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사쿠, ‘침묵’


자이툰 교회에서 김진홍 목사님의 책과 또하나의 책 ‘침묵’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 무엇보다 마음이 끌리었던 것은 내가 예전부터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주제에 끌리고 있었을 뿐더러, 잠깐 살펴본 이 책의 내용이 17세기 포르투갈 선교사의 초창기 일본 선교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바로 포르투갈의 카톨릭 선교사인 로드리고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배교를 택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영웅처럼 신앙을 지켜왔던 인물들, 참된 신앙의 승리자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배교자들은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의 신앙을 나약하게 포기한 가라지 같은 사람들로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만난 로드리고의 생각과 그의 배교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면, 실로 인간의 나약함과 신앙과 고난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앙인의 내면을 마치 자신이 겪은 것처럼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의 깊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로드리고가 져야했던 십자가는 배교자로서 겪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판단이다. 그는 교회에서 추방당했으며, 사제로서의 권위도 읽었고, 선교사로서의 꿈과 희망도 배교라는 것으로 접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어쩌면 옳았다고 생각된다. 내가 그런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가 쉽게 배교자를 판단할 수 있으랴! 누가 베드로를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고난 중에서의 위대한 승리는 사람들에서의 기준일지 모른다. 우리는 그러한 환상 속에서 신앙의 의미에 대하여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소설 ‘침묵’ 속에서의 그리스도는 신앙때문에 배교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통을 이해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물론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침묵하신다. 때로는 아주 중요한 순간에도 그는 마치 계시지 않은듯이 침묵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한 불신앙인것처럼 흥분하며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분은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또한 그분은 그러한 침묵 속에서 신자들의 마음에 내밀하게 임마누엘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끌린다. 그분은 침묵할지라도 나는 그분을 믿는다. 그분은 침묵하실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그것때문에 내가 존재하니까.””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나는 침묵하고 있었던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뿐.


“일본인들은 인간을 미화하거나 확대시킨 것을 신이라 부르고 있어. 인간과 동일한 존재를 신이라 부르지.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하나님은 아니야.”
“당신이 이십 년 동안 이 나라에서 깨달은 것이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이야.”
페레이라는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문에 내게 선교의 의미가 없어지게 된 거야. 이곳까지 어렵게 가져온 묘묙이 이 일본이라는 늪지대에서 어느 틈엔지 썩어 갔어.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깨닫지도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 pp. 235

“내가 여기서 보내던 밤에는 다섯 사람이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있었어. 다섯 개의 소리가 서로 뒤섞여서 귀를 때렸어. 관리는 이렇게 말했지. 당신이 배교하면 저 사람들을 곧 구덩이에서 꺼내 밧줄도 풀어 주고, 약도 주겠다고 말이야. 나는 대답했지. 저 사람들은 왜 배교하지 않느냐고. 관리는 웃으면서 가르쳐 주었어. 그들은 이미 몇번이나 배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네가 배교하지 않는한 저 농민들을 구할 수 없다고.”
“당신이 기도를 했어야 하는 건데.”
신부가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물론 기도했지. 나는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었어. 하지만 기도도 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했지. 저 사람들의 귀 뒤에는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그 구멍과 코와 입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지. 그 고통을 나는 내 몸으로 맛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어. 기도는 결코 그 고통을 덜어 주지 못해.”— pp. 235

“자네는 그들보다 자기 자신이 더 소중하겠지. 적어도 자기 자신의 구원이 중요한 것일 테지. 자네가 배교하겠다고 말하면 저 사람들은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있어. 고통에서 구원받는 거지. 그런데도 자네는 배교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자네는 그들을 위해 교회를 배반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야. 나처럼 교회의 오점이 되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지.”— pp.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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