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구는 너무나 감동적이었기에 따로 분리해서 적어둔다.
‘예전에는 완벽한 순간을 여러 번 맛보았다.
그 순간 때문에 우리가 긴 생을 견딜 수 있는 그런 순간들을…
노을이 새빨갛게 타는 내 방의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운 일이 있다. 너무나 광경이 아름다워서였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니면 대학교 1학년 때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울었고 그것은 아늑하고 따스한 기분이었다.
또 밤을 새고 공부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닭이 일제히 울 때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도 잊을 수 없다. 머리가 증발하는, 그리고 혀에 이끼가 돋아나고 손이 얼음같이 되는, 그리고 눈이 빛나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완벽하게 인식에 바쳐진 순간이었다. 이런 완전한 순간이 지금의 나에게는 없다. 그것을 다시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무엇이든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것에 의해서 뒤흔들려 보고 싶다. 뼈 속까지, 그런 순간에 대해서 갈증을 느끼고 있다.
내가 지닌 여러 가지 제한이나 껍질에 응겹당함이 없이 내 몸과 내 정신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무한 속에 내던지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여태까지 그냥 주어지기만 했었던 생을 앞으로는 내가 의식적으로 형성하고 싶다. 내 운명에 능동적으로 작용을 가하고 보다 체계화에 힘쓰고 싶다.
서른이라는 어떤 한계선을 경계로 해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피동에서 능동의 세계로 들어가서 보다 열렬하게 일과 사람과 세계를 사랑하고 싶다. 밀폐된 내면에서의 자기 수련이 아니라 사회와 현실 속에서 옛날에 내가 가졌던 인식애와 순수화 정열을 던져 놓고 싶다.’
– 전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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