭게 떠 있으며, 길은 그 반사를 받아 환히 비치고 있다. 이것은 도화사들이 그들의 생활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갔을 때의 고요일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런데 그 도화사들 옆에는 항상 그리스도가 함께 있다.

Komm, sußes Kreuz


바하의 마태수난곡 중 이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곡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을 끌고나가 십자가를 지우는 장면 뒤에 나오는 곡이다.

오라! 달콤한 십자가여..

굳은 신념이나 혹은 주체하기 힘든 마음의 떨림같이 낮게낮게
십자가의 무게처럼 낮게 깔리는 비올라 다 감바의 이중주는
너무너무나 아름답게 이 고백을 시작하고 있다..

그 뒤에
베이스가 나와 오라 달콤한 십자가여! 하고 고백한다.

어느 파트보다 가장 낮은 음을 연주하는 베이스는 십자가를 지게 해달라는 무거운 고백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비올라 다 감바의 낮음과 베이스의 낮음, 또한 십자가의 무게와 고통은
완벽한 삼중주이다

나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라도
나를 도우사 스스로 그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원해서 그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왜냐하면 십자가는 무거울 수록
영혼에 더욱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인가..
두대의 첼로소리가 십자가를 향한 가슴의 신념을 휘어잡고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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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마태수난곡을 두고 한 말이 있다.
“일주일에 세번씩 마태수난곡을 들은 후에 스스로가 선교사의 천직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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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 곡

(Ja freilich will in uns das Fleisch und Blut
Zum Kreuz gezwungen sein;
Je mehr es unsrer Seele gut,
Je herber geht es ein.)

(그렇다! 우리의 살과 죄는 정녕 십자가에 매달려야만 하는 것.
그 십자가가 준엄할수록 우리 영혼에 더욱 좋은 것.)

여기서부터 이 곡

Komm, sußes Kreuz, so will ich sagen,
Mein Jesu, gib es immer her!
Wird mir mein Leiden einst zu schwer,
So hilfst du mir es selber tragen.

오라, 달콤한 십자가여!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나의 예수여, 언제든지 십자가를 주소서!
나의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때라도
주여, 나를 도우사 스스로 그 십자가를 지게 하소서.

Herr Wenn Ich nur dich Hab, BuxWV38

1836781528.pdf

 

바하가 가장 존경했던 음악가였다는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북스테우데 칸타타 38번

Herr Wenn Ich nur dich Hab, BuxWV38
주님, 당신만 나 가진다면

Herr wenn ich nur dich hab
주님 당신만 나 가진다면
so frag ich nichts nach himmel und erden,
하늘과 땅 사이에 나 바랄 것이 없습니다.
wenn mir gleich Leib und Seel verschmacht
내 영혼과 육체가 쇠잔해져도
so bist du doch Gott allezeit
하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meines Herzens Trost und mein Heil,
내 영혼의 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시여
Alleiluia
알렐루야

(시편 73편 25~26절 인용)

Erbarme dich, Mein Gott, 마태수난곡에서

Erbarme dich, Mein Gott,
um meiner Zähren willen!
Schaue hier, Herz und Auge
weint vor dir Bitterlich.

Have mercy, Lord, on me,
Regard my better weeping,
Look at me, heart and eyes
Both weep to Thee bitterly
Have mercy, Lord!

아, 나의 하나님, 불쌍히 여기소서!
– 나의 눈물로 보아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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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마태수난곡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이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번 부인하는 장면 이후에 나오는 아리아이다.
막달레나 코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