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년이 지나면
마치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마치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어떤 보람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마치 어떤 즐거움도 간직하지 못한 것처럼
마치 어떤 슬픔 또는 괴로움 또는 절망도 겪지 않았던 것처럼
어떤 눈물 자욱도, 어떤 고함도, 어떤 속삭임도, 어떤 설레임도
하나의 화음이 세상에 뿌려지듯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그 어떤 소중함도
뿔뿔이, 마치
하룻밤 거세게 불었던 바다 물결처럼
흩어지겠지만
나는 그 흩어짐을 사랑해야 한다
쇼스타코비치 5번의 숨막히는 장조 피날레처럼,
화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