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본 그림책들

오늘 영풍문고에 가서 오랜만에 그림책들을 보았는데 전에 보지 못한 아주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어서 그중에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개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번째 책은 페페,가로등을 켜는 아이라는 책인데.. 어떤 아이가 가로등을 켜는 하찮은 일을 하면서 그 일의 의미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페페는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가 없자 가로등을 켜는 일을 하게 되는데 가로등하나씩 켤 때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드린다. 더 보기 “서점에서 본 그림책들”

이성복, ‘제대병’

아직도 나는 지나가는 해군 찝차를 보면 경례! 붙이고 싶어진다
그런 날에는 페루를 향해 죽으러 가는 새들의 날개의 아픔을
나는 느낀다 그렇다, 무덤 위에 할미꽃 피듯이 내 기억 속에
송이버섯 돋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내 아는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오기도 한다 순지가 죽었다, 순지가!
그러면 나도 나직이 중얼거린다 순, 지, 는, 죽, 었, 다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에 있는 시이다.
마지막 순,지,는,죽,었,다 라는 구절에서 저자가 혼자 죽음을
되새김질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데
다섯개의 콤마가 그렇게 죽음에 대한 충격을 힘있게 그려낼 수 없다..

이성복, ‘그 날’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BWV 118, O Jesu Christ, mein Lebens Licht

O Jesu Christ, mein Lebens Licht
(오 – 예수 그리스도, 내 생명의 빛이시여)

Nancy Argenta, soprano
Michael Chance, alto
Anthony Rolfe-Johnson, tenor
Stephen Varcoe, bass
Monteverdi Choir & English Baroque Soloists
John Eliot Gardiner, cond

O Jesu Christ, meins Lebens Licht
Mein Hort, mein Trost, mein Zuversicht,
Auf Erden bin ich nur ein Gast
Und drückt mich sehr der Sünden Last.

오 – 예수 그리스도, 내 생명의 빛이시여.
나의 보배이시며 평안함 속에 날 지켜주십니다.
나는 이 땅 위에 한낱 나그네로 왔을 뿐,
죄의 짐이 나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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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 음악은 영혼을 위로하는 힘이 있다..
나는 이런 음악을 들으면 알수 없는 경외감에 휩싸인다..
아름다움은 진리이다..

거리에서

지하철 창구에 다다른 나..
이 아저씨는 오늘 하루종일 전철 표를 팔았어..


길거리에서 지금도 정신없이 조그만 김밥을 마는 이 분은
오늘 하루종일 김밥을 말았어..
이 딸은 부모님 도와드린다고 여기 와서 김밥을 같이 말고 자르고 해서 담아주고 있어..

리어카에 수제노트라고 써있는 노트들을 전시해 놓고 한쪽에서 노트를 만들고 있는 이 아저씨는 하루종일 길거리에서 책을 팔았네..
피곤하겠다..

집 앞에서 만난 이 할머니는 어제 나한테 길에서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했던 분이네
이 할머니 어렸을 적엔 어떻게 사셨을까?

어제 어머니 가게에 한 사람이 정장을 찾아가려고 왔다.. 700만원 되는 거라고 잘됬는지 꼼꼼하게 찾아보면서.. 돈많고 예의도 꽤나 바르게 보이던데 사람이 풍족해서 여유있어보이는 걸까.. 저런사람들끼리 모이는 곳에 살아가는 건 대단히 다를거라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나자신도 다른 어려운 나라의 빈곤한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그정도의 차이만 존재하는 거야.

저 버스 운전하시는 분은 오늘 하루종일 버스만 운전했네
한 두어시간 운전하시면 얼마나 쉬실까.. 피곤하시겠다
집에가면 어떤 아이들이 있을까..

저 음식점에는 또 하루종일 음식만 만들고 설거지만 하시는 주인이 있다.. 하루하루 매일 똑같이 하면서 장사가 잘되고 못되고 민감하게 그렇게 사는 거겠지..

매일 밖에 나가면 이쁘고 깔끔하고 사람 붐비는 새건물에 지어진 음식점을 찾고싶어하지만 가끔 구석진데 허름하고 장사안되고 손님 없는 집에서 식사하는 것도 좋은 일일거야..

그런 거리에는 오늘은 어디에 돈을 쓸까 하고 돌아다니는 또 한부류의 젊은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같은 일을 몇년동안 마음졸이며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돈버는 기계같은 어른들의 가게들과 그 가게들 앞을 팔짱을 끼고 연인과 친구들과 다정하게 걸어다니며 잘 노는 것이 멋있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젊은 부류의 사람들이 거리에 공존하고 있었어.. 사회는 이렇게 돈이 도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약속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럴듯한 까페에서 빙수를 시켜먹고는 저 젊은 부류의 청년들의 한사람이 되어 있었어..

집에 돌아오면서
잘노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생각에 나는 빠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세상에서 돈이 지배하는 모습을 찾기는 이렇게 쉬운데, 하나님이 지배하는 모습은 참 찾기 어렵구나..

누구나 거리를 혼자 걷다보면 이런 생각한번씩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