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힘들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힘들다
걱정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걱정이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어렵다

그러나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힘들지 않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이길 수 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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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ivf 여름수련회 때 같은 조에서 만났던 K란 아이가 있었는데
9년전에 부모님 중 한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남은 한분도 암으로 투병중이시라는 거야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누가 써놓은 거였어

엊그제 그 이야기를 봤거든
예전 수련회 때 생각도 나고그 아이 홈피에 한번 찾아들어가봤어
얼마나 힘들까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전혀 아닌거 같더라
K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2주 남았다

2주후면 집에간다..
마지막 작은음악회.. 한 쿠르드 우정의 밤.. 큰 행사들을 끝내는날
참 아쉬움도 많았지만 이제 정말 집에가는거 같더라

이사야서 공부를 마치고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을 내내 공부했는데
이제 요한계시록을 보는 눈이 좀 생긴 것 같아.
다니엘 공부는 새로운 것을 많이 얻지는 못했어도
세친구의 믿음과 그 풀무불 안에 있던 네번째 사람을 볼 때
내 가슴이 화들짝 놀랐어.. 그날따라 그 모습이 너무 쇼킹하게 다가왔거든

아직 새하늘새땅 개념은 내세적인 건지 현세적인 건지 개념이 안서고 부활과 심판의 구체적인 모습과 논리적 순서가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개념만큼은 다 정리가 되었어.

예수그리스도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와서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멸하는 순간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라..
계시록이 심판과 재앙의 책의 의미지가 강했는데 완전히 위로와 소망의 책이 되었어.. 심판과 재앙은 인쳐진 자들의 몫은 아니니까.. 환난은 후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을 요한은 그림으로 그려주는거야..

마지막 행사를 끝내고 파병기간이 마무리 되려고 하니깐..
6개월 기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껴지더라..

시간이 참 빠르고 시편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처럼 내 날수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에대해서 또 묵상하게 되었어..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내 생애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또 바울이 이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임종직전의 고백처럼 나도 죽기전에 내가 걸어오지 않고 달려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달음박질 하는 자는 많아도 상얻는 자가 오직 하나인 것처럼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달음박질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바울과 조나단 에드워즈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너무나 위대해 보여

이제 집에 간다..
에벤에셀

사단에게서 나오는 것

좋은 상황은 하나님이 주시고,
그렇지 않은 것은 사단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로 나오거나 그의 허락하에 나온다.
성경에도 하나님의 성령이 고난으로 이끌거나 위험에 처하게 하거나 하나님께서 환난과, 어려움, 징계를 주신다고 되어있다.
다윗이 사울에게 받은 고난, 욥의 고난, 이스라엘의 애굽과 앗수르 종살이, 이스라엘이 겪었던 전쟁의 패배, 예수님의 제자들이 받았던 고난들을 생각해보라. 그 어떤 것도 사단이 하나님의 계획을 앞지르고 역사한 것이 없다. 때로는 인간의 죄로 인해, 또는 하나님의 다른 주권적인 역사하심에서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그의 계획아래 이 모든 것을 통해 인생을 선하게 이루어진다.
단지 그럴 때마다 악한 생각이 사단이 주는 생각으로인해
죄된 본성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이웃과의 관계를 해치는 생각이다.

servant mind

군대에 와서 알게된 것들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servant mind 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내면화되지 않아서 상당한 괴로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최소한 내가 입대하기전에 알고 있었던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긴다는 개념은 이곳에서 완전히 바뀌고야 말았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긴다’는 것은 단순히 발을 씻기는 세족식의 행위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제정하신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느낀 그것은 기존에 생각하던 개념과 완전히 달랐다. 나는 그것을 너무 쉽고 간단하게 생각하여 왔다.
왜냐면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섬긴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하실때 그 말이 제자도의 어려움을 표현한 비유라면 그것이 종이되는 것의 어려움을 비유하기에 썩이나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또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것인가 여기서 알게 되었다. 그것을 몸소 체험하는 것은 2000년 전 한 인물의 비유를 들으며 그것을 이해하는 것과 너무나 달랐다. 그 때는 ‘저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은 도저히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못하겠어!’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얼마나 그 기준에 아직 모자란 인물인가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파인애플 이야기라는 소책자를 읽으면서 책의 저자의 이야기보다 나는 더 나을 것이라고 은근히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환상이 이곳에서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들을 섬기는 행위를 거의 해본일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인상을 찌푸리면서 섬기는 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곳에 있는 사람의 종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얼마나 단순한 문제로 바뀌는지 조금은 알게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히 내면화되지 못했다. 남은 군생활기간 얼마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삶의 방식을 익힐 수 있을 것인가.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는 목표에 얼마나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정말 이사람의 모습은 그리스도와 같았다라는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나는 이 산을 또 넘어야 한다.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산의 크기보다 더욱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