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믿으면 항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되지만 남을 믿으면 주위 사람들의 찬동을 받는 것이다. 이를테면 네플류도프가 신, 진리, 재물, 빈곤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일로서 간주했고, 어머니나 고모는 점잖게 놀리는 투로 그를 ‘우리의 친애하는 철학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소설을 읽거나 외설수러운 이야기를 듣거나, 통속적이고 우스꽝스러운 프랑스 희극을 보고와서 재미있게 그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그를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것이다. 그가 절약하거나 하면… 그것을 일종의 색다른 허영이라고 비난했고… 특별히 사치스러운 장식을 하느라고 돈을 낭비하면… 모두들 그의 취미를 칭찬하며 값진 물건을 선사하기도 했다.
…(중략)
처음에는 네플류도프도 싸워봤지만 그 싸움은 어렵기 그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자기를 믿었을 때 바르다고 생각하던 것은 모조리 다른 사람에게는 악으로 간주되었고, 또 그와 반대로 자기가 믿었을 때에 그가 악이라고 생각한 모든 것이 주위사람들에게는 착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은 네플류도프가 자기를 믿는 것을 단념하고 남을 믿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부정이 불쾌했지만… 술과 담배 맛을 배워서… 나중에는 오히려 커다란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 톨스토이 ‘부활’, 13장 중에서 더 보기 “톨스토이, ‘부활’”
엔도 슈사쿠, ‘침묵’
자이툰 교회에서 김진홍 목사님의 책과 또하나의 책 ‘침묵’을 읽게 되었다. 제목에 무엇보다 마음이 끌리었던 것은 내가 예전부터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주제에 끌리고 있었을 뿐더러, 잠깐 살펴본 이 책의 내용이 17세기 포르투갈 선교사의 초창기 일본 선교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바로 포르투갈의 카톨릭 선교사인 로드리고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결국 배교를 택하고 마는 것이다. 더 보기 “엔도 슈사쿠, ‘침묵’”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2)
오늘은 이 구절에 대한 이해를 기록해둔다.
공관복음서를 읽고 있는데 특별히 혈루증 앓던 여인과 바디매오 이야기가 새로운 감동을 주었다. 혈루증이라는 부정한 병을 앓던 여인은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수많은 의원들을 찾아갔지만,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그동안 많은 재산을 날리고 상처를 경험했다. 공동체의 소외도 경험했다.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었으며 사람들과 접촉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여자는 예수께서 그 가운데로 지나가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의 옷만 붙들어도 병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그녀는 혈루증으로 인해 부정했다.) 그녀는 주저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몰래 그리스도 뒤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살짝 그분의 옷을 만지기로 한다. 마침매 예수가 그녀곁은 지날 때, 그녀는 몰래 그분 옷을 만졌다.
그녀는 천국을 침노했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았다. 예수님의 능력은 그녀의 피를 마르게 했다. 병이 치유되었다. 부정한 그녀는 하나님의 나라(천국)의 일원으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이방인처럼 버림받은 유대인, 영원히 부정한 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천국을 빼앗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놀랍게도 그것을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예수,
사람의 심중을 뚫어보시는 분이 갑자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호통을 치신다.
그녀는 ‘이제 죽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계획이 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어떻게 할까. 그녀는 자신이 손을 대었다고 밝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모두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녀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하게 예수께 자기가 한 일을 말씀드렸다. 그 이야기를 듣던 예수는 전혀 생각이 못한 방식으로 그녀를 부르셨다.
‘딸아…’
이 말에 얼마나 가슴 뭉클하였을까. 그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 따뜻하게 불러주는 말을 들은 것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외로움과 고통과 소외를 겪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제 그녀의 마음의 병도 치유함을 얻었다. 예수께서는 육신의 질병뿐아니라 외로움과 소외로 지친 그녀의 마음도 고치셨다. 그녀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그녀는 천국문 밖에 버려진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는 천국을 침노했고… 빼앗았다..
