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의 종말’ 과 빌게이츠 연설문

(퍼온 글)
떼이야르드샤르댕 : “…그래서 집단적 두뇌화는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각개인의 두뇌를 보완하고 완성시키는 쪽으로 그자신의 방향을 정조준하고 있다…나는 여기서 계산하고 조합하는 우리의 정신능력을 이어받아 확대시키는 놀라운 전자기계 – 아직은 초보단계에 있는 인공지능장치(오늘 우리가 컴퓨터라고 부르는) – 를 생각한다. 이 기계는 광학기계(망원경)가 우리의 시각을 넓혀 주었던 것만큼이나 놀라운 발전을 이뤄낼 것이다.” (떼이야르드샤르댕, 자연안에서 인간의 위치, 194쪽)
샤르댕신부님이 약 60년 전에 예언한 컴퓨터 시대가 실제로 와서 지금 우리는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그 활용방식 덕택에 전 세계를 한마을로, 전 인류를 옆 사람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떼이야르의 열렬한 추종자로서이 분의사상을 사회학에 적용하여 “지구촌”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캐나다철학자 마셜맥루헌의 말대로 우리는 과연 공간과 시간의 벽이 허물어져, 온 세상이 내 방안으로 들어오고, 전 인류가 내 옆에서 있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컴퓨터시대에 혜성처럼 떠오른 빌게이츠의 성공담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고, 특히 학생들에게는 우상이 되다 시피 하였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벽을 허물어 전 세계를 한 마을처럼 느끼게 해 준 컴퓨터시대에, 이 사람이 단순히 좋은 머리와 때를 잘 타고 나서 두뇌 하나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실 못지않게, 온 인류를 한 가족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기술에 걸맞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버드를 중퇴한지 30년이 되던 2007년 7월 7일 모교로 돌아가 졸업장을 받는 자리에서 졸업생 뿐 아니라 교수, 동문, 사회 각 분야의지도자들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은 그가 지구촌시대에 얼마나 어울리는 마음을 가진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깊이 새길만 하다고 생각하여, 아직까지 단편적으로만 알려진 그의 연설문전체를 번역하여 소개한다. 이 연설문에서도 언급한 대로, 그는 금년 7월부터 마이크로소프트회사의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아내 멜린다와 함께 3백억 달러로 시작한 자선기금을 통해서 그 동안 번 돈을 세계의 빈곤, 교육, 질병퇴치등을 위해서 쓰는 일에 전념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사업가에서 자선가로 직업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의 행보는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움직임이 벌써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투자의 귀재로 알려졌고, 그의 뒤를 이어 세계 2위의 부자인 워렌버핏은 빌게이츠 보다 오히려 조금 더 많은 3백10억달러를 같은 재단에 헌납했다. 그런 큰 재산가만이 아니라 작은 돈도 계속 모여들어 빗방울이 냇물을 이루고 그것들이 또 바다를 이루듯이, 사랑의 물결은 온 인류에게 단비가 되어 사방으로 뿌려질 것 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고 앞이 트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뜻 보기에 세상은 이기적인사람들의 진흙탕 싸움판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이 세상의 전체 모습은 아니며, 이렇게 남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놓는 마음도 분명히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의 시작은 아주 평범 하지만 가장 중요한 데에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빌게이츠의 예 에서도 확인한다. “너는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 혹은 “많이 가진 자는 많이 내어 놓아야 한다.” 등 성경을 인용해서 어머님이 늘 들려주신 말씀이 오늘의 이런 열매를 맺게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2008년 2월 2일자 한겨레신문에는 전주 금암동에서 구두 닦기와 수선 일을 하고 있는 조규완 씨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 분은 사업에 실패하고 네 번씩이나 큰 수술을 받아 몸이 크게 불편 하면서도 힘겹게 모은 돈을 더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동사무소의 주민 센터에 정기적으로 헌납하여 그것이 매년 4-5백만 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세상을 따뜻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드는 데에 어떻게 한 몫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이 큰 빛을 줄 것으로 믿는다.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돈이 많은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빌 게이츠나 조규완 씨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 궤에 넣었다”(마르 12,43).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빌게이츠의 하버드 연설 (2007. 7. 7)

복총장님, 루덴쉬타인 전총장님, 파우스트 차기총장님, 하버드대학이사님 여러분, 감독관, 교수, 학부형, 특히 졸업생 여러분!

