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걷자, 산울림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마음
한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니누나 이마음

조그만 곰인형이 웃네
밤늦은 가게 불이 웃네
끌러버린 가방속처럼
너절한 옛일을 난 못잊어하네

그래 걷자 발길 닿는대로
빗물에 쓸어버리자 이마음
한없이 정처없이 떠돌아
빗물에 떠다니누나 이마음..

지나치는 사람들은 몰라
외로운 가로등도 몰라
한꺼번에 피해버린 꽃밭처럼
어지러운 그 옛일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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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귓 속에 꽂은 이어폰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나오던 산울림 노래들..
비 오는 날 걷다보면 문득 나도 모르게 그 때처럼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끌러버린 가방 속처럼 너절한 옛 일을 난 못잊어하네’

웃음의 의미

교회 5층 옥상에서
이제 막 뒤뚱뒤뚱거리는 뜀박질을 배운 조그만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놀이는 바로 뛰어다니기였다 한쪽 벽에서
출발
해서 다른쪽까지
손으로 집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놀이였다


몇 발자욱 앞에서 출발해도
벽을 집지 않고 돌아와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옥상에 꽃처럼 피었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의 에세이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으며 울다 웃다 흘러간 하루였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수성을 소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이 땅의 2009년 5월을 살아가는 30세 중에 그녀처럼 생에 대한 집착 또는 진지한 시선, 때로는 날카로운 물음들로 고뇌하는 영혼들이 있을까. 더 보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수백년이 지나면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어떤 보람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마치 어떤 즐거움도 간직하지 못한 것처럼
마치 어떤 슬픔 또는 괴로움 또는 절망도 겪지 않았던 것처럼

어떤 눈물 자욱도, 어떤 고함도, 어떤 속삭임도, 어떤 설레임도
하나의 화음이 세상에 뿌려지듯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그 어떤 소중함도
뿔뿔이, 마치
하룻밤 거세게 불었던 바다 물결처럼

흩어지겠지만

나는 그 흩어짐을 사랑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 5번의 숨막히는 장조 피날레처럼,
화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