바디매오… 여기로 지방에 살던 소경거지였던 바디매오는 동료와 함께 구걸로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수많은 군중들이 웅성거리며 자기 옆을 지나가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이것이 무슨일인가하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하고 퉁명스레 알려주었다.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과연 그 분이 있단 말인가? 바디매오의 심장은 뛰기 시작한다. 흥분을 멈출 수가 없다. 평생한번 있을까 말까한 찬스.
하필 예수께서 여리고를 지나신다는 말인가..
그동안 소경 거지로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던가. 춥고 배고픈 것은 둘째치고, 자신을 죄인취급하던 사람들의 경멸과 소외감. 그에게는 얼마나 컸던가. 그는 어디계신지도 모르는 예수를 큰 소리로 불렀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의 욕이 쏟아졌다. ‘조용해라! 시끄럽다!’ 어디 왕이 입성하시는데 감히 방해하는가… 이분은 어서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길이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에는 어떤 신분인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소경이 된 것은 누군가의 죄 탓이겠지 ‘ 내 죄’이거나 ‘부모의 죄’이거나… 천국 바깥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 사람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던가… 나는 죄인…
‘천국’.. 그것은 자신과 상관이 없어보이는 단어였다. .. 그러나 그는 그것을 침노하기로 한다!
군중들의 욕? 그것은 이미 안중에 없다.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이므로.
그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자신이 평생 질러보지 않은 가장 큰소리로 예수를 불렀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께서 멈춰서셨다. ‘다윗의 자손’이라니 누가 나를 부르는가
평소라면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지 말라고 하셨을텐데, 오늘은 웬지 그런 말씀이 없으시다..
‘그 사람을 불러라’
사람들이 소경에게 그 말을 전해주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그분 앞으로 뛰어갔다.
예수는 질문하신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이 질문은 거지였던 바디매오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물으신 것이다.
‘돈을 줄까? 아니면 옷? 아니면 무엇을 줄까?’ 다시말하면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보느냐? 내가 너에게 어떤 것을 줄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그의 믿음의 크기를 보고자 하신 것이다.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돈이 필요해서 부른 것이라면 평소에도 얼마든지 구걸할 수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보는 것’이다. 나도 ‘이 죄인의 딱지’를 떼고 싶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는 가슴이 여미는 아픔을 느끼셨다. 그런 불쌍한 마음으로 그의 눈에 손을 대사 고치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천국을 침노했다… 천국문 밖에 서있던 존재.. 그는 소리질러 천국을 침노했고 그것을 빼앗았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은 귀신들려 있었다. 그녀는 헬라인… 가장 하나님의 나라에서 먼 자… 주로 지방은 철저하게 헬라화된 이방지역이었다. 예수께서는 두로 지방에 들어가셨다. 몰래 들어가셨지만 그 소문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도 미쳤다. 그녀는 예수를 찾아갔다.
‘주님 내 딸이 귀신들렸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은 반응이 없었다. 그분은 이스라엘민족에게 관심이 있었다.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았다. 이방인보다는 이스라엘이 우선이었다.
성령이 오시는 그 때… 복음은 이방까지 선포될 것이며, 그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 그분은 사역을 – 십자가 사역을 – 준비중이었다.
그의 발로 사단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는 것이 먼저였다. 지금의 예수의 사역은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양에게 촛점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여인도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전제까지 포기하신 것은 아니었다. 순서가 달랐을 뿐이다. 결국은 둘(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방인이 참으로 싫었다. 왜 숨어계신 곳까지 와서 설치는가 – ‘주님! 쫓아내십시오!’
예수님도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그것은 두가지이다.
‘넌 자격이 없다는 걸 아니?’
또하나는 ‘너 혹시 나를 이방 마술사처럼 생각하는것 아니니?(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니)’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의 어린양 외에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은 고집스러웠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의 표현을 들으셔야 했다. 단순히 도와달라, 고쳐달라는 말은 무의미했다.
