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본론

사용자 삽입 이미지심숀 비클러,조나단 닛잔 저/홍기빈 역 | 삼인 | 2004년 05월

조금 어렵긴 하지만 아주 재미난 책이다. 2004년 저작인데, 자본주의를 권력과 연관지어서 독특하게 해석했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서 예견하듯이 써놓은 책이라서, 시사하는 바도 크다 생각이 든다.


18세기에 정치경제학은 해방의 이념이라는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념과 원리들은 그후 세상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고정되면서 교조적으로 변질되는 길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신고전파 경제학, 네오 마르크스주의, 케인즈주의, 신 리카도주의, 통화주의 등의 새로운 조류가 나타날 때마다 정치경제학의 방법과 이념 역시 변증법적 방법, 생산 함수, 수학적 기법, 경제 측량 기법, 거시경제학, 기업 경제와 금융 등의 혁신을 꾀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접근법과 기법은 뉴턴의 기계적 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공적?사적 영역의 이분법, 즉 “정치적 영역은 변덕, 욕망, 갈등이 지배하는 영역에 불과한 반면 경제적 영역은 자연과 역사의 운동을 지배하는 철칙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영역”이라는 이분법적 틀을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그 동안의 모든 정치경제학 조류들은 균형(비균형)의 개념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균형(비균형)의 개념은 세계가 동질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형이상학적 관념, 즉 세계의 근저에 불변의 실체가 있다는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가치 개념, 신고전파 경제학의 효용 개념은, 사라질 수도 또 무에서 생겨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이러한 실체 관념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카오스 이론, 홀로그램의 발명 등으로 이러한 관념과 믿음이 근본적으로 침식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 자본이 민주화를 가져온다는 관념, 정치학과 경제학의 분리 관행이라든지 노동과 자본, 시장과 국가, 생산과 문화, 가치와 가격 등의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의 기본 범주 들 또한 근본적인 해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아울러 이러한 정치경제학의 ‘무능력’이 빚은 진공 상태를 비집고 새로운 ‘이론’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한갓 포스트모더니즘의 ‘도구주의 해체’, ‘문화’, ‘정체성’ 등의 개념적 유희뿐이다.

그러나 낡은 정치경제학이 그 효용을 다했다고 해서 자본이 자신의 운동 논리를 관철하려는 애초의 의도를 접고 현실에서 물러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구적 규모의 자본 축적으로 온 세계가 근본적 구조 변동을 겪고 있는 것이 21세기 벽두의 현실이다. 눈을 가린다고 해서 눈앞의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그 비판적 기능을 상실 또는 외면하는 작금의 사회과학의추세를 거슬러, 다시 ‘자본’의 성격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골치 아픈 주문을 하고 있다. “눈에 잘 드러나지도 않고 또 매체에서 공론화되는 법도 없지만 이 지구적 규모의 자본 축적이 벌어지는 와중에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과 불안을 파악하고 대책을 준비”하기 위해,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자본 축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현실적으로 해명하고 분석할 수 있는 체계적 이론”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들은 자본의 본질을 “사회적 관계를 재구조화하는 권력”으로 정의함으로써 이러한 작업에 도전하고 있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저자들은 “권력 관계의 작동으로 사회의 구조 변화가 일어나고 자본의 축적은 그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기존의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이 바로 그 구조 변화를 일으키는 권력이며 자본의 축적 과정은 사회 구조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라는 관점을 제시해 현재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회 변화를 설명할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정치경제학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수반하는 획기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책의 1부에서는 현대 사회과학에 뿌리 깊게 자리잡아 온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폐해를 지적하고, 자본을 생산성이나 효율성 등에 기반한 경제적 존재로 정의하는 기존 ‘경제학적’ 자본 이론을 해체하며, “사회의 생산적 과정에 대한 지배 권력”으로서 자본을 정의해 나아간다. 2부에서는 토스타인 베블렌의 저작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자본은 생산이 아닌 생산에 대한 지배 권력”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며, 이를 토대로 대기업과 금융 자본주의라는 20세기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권력 자본론’의 뼈대를 선보인다. 3부에서는 이러한 대안적인 ‘권력 자본론’의 틀에 기반해 지배적 대자본들의 축적 전략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차등화 축적 이론’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증적 역사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차등화 축적 이론에 따르면, 대자본은 이윤의 극대화와는 전혀 다르게 여타 자본들의 평균적인 실적을 벤치 마킹해 그것을 상회하여 ‘평균을 능가하는 것’, 즉 ‘차등화 축적’이 그 행동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차등화 축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배적 자본의 취한 주요한 방법이 대규모의 인수 합병과 큰 폭의 가격 상승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고 한다. 이 이론 위에서 저자들은 자본 축적을 지구화, 전쟁, 유가 상승과 같은 최근의 현실적 쟁점들과 구체적으로 연결시켜 나아가며, 이 논의의 연장선에서 21세기의 지구적 규모의 스태그플레이션, 전쟁, 혼란을 예견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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