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 ‘부활’

사용자 삽입 이미지자기를 믿으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지만 남을 믿으면 주위 사람들의 찬동을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네플류도프가 신, 진리, 재물, 빈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일로서 간주했고, 어머니나 고모는 점잖게 놀리는 투로 그를 ‘우리의 친애하는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소설을 읽거나 외설수러운 이야기를 듣거나, 통속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프랑스 희극을 보고와서 재미있게 그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그를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것이다. 그가 절약하거나 하면… 그것을 일종의 색다른 허영이라고 비난했고… 특별히 사치스러운 장식을 하느라고 돈을 낭비하면… 모두들 그의 취미를 칭찬하며 값진 물건을 선사하기도 했다.
…(중략)
처음에는 네플류도프도 싸워봤지만 그 싸움은 어렵기 그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자기를 믿었을 때 바르다고 생각하던 것은 모조리 다른 사람에게는 악으로 간주되었고, 또 그와 반대로 자기가 믿었을 때에 그가 악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주위사람들에게는 착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네플류도프가 자기를 믿는 것을 단념하고 남을 믿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부정이 불쾌했지만… 술과 담배 맛을 배워서… 나중에는 오히려 커다란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 톨스토이 ‘부활’, 13장 중에서
마음 속 가장 깊숙한 곳에서 그는 자기가 참으로 꺼림찍하고 잔혹한 행위를 했다는 것 그리고 이 행위의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남을 비난하기는 커녕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처럼 자기를 훌륭하고 고상하고 너그러운 청년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명랑하고 즐거운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이러한 청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 18장 중.


이번 작품 ‘부활’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이해하는 읽기의 방법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또나는 깊은 세부묘사의 치밀함에 매료되는 방법도 발견하였다. 또, 나는 부분부분 그의 아주 세심한 심리묘사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엔도 슈사쿠의 작품에서 이미 눈이 뜨였던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소설을 재미나게 읽는 법을 비로소 조금이나마 알게되었다는 느낌이 들고 지금껏 포기했던 도요토예프스키나 카프카의 작품도 도전해보고픈 욕구를 느꼈다.
소설 ‘부활’에 나오는 주인공인 네플류도프에게 나는 깊은 호감은 느꼈고, 그가 스펜서나, 헨리조지의 사상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과, 다른 여러 방면에서 애정을 느꼈다. 헨리조지의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 자신의 의지를 꿋꿋이 고집하며 끝없이 사회와 재판의 부조리를 사색하는 면모도 아름다웠다.


『부활』은 톨스토이가 일흔이 넘어 완성한 만년의 역작이다. 집필을 시작한 후 일 년여 뒤 그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늘의 시선으로 사물을 조명하면서 기나긴 숨결의 장편소설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 나 자신의 모든 구상들을 결합시킬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한 귀족과 창녀가 정신적으로 부활하는 과정을 통해, 당대 러시아의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날 선 비판을 가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근본으로 하는 자신의 사상을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자신이 자기 생명의 주인이며 우리의 향락을 위해서 생명이 주어졌다는 어리석은 착각 속에 살고 있으나 이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졌다면 그건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서 어떤 목적을 위해 보내졌음이 분명하다. 한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쾌락만 찾고 있다.”
소설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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