‘자녀의 떡을 개들한테 던지는 것은 마땅치 않다’
자존심을 건드렸다. ‘넌 천국의 자격이 없잖아.. 그리고 난 마술사가 아냐’
그녀의 대답은 놀랍도록 겸손하고 현명하였으며, 천국을 침노하는 믿음이 있었다.
‘주여 그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녀는 주인의 음식, 아들의 음식을 빼앗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자격없음을 알았다. 또한 부스러기 만큼의 작은 예수의 능력이라도 충분히 자신의 딸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믿었다. 진실로 예수께서 칭찬했던 백부장과 같은 믿음이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작은 능력으로 하실수 있다는 믿음은 큰 믿음이다. 그녀는 예수를 크게 보았기에 부스러기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녀는 결국 천국을 침노하고 빼앗았다.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 16:16)
일기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가 되어서 낳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도 나에게 바칠 수 있니?
너는 그 자식보다 나를 더 사랑하니?’
하고 물으셨다
그 질문 속에는
‘너는 내가 자식을 죽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니?
내가 그 아들을 통해 이루겠다고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니?
그 자식을 내가 다시 살려내 너에게 돌려줄 것이라는 것을 믿니?
너는 그 아이의 배를 갈라야해 그리고 그 내장을 태워야하고 완전히 태워 없애서 나에게
번제물로 드려야 한단다.
그러나 나는 그를 다시 살려낼 것이야. 너는 그 사실을 믿니?’
하고 물으신 뜻이 담겨있다.
하나님께서는 동일하게 나에게 물으신다.
‘너는 너 때문에 그토록 고생했던 부모님을 등 뒤로 하고
나를 위해 나갈 수 있겠니?
나는 그보다 더 큰 것으로 갚아주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니?
부모님을 돌보지 않는다는 비난도 감수할 수 있겠니?
어머님을 편하게 모실 수 있는 권이 너에게는 있단다
그것… 포기할 수 있겠니?’
나는 이 질문에
‘예’
라고 대답했다.
이런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세상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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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0 일 일기 중에서..
군입대후 6개월째되던 때..
100일 휴가 때
마치 꿈을 꾼 것 처럼 100일이라는 시간이 내 곁을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힘들지만 즐거웠던 신병교육대의 5주간의 훈련..
그곳에서 주일이면 피아노를 치며 예배할 수 있었던 즐거움..
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군악대로 자대배치를 받고 놀랐던 기억..
처음 자대로 이동하며 탔던 차 속에서 설레이던 마음..
아, 그날은 비가 왔었습니다.
트럼펫이란 악기를 처음 잡을 때의 기분..
담당관님이 사주신 탕수육을 먹던 행복..
경비중대에서 힘들어하던 동기 봉섭이가 군악대로 바뀌었을 때 그 감동..
체육대회가 끝나고 함께 둘러앉아 먹던 삽겹살, 저녁식사..
100일간의 군생활은 그런 즐거웠던 기억들만 마음속에 남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밀려 절벽에서 떨어지던 새끼독수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고 도리어 즐거웠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어머니는 내가 다치지 않도록 그 날개로 업으실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고..
저는 그 날개 속에서 지난 100일을 보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지만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수양록에 가장 많이 적혀있는 말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저에게 군대에서 가장 힘든 것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보고싶은 가족들.. 주일마다 생각나는 중등부 아이들..
지금쯤.. 예배드리고 있겠지.. 회의중이겠지 하며
떠올리던 한명한명의 얼굴.
그러나 장래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에 일에 쓰신다면
그러한 모든 것들도 이겨내야한다고 생각하니
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무실 관물대에 좌우명을 쓰는 곳에
Ad Majorem Dei Gloriam 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For the Greater Glory of God!’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그곳에서의 나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크게 할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