저는 지난 30년 동안이 한 마디를 할 때를 기다려 왔습니다. “아버지, 제가 언젠가는 꼭 돌아와 학위를 받아 오겠다고 늘 말씀 드렸잖아요.”

저는 때맞추어 제게 이런 영예를 준 하버드에 감사합니다. 저는 내년에 직업을 바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이력서에 이제는 대학졸업자라고 쓸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기쁩니다. 저는 졸업생 여러분이 이 학위를 얻기 위해서 훨씬 빠른 길을 택한 데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크림슨씨가 저를 보고 “하버드 퇴학자중에서 제일 성공한 인물” 이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도 못지않게 만족합니다. 이 말씀으로 저는 좀 별난 반에서 수석과 함께 졸업송별사를 할 자격을 인정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과연 낙방생으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티브 발머를 경영대학원에서 중퇴하게 만든 놈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나쁜 놈이었던 셈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졸업식에 초대 해 주신 것은 바로 이런 일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여러분의 입학식오리엔테이션에 초대 받아서 말을 하게 되어 있었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제 말씀을 듣지는 않았겠지요.

하버드는 저에게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공부는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등록을 하지 않은 강의까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듣곤 하였습니다. 기숙사 생활은 정말 멋졌지요. 저는 래드클리프의 뀌리에하우스에서 살았습니다. 기숙사의 제방에는 토론을 하느라고 저녁 늦게까지 늘 사람들이 들끓었는데, 제가 아침에 일어나는 문제에 관해서 통신경을 쓰지않는 인간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해서 저는 반사교클럽의 앞잡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교적인 사람들을 거부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리끼리는 아주 단짝이 되었던 것이지요.

래드클리프는 참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많았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과학·수학에 빠진 놈들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저에게는 안성맞춤 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 인지 아신다면 말씀이지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서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하는 것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또 아니라는 좀 슬픈 진리도 깨우쳤습니다.

하버드 시절 가장 잊지 못 할 추억 가운데 하나는 1975년 1월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이제 막 만들어 낸 앨버커키의 한 회사에 학교 기숙사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소프트웨어를 그 회사에 팔아먹겠다고 제안을 한 것이지요. 전화를 하면서도 저는 그들이 제가 지금 학생으로서 기숙사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수화기를 확 놓아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지금은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한 달 뒤에 만납시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지도 않았으니까 오히려 잘 된 일이었지요. 그때부터 저는 밤낮 가리지 않고, 이 작고 신용에만 매달린 프로젝트를 위해 일했는데, 그것이 저의 대학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놀라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하버드에서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에너지와 지성이 넘치는 분위기속에서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신이 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하며, 의기소침 해지는 경우마저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언제나 도전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정말 엄청난 특전 이었습니다. 제가 좀 일찍 떠나기는 했지만, 저는 하버드 생활에서 맺은 우정, 가꾼 이상과 꿈 등으로 해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진지한 눈으로 그 때를 돌아보면 저는 크게 후회되는 점도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제가 하버드를 떠날 때, 저는 세상이 그토록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이 건강, 돈, 기회 등의 분야에서 깜짝 놀랄 만큼 불평등하여 수천만 수억의 인간들이 절망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하버드에서 경제와 정치 분야의 새로운 사상을 많이 배웠습니다. 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발전에 관해서도 충분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진보는그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 그 발견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통해서, 강력한 공교육을 통해서, 또 질 좋은 의료기술이나 폭 넓은 경제적 기회를 통해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진보입니다.

대학교정을 떠날 때, 저는 바로 이 나라에서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개발도상의 나라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처참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런 현실에 눈을 뜨기 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전혀 다른 시대에 하버드에 들어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세대에 비해 세상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한지를 더 잘 아십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여러분은 공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이런 불평등을 어떻게 정면으로 대하고 풀어갈 것인지를 두고 생각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서 한번 연습 삼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한 주간에 몇 시간, 한 달에 몇 달러를 어디엔가 기부한다고 합시다. 물론 여러분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 가장 큰 효력을 내는 곳에 그 시간과 돈을 쓰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디에 투입 하시겠습니까?

