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구는 너무나 감동적이었기에 따로 분리해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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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의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울다 웃다 흘러간 하루였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수성을 소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이 땅의 2009년 5월을 살아가는 30세 중에 그녀처럼 생에 대한 집착 또는 진지한 시선, 때로는 날카로운 물음들로 고뇌하는 영혼들이 있을까. 더 보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수백년이 지나면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어떤 보람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마치 어떤 즐거움도 간직하지 못한 것처럼
마치 어떤 슬픔 또는 괴로움 또는 절망도 겪지 않았던 것처럼
어떤 눈물 자욱도, 어떤 고함도, 어떤 속삭임도, 어떤 설레임도
하나의 화음이 세상에 뿌려지듯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그 어떤 소중함도
뿔뿔이, 마치
하룻밤 거세게 불었던 바다 물결처럼
흩어지겠지만
나는 그 흩어짐을 사랑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 5번의 숨막히는 장조 피날레처럼,
화려하게,
2009.5.6.
퇴근한 후 어머니께서 썰어주신 시큼한 키위 한조각으로 한낮의 더위만큼 푹푹거렸던 마음을 달랬다.
낮에는 마음에 거친 파도가 일었다가 늦은 밤에는 조용히 별 빛에 반짝이는 잔잔한 물결로 덮였다.
나에게 사랑이 찾아오는 것은 흡사 동전을 던져서 옆면이 서는 것과 같다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운을 시험하기 위해 동전을 던졌던 한 만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동전을 던져보았노라고 했다.
하다보니 놀랍게도 한번은 동전이 옆으로 서더라고 했다.
난 믿기지 않았지만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 밤 읽었던 전혜린의 글이 생각나 늦은 밤 쇼스타코비치의 5번을 들었다.
4악장의 쿵쾅거리는 팀파니는 흡사 내 마음 같았다.
인생이란 정말 신비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따라 하나님의 손길이 깊이 느껴졌다. 왜 그 분은 나를
지금
여기
에 두셨는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이 곡의 피날레에서 나는 생기에 찬 낙관적인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다. 앞의 세 악장에서 드러난 비극적인 느낌들에 대한 해결책을 추구한 것이다.”
–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중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 때 늘 틀어놓는 판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심포니 제5번이다. 왜 그런지 그걸 듣고 있으면 생각이 정돈되어 오는 것 같다. 특히 무언지 웅장하고 엄숙한 시작과 도중의 수많은 군화의 행진 같은 장조가 몹시 마음에 든다. 개인적인 사소한 것, 일상적인 것은 넘어서서 더 큰 길로 눈을 돌리라고 이 음악은 말해주는 것만 같다. 따라서 웬만한 불쾌나 기분 나쁜 일도 이 음악이 곧잘 제거해 준다.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이 판을 틀면 한 면이 끝날 때쯤은 벌써 원상 회복이 되고 깨끗한 맑은 기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 전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