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2장

사무엘상에 이어 열왕기상은 다윗의 말년으로부터 시작하여 솔로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윗은 늙고 기운이 없는데 그 틈을 타서 다윗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가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고 높인다.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5절)
스스로 낮춘 요나단의 모습과 스스로 높이는 아도니야는 극한 대조를 이룬다. 아도니야는 훌륭했다. 그는 왕이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넷째 아들이었지만 압살롬이 죽고 그는 살아있는 다윗의 아들중에서는 최고 형이었다. 그 당시 풍속으로는 그가 왕이 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는 용모 준수하고 행동도 평소 바르게 해서 다윗왕의 신임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달랐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다. 왕을 결정할 권한은 하나님에게 있었다.

다윗은 적극적이지 못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일도 미루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나이가 많아 신경쓰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순종키 위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야만 했다. 그 때 그 사실을 기억하게 했던 인물이 바로 나단이다. 나단같은 선지자가 있었기에 다윗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지혜로왔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 그리고 그것을 왕에게 바로 전할 줄 알았다.

그리하여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다. 다윗의 범죄로 낳은 아들 솔로몬. 그가 왕이 되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도니야의 반란은 압살롬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깨달았다. 그는 제단뿔을 붙잡고 용서를 구했다.그리고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자기 종들의 목숨도 구해달라고 햇다. 솔로몬도 그를 용서했다. 자신의 형이었다.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진대 내가 머리카락 하나도 건들지 않겠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면 바로 죽일 것이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비극으로 삶을 마친다. 바로 아비삭을 구한 일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도니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서라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목숨을 부재하기 위해서 제단뿔을 잡은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지극히 싫어하신다. 스스로 높여서 왕이 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왕은 세워졌다.

왕상 1장의 제단 뿔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현대어 성경을 보면

아도니야도 솔로몬이 두려워서 홀로 일어나 성막으로 가서 제단의 네모퉁이에 돋은 뿔을 붙잡았다. 아무리 살인자나 천하의 죄인이라 해도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제단 뿔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는 목숨이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아도니야에게 `성막에서 나가시오’라고 하자, 그는 `솔로몬이 두려워서 제단 뿔을 놓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가 제단 뿔을 잡고 관대한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왕에게 전해졌다. `아도니야는 왕이 나를 죽이지만 않겠다고 약속해 주면 이 제단에서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라고 나와있다. 제단 뿔 네 귀퉁이는 어떠한 죄인이던지 보호받는 피난처이다.
출애굽기 20장에는 제단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제단은 돌로 쌓을 수 있었지만 다듬은 돌로는 쌓을 수 없었다. 또한 계단을 만들 수 없었다. 이는 다른 우상의 제단과는 전혀 다른 차이였다. 제단 위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으며 그 제물을 통해 속죄가 선포되었다.




열왕기상 2장

2003.4.1

아도니야의 왕권 찬탈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다
다윗은 40년간의 통치를 마치고 죽으니 그의 나이는 71세였다.

다윗의 유언은 역대상과 비교해볼 때 사무엘상에서의 관점은 좀 다르다
역대상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에 대해서 솔로몬에게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는 면을 다룬다.
그러나 열왕기상 2장에 나오는 그의 유언은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징벌과
돌봄을 부탁하는 것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다윗의 유언은 세가지이다.
1. 요압에 대한 징벌
2.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 대한 선처
3. 시므이에 대한 보복

다윗은 생전에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다면서, 스스로 원수 갚는 것을 도전으로 여겼다. 따라서 일견으로 그러한 다윗의 면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유언은 그의 신앙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2장에서는 필요하다.

첫번째로 요압에 대한 다윗의 이야기부터 살펴보았다.
다윗은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에게 행한 일에 대하여 그를 편히 죽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고 솔로몬에게 이야기 한다.

다윗의 누이인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다윗의 군대장관으로서 그에게는 조카뻘 되는 관계이다. 먼저 그가 죽인 아브넬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브넬은 사울의 군대 총사령관으로서, 골리앗을 죽이겠다고 한 다윗을 사울에게 데려온 인물이기도 하면서, 사울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사울이 죽고나자 그는 사울의 살아남은 넷째 아들인 이스보셋을 왕위에 앉히고 다윗의 군대와 기브온 전투를 벌인다. 여기서 그는 요압의 형제인 아사헬의 추격을 받게 되고, 그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자, 창으로 찔러 죽인다. 이것은 정당방위였다고 이해해야 한다.

아브넬은 비록 사울의 군대장관으로 있었으나, 충직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옮겨갈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에 동의했다. 그는 다윗의 신하인 요압과의 화평을 위해서,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을 결코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사울에 이어 왕이 된 이스보셋이 자신을 사울의 첩을 통간했다는 혐의를 덮어씌우자 결국 이스보셋을 버리고 다윗에게 신복을 보내 그의 편에 가담하려고 했다. 후에 다윗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는데 그 때 요압은 속임수를 써서 아브넬을 죽인다.