아내 멜리나와 저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투입하여 제일 많은 사람들에게 제일 좋은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멜리나와 제가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는 동안 저는 어떤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여러 가난한 나라에서 우리라면 벌써 오래전에 정복했거나 무력화 시킨 병으로 매년 수백만의 어린이들이 죽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홍역, 말라리아, 결핵, B형간염, 황열병 같은 병으로 말이지요. 그뿐 아니라, 저로서는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로타바이러스로 해서 죽어가는 어린이만도 매년 50만 명이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병들 가운데 어떤 것도 우리 미국에서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수백만의 어린이들이 죽어간다면, 세상은 열일 젖혀두고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약을 개발하여 급히 공급하겠거니 하고 상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돈 한 푼으로 사람을 살릴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모든 사람의 생명이 똑같은 가치를 가졌다고 믿는다면, 어떤 사람의 생명은 구할 가치가 있고 다른 사람의 생명은 그렇지 않다는 평가를 실제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될때, 그것은 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일 수없어.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바로 여기에 우리의 자원을 쓰지 않을 수 없지.”

그래서 우리는 여기계신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바로 그런 식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물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이런 어린이들이 죽게 그대로 내버려둘 수 있었을까?” 대답은 간단하고도 가혹했습니다. 시장은 이런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고, 각국 정부는 그런 일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엄마와 아빠들이 시장에서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하고 현체계 안에서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나 저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 창조적인 자본주의를 개발해 낼 수 있다면, 우리가 시장의 힘을 더욱 연장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게 할 수 있다면, 이득까지는 아니라면 적어도 생계유지라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최악의 불평등에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시장의 힘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더욱 의미 있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 각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여 납세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더욱 잘 반영되는 방향으로 세금을 사용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기업에게는 이익을 창출하고 정치인들에게는 표를 얻을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접근방식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불평등을 해소 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은 셈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계속 더욱 적절한 답을 찾아야하는 과제입니다. 어떤 단계에서도 완성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낙관주의자 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회의론자들에게 저는 말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불평등은 처음부터 있었고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있을 거라네. 사람들은 도대체 그런 일에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이지.”

