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선택

열왕기상 10장에는 솔로몬의 이야기가 나온다.. 솔로몬이 지헤를 구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 이후에 지혜를 구한 솔로몬은 여러 나라에 그 명예를 떨치게 된다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

솔로몬은 부함을 구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부귀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는 당대 최고의 부자와 지혜자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내어왔으니…

이 글귀는 열왕기상 10장 말미에 나오는 글귀이다. 이 글귀를 단순하게 읽으면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상당하였고, 솔로몬의 업적이 대단하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매우 큰 착각이다.
이것은 솔로몬의 매우 심각한 첫번째 인생의 대 실수의 기록이다. 더 보기 “솔로몬의 선택”

세 가지 시험

예수님께서 복음전파를 시작하시기 전에
(그분의 나이 서른이셨다)
사단에게서 세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하나는 돌덩이를 변하여 떡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최근 나도 이러한 시험을 받았다
사단은 너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물었다

풍요롭고 안정적이고 사회의 인정을 받으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유혹이나 시험처럼 다가온 것이 아닌 현실처럼 다가왔다

나는 그 시기 무척 배가 고팠으므로
일시적으로 영적인 눈과 귀가 어두웠다. 나에게는 떡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는 나의 인생으로 하여금 떡덩이가 되게 하는 것에 대해서 자주 그려보았다
그려보고 또 지우고, 그려보고 또 지우고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나는 시험은 받았을 지언정 넘어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떡을 위해 살지 않겠노라고 9년 전부터 생각해왔다.
나는 이러한 시험을 예상하고 있었다.


사단은 예수께 두번째 유혹을 펼쳤다
이 성전에서 뛰어내려보거라

성경을 볼 때 이 시험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널 지켜주실 것이다 넌 뛰어내려봐라

믿음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뛰어내리면 시험에 넘어지게 된다.
뛰어내리지 않아야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이상한 시험이었다
믿음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정답이 아닌가?
두려움으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시험의 촛점은 다른 곳에 있다.
사단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정말 그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보고 싶지 않니?

나는 그것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험을 받았다
하나님이 정말 느껴지지 않았다. 삶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뇌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나에게 신앙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인생은 허무했으며, 삶은 왜 존재할까 생각했다.
이 일이 정말 의미 있는 일일까? 사명이라는게 나에게 있을까?

사단은 이렇게 말했다.
‘너한테 그런 사명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던?
너 지금도 제대로 신앙적으로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무언가 할 수 있겠니, 너 신앙부터 확실히 해야하지 않니
하나님은 정말 계시니’

나는 귀가 어두워져서
오랜기간 그것이 사단의 속삭임임을 구분하지 못했다.


사단은 세 번째로 자신에게 절하라고 했다
그러면 천하만국과 영광을 주겠다고 했다

예수께서는 분명한 메시아적 사명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치적인 왕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혀 사람들이 인정하거나 칭송하는 길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길이었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길이었다.
심지어는 하나님께로부터도 버림받아야 하는 길이었다.

사단은 사람들이 너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라고 한다.
너 뿐만이 아니라 주위사람들에게도 좋은 풍요로운 삶이 네 앞에 놓여있다.
이 길을 가는 것이 좋다.

나는 이러한 시험에 대해서 이미 예전부터 대비하고 있었으나
이 시험이 이렇게 달콤한 것인지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안정되고 풍요로운 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길..

그러나 나는 세번째 시험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었으므로
정답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Es ist vollbracht, 요한수난곡에서

 

Evangelist (복음서가)
Da stund ein Gefaße voll Essigs. Sie fulleten aber einen Schwamm mit Essig und legten ihn um einen Isopen, und hielten es ihm dar zum Munde. Da nun Jesus den Essig genommen hatte, (포도주 잔을 들고 서있던 자들이 그것을 스펀지에 적셔 나무가지 끝에 꽂아, 예수의 입에 대자, 예수는 거부하고,)
sprach er: (가라사대)

Jesus (예수)
Es ist vollbracht! (다 이루었다)
 
 
30. Aria A
Violino I/II, Viola, Viola da gamba sola, Continuo 


Es ist vollbracht! (다 이루었다.)
O Trost vor die gekrankten Seelen! (상처받은 영혼의 위로!)
Die Trauernacht (슬픔의 밤)
Laßt nun die letzte Stunde zahlen. (최후의 때가 되도다.)
Der Held aus Juda siegt mit Macht (유대의 왕, 힘으로써 승리하고)
Und schließt den Kampf. (싸움은 끝나도다.)
Es ist vollbracht!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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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수난곡에 나오는 곡으로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곡이다.
특히 비올라 다 감바의 영혼을 할퀴는 듯한 음색이 노래하듯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마음처럼,
겸손하면서도 비장한 각오로 무장된 듯이 흘러간다.


소프라노가 아리아를 부른다.
슬픔과 그러한 슬픔이 주는 위로.


갑자기 그의 죽음이 싸움에서의 승리임을 노래할 때
순간 다른 곡으로 변한 것처럼 힘이 넘친다.
모든 싸움은 끝났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마지막은 다시 조용히 예수의 마지막 한마디 ‘다 이루었다’를 가슴에 되뇌이며
아리아가 끝난다.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르네 지라르의 책이야 말로 내가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던 책이다. 그의 이른바 ‘희생양 메커니즘’ 은 인류학적 방법론을 기독교에 적용시켜 기독교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종교로 다시보게한 일대 혁명과 같은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의 책 첫머리 서문에 그는 종교비교학자들이 기독교를 다른 신화들과 비교하면서 기독교 자체를 신화로 전락시켰음을 지적하고 현대 기독교가 사라져가게 된 세태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고등비평으로 기독교는 점점 신화화되었고 하나하나 진리들은 의미를 잃어가는 현대 속에서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바로 인류의 폭력성을 성경의 이야기인 ‘희생양’ 을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신화들과 성경이 다른 점을 밝힌다. 그리고 기독교를 새롭게 사상계에 등장시킨다. 실로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대 변혁과도 같은 사상이다. 이러한 신선한 충격… 아직 중간정도밖에 책을 읽지는 않았다. 남은 감동은 후에 더 기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