요압의 아브넬 살해.
요압은 다윗에게 아브넬이 스파이 노릇으로 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성경에는 요압이 동생 아사헬을 죽인 개인적인 복수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분명 이것에는 요압의 정치적인 야욕이 숨겨져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브넬이 다윗의 편에 가담한다면, 그는 다윗의 신임을 받아 자신의 군대장관 자리를 위협할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요압은 그런 아브넬에게서 분명 경쟁의식과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브넬 살해는 전쟁 중의 불가피 한 것이 아닌 분명 보복,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놓고 심히 가슴아파했다. 내 생각에는 다윗이 아브넬을 만나고 그의 신앙적인 모습과 인간적인 면모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슬퍼할 이유가 별로 없는 듯하다.

다윗은 이 일로 당시 요압을 심각하게 저주했는데, 바로 벌하지 못한 것은 아마도 요압과 아비새 형제를 징벌할만한 힘이 없어서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군대장관으로서 그의 자리가 중요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는 여부스를 징벌하고 암몬 아람 연합군을 처부수는 등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운다. 또한 밧세바 남편 우리아 살해를 공조하기도 하였고, 에돔 정복에도 가담했다. 요압의 공로는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면은 날카로워보인다.
그는 반역자 압살롬을 처형했다. 다윗은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접하라고 그의 신복들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정쟁중 한 사람이 요압에게 압살롬이 나무에 달려있다고 보고하자, 왜 그를 죽이지 않았느냐고 책망하고 직접 자신이 가서 창으로 심장을 찔러 죽였다.
다윗은 그의 죽음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그리고 이 참에 요압의 자리를 뺏고 아마사를 대신 군대장관으로 지명하려 했다. 여기서 요압은 다시 아마사를 죽이는데, 아브넬과 같은 이유였다. 다윗이 그를 군대장관으로 지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요압에 대한 처신은 무리가 없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요압은 수많은 피를 손에 흘린 살인자였다.

2. 바실래의 아들들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망명했을 때 다윗과 군대에 식량을 지원했던 사람이다.

3. 시므이
그는 압살롬의 난 때 다윗과 신복들이 바후림을 지날 때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신랄하게 저주한 인물이다. 그는 사울왕에 대한 충정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반란이 진압되고 시므이는 다윗이 환궁할 때 그에게 용서를 빈다. 요압의 동생인 아비새가 그를 죽이라고 했으나 다윗은 용서한다.
다윗은 아마도 시므이가 솔로몬의 왕위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므이는 여호와의 기름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므로 그 죄를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나 다윗은 그를 용서한 바 있다. 다윗은 그를 지혜롭게 처리하라고 명했고 솔로몬은 다윗의 말을 지켜 그를 처리했다.
역시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처리도 어떤 한도를 뛰어넘지는 않는 것 같고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이 되자 아도니야는 아비삭을 아내로 맞아들일 계교를 꾸민다. 그러나 그것은 솔로몬에게 간파되고 그는 죽임을 당한다. 아비삭이 아름다워서 였을지도 모르나, 그는 여전히 아비삭으로 인해 자신의 왕좌 계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당시 관습으로 선왕의 후궁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왕좌를 계승할 수 잇는 권리가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하라고 한 명령에서도 나타난다.(삼하 16:21)

또 솔로몬은 아비아달의 제사장 직분을 박탈한다. 그는 엘리 가문의 5대손으로 엘리-비느하스-아히둡-아히멕렉-아비아달의 계보이다. 엘리는 망나니 같은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하는 짓을 막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문의 저주를 받는다. 그의 후손은 제사장 직을 영원히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울이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모두 살육하면서 성취되었으나, 대량학살 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아비아달이었다. 그는 아도니야의 반란에 동참해서 결국 쫒겨났으니 그 저주가 완전히 이루어진 셈이다.

솔로몬은 브나야를 새로 군대장관으로 삼고 요압을 처형하라고 명한다. 요압은 아도니야처럼 제단뿔을 잡았지만, 바로 최후를 맞이한다.
32절을 보면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장관 아브넬 유다 군대 장관 아마사’ 라고 한다. 분명 아브넬은 의롭고 선한 부류의 믿음있는 신하였다고 생각된다. 그가 죽인 것은 분명 둘 다 군대장관들이었으니 그의 야욕이 바로 드러나는 구절이다.

또한 시므이도 죽임을 당하였으니
다윗의 솔로몬에 대한 부탁과 이루어진 모든 결과가 2장 한 장에 다 이루어진 셈이다. 모든 반란까지 제거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평화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은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렸으나 솔로몬의 시대에는 평화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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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의 내용은 어려웠다.
사무엘하를 다시 대부분 읽어보아야 했다. 특히 아브넬의 살해장면과 압살롭 반역하고 아마사가 살해되는 장면을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었다.
이번 공부에서 주된 성과는 아브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또한 사무엘-열왕기와 역대상하 의 차별성에 대한 인식이다.
다윗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았고 부당하게 보복하지 않았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사랑받는 자로서 왕위가 잘 계승되었다. 지금까지 내용은 너무나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솔로몬의 최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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