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에 대한 질문 답변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나요?
그리고 하나님과 대적되는 ‘악’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나의 답변:
1. 악의 기원(죄, 혹은 사단의 의미에서)
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므로 그의 창조물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깃들기에 자체로 선하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이다. 그러나 그 전에 악은 존재하였다. ‘악’이란 단어를 ‘죄’라는 단어로 본다면 아담의 범죄가 그 시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행할 수도 있는 가능체로서 인간을 만드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죄의 근원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단의 존재는 천사장 루시퍼의 타락으로 말미암았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해지려했고, 따라서 천상의 자기 수하의 피조물들을 이끌고 함께 타락하였다 (계12:4) 동기는 하나님처럼 높아지고, 그분처럼 예배받고자 하는 교만함이었다.

2. 선악과를 만드신 까닭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구속사의 맥락에서 이것만한 정답이 없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실 때 인간이 범죄할 것을 아셨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계획도 이미 가지고 계셨다. 독생자를 통해 구원하시려는 그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며, 성령으로 난 새로운 인간을 지어내신다. 인간은 일련의 구속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죄성과 그에 대비되는 그리스도의 품성,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장기적인 마음으로 선악과를 만드셨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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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
제가 알고 있기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에게 순종을 바라셨던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간이 범죄할 것을 아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기때문이라니..머 그거야 하나님만 아시는거겠지만..헷갈린다..알려주셔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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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하나님은 물론 인간을 창조하실 때 순종함으로 서로 사랑하며 교제하기 원하셨고, 찬송받으시고 영광 받으시기 원하셨기에 인간을 만드셨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불순종하고  타락할 존재임을 알고 계셨다는 점이지. 그것은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선악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로 변모된 것은 아니라는 거야.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던 천사들의 타락과 같은 이유로 인간은 타락했지만 그 타락은 선악과 때문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교만의 죄 때문이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람에게 그것이 있다는 점을 아셨을거야. 하나님의 전지하심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순종을 원하셨지만, 불순종도 알고 계셨는데, 그 두가지는 동시에 가능하다는 거야. 그건 선악과 사건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의 역사속에서 언제나 드러나는데 예를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선민으로 거룩함을 원하셨지만, 그들은 그렇게 살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계셨지. 언제나 사람은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했어. 하나님은 그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셨지. 그들이 회개하지 않을 거란걸 알면서, 회개하라고 하시는거야.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실 때도, ‘그들은 너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너를 핍박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외쳐라. 내 말을 전해라’ 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들은 너희를 핍박할 것이다.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해라’ 하시는 거지.
어떻게 결과를 아시면서 이미 그 반대의 결과를 원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다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고 봐,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상의 전후관계로 사건의 인과관계를 깨닫는 시간 내 존재 이지만, 하나님은 시간 외 존재이시고,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 분의 뜻을 인식하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지.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드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다시 오심으로 창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을 뿐이야.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거야.
흔히 선악과를 왜 만드셨냐고 사람들이 묻는 것은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께 아담의 죄와 그 범죄의 결과의 일부 원인 제공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결론에 치달을 수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기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거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인제공자라면 그 분은 그보다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하신 분이시기에 그런 것이지. 타락의 원인은 선악과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아담에게 있었고, 구원의 원인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어.
하나님께서 욥을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권세를 주신 것도, 어쩌면 마찬가지 맥락일 수도 있다고 봐, 하나님께서 욥이 순종할 것이라고 아셨을까. 아셨을 테지, 욥은 고난 중에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이전보다 더 나은 복을 받았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욥을 고난에 처하도록 만드신 원인제공자가 아니라, 욥에게 더 큰 복을 베푸시고 욥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우리를 고난 중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점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주시는 고난은 이유가 있다는 사실도 보여주신 점이지. 사람은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분을 깨닫고 또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존재니까.
선악과의 사건도 선악과 사건이 주어진 결과 자체만 보고 하나님의 계획을 의아하게 여기면 안된다는 거야.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시고, 너희는 비록 나에게 범죄할 수 있는 존재들이지만, 나는 여전히 너희들을 사랑하는 사랑의 존재다. 라는 점을 역사를 통해 보여주시기 원하셨다는 거야.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을 원하신 분이 아니셨지만, 인간의 타락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고 계셨고, 선악과를 통해 인간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것이야.
만일 선악과를 만들지 않으셨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다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인간이 타락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하나님 밖에는 소망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분은 참으로 사랑할만하고,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독생자를 내어주실만한 선하시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목적은 거기에 있다는 거야.


선악과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위대한 사랑을 입증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는 사살은 알겠습니다…하지만…정말 악하게 생각한다면…그러한 선악과가 그리고 우리들 인간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큰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장난감밖에 안된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는거 아닙니까?…하나님께서는 시공간을 초월하신 분이시고 이미 결과를 알고 계셨는데…어째서 지금처럼 슬픈일들(현실적으로)이 생겨날것들을 아시면서………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해결하셨는지? 가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혼자 해결되는 문제들도 있고 해서 답변을 조금 늦추었습니다. 사실 답변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나왔던 이야기들을 다시 반복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겠지만요. 님 글처럼 하나님께서는 슬픈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도 아니었으며, 그분이 선악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 슬픈 일은 인간 스스로 택한 결과였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슬픈 일을 겪을 인간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고, 또 방주를 만들게 하시고, 또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또 궁극적으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하나님 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계획과 사랑이 우리 인간이 행한 행위와는 비교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버렸으나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우리는 범죄하였으나, 그분은 용서하셨으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못박았으나,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한가지 사실만 분명히 한다면 이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선악과 때문이 아닙니다. 사단의 꾀임 때문도 아닙니다.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거스려 택한 결과입니다. 아직도 이 부분이 불명확하여 같은 질문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에스겔서 18장에 있는 말씀은 이러한 질문에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답변이 아닐까 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지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만일 의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는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족속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나의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겔 18:23-32)


2006.4.12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질문한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야하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표현만 가지고 문제를 파고들어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아주 심오한 철학적인 질문도 때로는 사소한 삶에서의 문제때문인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 철학적인 대답보다 그 문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더 유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보다 돌려서 묻는 것에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쓸 당시 나의 대답들은 이런 면에서 미숙했던 것 같다. 아직도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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