저는 여기에 전적으로 의견을 달리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데 까지는 맞는 말이지만,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 이 교정에 모인 우리 모두는 이러저러한 사건사고를 목격하거나 소식을 들으면서 마음이 몹시 아팠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나쳐 버렸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은, 그때 우리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 이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았더라면 분명히 도왔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일이 너무나 복잡 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행동으로 건너가려면 우리가 문제를 보고, 해결책을 보고, 그것이 이루어 낼 효과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복잡성이 이 세단계를 모두 덮어 버립니다. 인터넷이 있고 24시간 뉴스를 전해주는 방송이 있어도, 사람들이 문제를 정말로 보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복잡한 과제 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관계자들은 즉각 기자 회견을 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하고,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여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 대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정말 우직 하다고 할 정도로 정직 하다면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예방 가능한 사고로 오늘 죽은 사람들 가운데 1퍼센트의 반만이 비행기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1퍼센트의 반만을 위해서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더 큰 문제는 비행기 추락사고가 아니라, 수백만의 예방 가능한 죽음 입니다. 이런 죽음에 대해서는 언론에 자주 언급 되지도 않고, 따라서 우리가 그 소식을 접하는 일도 드뭅니다. 홍보매체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수백만의 죽음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일은 뒷전으로 밀리고, 거기로 가면 잊어버리기가 아주 쉬워집니다. 혹 우리가 그에 대해서 보고 읽는다해도 그 문제에 우리 시선을 잡아두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상황이 너무 복잡해서 손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면 그 고통을 직접대면 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떤 문제를 정말로 보면, 우리는 이미 첫 단계로 들어선 것인데, 우리는 다음 단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해결책을 찾아 복잡성을 뚫는 일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마음이 쓰이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열매를 맺게 하려면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분명하고도 검증된 답을 알고 있으면 어떤 기관이나 개인이 언제든지 물어옵니다. “제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행동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 쓰는 일이 세상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허실로 흩어져 버리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마음 쓰는 사람들이 행동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복잡성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들의 행보를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해결책을 찾아 이 복잡성을 뚫고 들어가는 일에는 네 개의 예견 할 수 있는 단계가 있습니다. 목표 설정, 가장 효과적인 접근방법 발견, 그 접근방법을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기술발견, 그리고 그 사이에,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을 가장 솜씨 좋게 사용하는 일입니다. 이때 기술이란 약처럼 까다로운 것일 수도 있고, 모기장처럼 단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에이즈는 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최종목표는 물론 이 질병을 종식 시키는 일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접근방법은 예방입니다. 이상적기술은 단 한번의주사로 일생동안 면역을 확보 할 수 있는 백신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부나 제약회사 그리고여러재단들은 그런 백신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은 수십 년이 걸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당장 쓸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서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효과적인 예방책은 사람들에게 위험한 행동을 피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런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4단계과정을 다시 밟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범례 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20세기에 말라리아와 결핵을 상대로 싸우면서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 인류는 복잡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돌아서고 말았던 것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보고 접근방법을 찾아낸 다음, 마지막 단계는 당신이 하는 일이 이루어 내는 효과를 계산하고, 당신의 성공과 실패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그들도 당신의 노력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물론통계를 내야 합니다. 수백만의 어린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맞게 하는 계획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병들로 해서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 계획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뿐 아니라 기업체들과 정부들로 부터 더 많은 투자를 얻어내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바란다면, 통계숫자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당신은 이 일이사람들에게 어떤 효력을 내는지를 잘 전달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그 가족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 일인지를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몇 년 전에 다보스모임에 갔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때 수백만의 인명을 살리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할 지에 관해서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백만의 사람을 죽음에서 구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 해도 그 생명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것을 백만 배로 곱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 모임은 제가 참석했던 어떤 것보다도 더 따분하고 맥 빠지는 것 이었습니다. 저 자신조차 참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의 일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모임에 참석하기 직전에 우리가 새로 개발한 소프트웨어 한 종목을 발표하는 행사에 참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행사에서 사람들은 기뻐서 뛰고 소리치고 그랬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새로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환호를 보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가지고 우리가 그 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 입니까? 사람들이 기쁨에 뛰게 하려면 그들이 그 일에 따른 결과를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저는 낙관적 입니다. 불평등이언제나우리와함께있었던것은사실입니다. 하지만 복잡성을 뚫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새로운도구가 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은 새로운 것이고 우리가 마음이 쓰일 때 그것이 열매를 맺게하는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생물공학, 컴퓨터, 인터넷등 우리시대가 이루어내고있는새로운발명품들은우리가극도의가난과방지가능한질병을종식시키는데있어서, 과거에는 없었던 기회를 제공 합니다.

60년 전에 조지마셜은 이 졸업식에 와서 전후의 유럽 재건을 돕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의 어려움을 느끼는데, 출판물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전달되는 여러 가지 소식들이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태를 실감나게 느끼게 하기에는 크게 부족할 정도로 그 사이에 가로놓인 복잡성이 엄청나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사태의 실상을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마셜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 30년 후, 저의 동급생들이 저를 빼놓고 졸업을 하던 때에는, 세상을 훨씬 작고, 훨씬 열려 있고, 눈으로 볼 수 있고, 가깝게 해주는 기술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값싼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으로 강력한 그물망(네트워크)이 나타났고, 그렇게 하여 배우고 정보를 교환하고 할 수 있는 기회가 환상적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이 그물망에서 놀라운 점은 그것이 단순히 거리를 없애 버렸다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우리의 이웃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또한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수를 놀랍게 연결하여 우리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도록 해줍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모으고 확대 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오늘날에도 세상에서 5분의 1의 사람들만이 현대적 기술의 혜택을 누릴 뿐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수많은 인재들, 실천적 지성과 아주 좋은 경험에 창의력까지 갖춘 인간들이자 신의 생각과 능력을 갈고 닦아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니지 못하여 이 논의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기술적 진보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거의무한대로 확장하는 일대혁명을 촉발시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술은 각국 정부를 위해서 그것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대학, 회사, 작은 기구들, 심지어 개인들에게도 문제 를보고, 접근방법을 보며, 자신의 노력이 이루어내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렇게 해서 60년 전에 마셜이 언급한 굶주림, 가난, 절망 등의 문제를 가지고 함께 씨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버드가족여러분!

