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되지 말아야 하나

약 3장
요즘 사복음서를 읽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읽다가 이전부터 궁금해 오던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라는 말씀입니다. 저도 중등부 교사로 있는데 여기서 말사는 선생이 그저 그러한 것을 의미한다면 나도 선생이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23장을 읽다가 비슷한 구절을 읽었습니다.

‘2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으니….. 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타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랍비는 선생과 같은 말입니다. 이 당시의 선생, 즉 랍비의 모습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이 묘사하신 모습 그대로 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서의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는 말씀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좋아하지 말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1절에서는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고
2절 에서는 우리가 다 말의 실수가 많다고 하고
8절에서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10절에서는 한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우리는 다 말을 잘못해서 다른 사람을 저주하기 쉬우니 만일 선생이 그렇게 말의 실수가 많으면 선생이 아닌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을 흔히 말을 잘 다스리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면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이 내용에서 말로 인한 상당한 폐해를 말하고 또한 그것을 능히 아무도 길들일 수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우리 입으로 저주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한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해야하는 선생이 되는 것이 마땅치 아니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1절에서 선생된 우리가.. 라고 했는데 이미 선생이 된 사람들에게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선생 일을 때려 치우라는 것일까요? 2절의 실수는 무엇일까요.. 특이한 것은 3절 이후에 야고보가 혀의 폐해를 이야기 하면서 혀가 어떤 말하는 대상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죄로 물들인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놀라웠습니다. 대충 말씀을 읽을때는 깨닫지 못했는데 야고보는 분명히 혀가 자기 자신을 더럽힌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능히 제어할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더럽힐까요..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
함으로서(9절) 자기 온 몸을 죄로 더럽히는 것입니다.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은 분명히 .. 가르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 28:20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딤후 4:2에서도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는 선생은 어떤 선생입니까? 그것은

1. 말이 많아 남을 저주.. 하는 선생
– 선생은 말이 아주 많기 때문에 남을 저주하기 쉬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2.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선생은 외식하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어려운 점은 1절에서 선생된 우리가.. 라고 했는데 이미 선생이 된 사람들에게 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선생 일을 때려 치우라는 것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라는 말이 야고보와 수신자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 야고보와 같이 선생된 사람들만 포함에서 우리가..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비롯한 선생된 자가.. 라는 뜻이 되겠지요. 그 편이 오히려 오해를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번역에는 .. 가르치는 우리가.. 라고 되어 있기도 하고. KJV에는 아예 그 부분이 없이 우리가..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는 말은.. 선생이 되려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놓고 보면 아마도 앞의 저의 결론은 잘못 된 듯 싶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하나 아마도 그 길들인 정도의 차이에 따라 야고보는 선생이 되려면 잘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 조건을 제시하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된 우리가.. 라는 말에서 야고보 자신도 선생이라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능히 길들일 사람은 없지만 선생이 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얼마나 길들였느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혀를 길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시 정확하게 결론을 내려서 다시 번역해 본다면 야고보서 말씀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 야고보서 1장 – 眞 역 (^^) >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비롯한 선생된 사람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선생이 되려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 말에 실수가 많아서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것은 참 어려워서 능히 온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말의 입에 재갈을 먹여서 말 전체를 조종하며 작은 키 하나로 배를 사공 맘대로 조종하는 것과 같이 혀도 작지만 작은 불씨가 수많은 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대단히 영향이 큽니다. 혀는 그렇게 우리의 온 몸을 죄로 더럽히기 때문에 우리 온 인생을 망쳐 놓습니다. 여러 동물은 능히 길들일 수 있다고 해도 대단히 악한 이 혀는 아무도 길들이지 못합니다.
우리 선생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여야 하는데 이 혀로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실수를 범하므로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를 내 뿜게 되어 엄청난 심판을 감수하여야 합니다. 마치 한 샘에서 더러운 물과 깨끗한 물이 나오는 것, 무화가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혀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 남을 험담하고 저주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 선생이 되려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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