지금 여기 이 정원에는 세계의 가장 위대한 지성인 집단 가운데 하나가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성인들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겠습니까? 교수단, 동문, 학생, 후원자들이 모두 우리나라와 세계의 사람들에게 그 삶의질을향상 시키기 위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용해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겠습니까? 그래서 하버드가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향상 시키는 데에 그 지성을 쏟아 부을 수는 없겠습니까? 저는 여기 하버드의 지성적 지도자들 이신학장님들과 교수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새 교수를 뽑으실 때, 종신교수를 선임하실 때, 경력을 확인하고 학위 수여조건을 설정하실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우리의 최고 지성들이 가장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헌신할 용의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버드가 교수들에게 세계의 가장 처참한 불평등문제를 떠안고 씨름하도록 부추겨야 하지 않을까? 하버드의 학생들은 온 세계적 가난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 굶주림은 얼마나 널리 확산 되어있는지, 물 부족사태는 얼마나 심각한지, 교육에서 제외되고 있는 여자아이들은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쉽게 고칠 수 있는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혜택 받은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않을까?’

이것들은 결코 말만 화려한 과장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입안하시는 정책으로 여기에 대답하실 것입니다. 제가 이 학교에 합격 하던 날 저의 어머님께서는 대단한 긍지를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계속 저를 몰아 세우셨습니다. 저의 결혼을 며칠 앞두고 약혼식을 베풀어 주셨는데, 그때 어머니께서는 제 아내가 될 멜리나를 위해 결혼에 관해서 써 두셨던 편지를 큰소리로 읽어주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암으로 심하게 앓으셨는데도 당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전해 줄 절호의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편지 끝에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내놓아야한다.”

지금 이 교정에 모여 있는 우리가 능력, 혜택, 기회 등에 있어서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세상이 우리에게 당연한 권리로 거는 기대는 거의 무한합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약속과 희망을 따라, 저는 졸업생 한분한분에게 하나의 문제를 어깨에 지고 해결책을 찾아 힘을 기울여 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복잡한 문제, 깊이 뿌리박힌 불평등을 정면으로 대하고, 그렇게 해서 그 문제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주십시오. 여러분이 삶에서 그것을 중심문제로 삼고 노력해 간다면, 그것은 정말 환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어떤 구체적인 결실을 바로 내야한다는 생각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한 주간에 몇 시간 동안, 여러분은 날로 커지는 인터넷의 힘을 사용하여, 현실에 관해서 정확히 알고,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을 찾아내고, 장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십시오.

복잡하다고해서 돌아서지 마십시오. 활동가가 되십시오.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를 떠안으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이될 것입니다. 졸업생 여러분은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버드를 떠날 때, 여러분은 우리 동급생들로서는 가질 수 없었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있 는 불평등을 분명히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도 역시 우리 세대와는 다릅니다. 그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만큼 예민해진 의식·양심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조금만 노력했어도 구할 수 있었던 생명들을 내버려두어 죽게 한 데 대한 가책도 더 심하게 느껴 그것이 여러분을 계속 고통스럽게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여러분은우리세대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좀 더 일찍 시작하고 더 오랫동안 그것을 이끌고 가야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아는 만큼 알고 난 이 마당에 어떻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여러분이 30년 후에 이 교정에 돌아와 자신이 받은 탤런트와 에너지를 어떻게 썼는지 성찰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또 여러분이 자신을 심판할 때, 각자 전문분야에서 이룩한 업적만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세상의 불공평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붙들고 싸웠는지, 또 같은 인간이라는 점 외에는 여러분과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을 얼마나 잘 대했는지를 기준으로 해서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행운을 빕니다.

옮김 : (번역 전주교구 이 병호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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