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7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씨는 복음이 아니라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뿌린 기도가 바벨론 1차귀환으로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때가 되니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죠.
그리스도인과 죄
이런 찬송시가 있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이 질문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괴로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는 일들은 예수님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와 같은 일들 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예수님, 저는 당신에게 드린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항상 죄만 짓고 예수님
께 나의 십자가만을 드려왔습니다.
저에게 죄가 이리도 많은데 제가 무엇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 내가 너의 십자가를 진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언제 나에게 준 십자가를
도로 가져가라고 했느냐? 너의 십자가는 내가 모두 진다. 나의 피는 끊임없이
온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는 생수같이 넘쳐나는 것이건만 네가 빨아먹는 몇
방울의 피가 나에게 문제가 되겠느냐?
너는 내가 주지도 않고 취하여고 하는 줄 아느냐?
내가 쏟아준 피 너에게 쏟으라고 하지 않는다. 나의 죄사함을 네가 받아야
또 네가 나에게 줄 것이 아니겠느냐?
나는 너에게 죄책감을 주기 위해서, 네 죄 때문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에
평생 괴로워하며 살라고 대신 죽은 것이 아니란다. 나는 너에게 평안을 주기 위
해서 죽은 것이란다. 내가 너에게 주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고 하지 않았느냐? 세상사람들도 느끼지 않는 죄책감을 네가 더 느낀다면
그것이 나의 십자가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란다.”
선의의 거짓말
어떤 책에서 이런 예를 들었다.
한 그리스도인을 자칭하는 농구선수…
성경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기에..
“저는 속임 동작(훼이크)를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라고 하
셨습니다.”
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느냐고…
출애굽기에 보면 산파들이 이스라엘 아기들을 살려주고는 바로왕에게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일부러 살려준 게 아니라 자기가 도착하였을 때 이미 그들이 아이를
낳아서 그렇게 된것이라고 둘러댄다. 말씀에 보면
산파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신지라..
(출 1:21)
라고 되어 있다. 그들의 거짓말을 가지고 성경에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
히려 좋은 평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하는 선의의 거짓말까지 하나님께서 반대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선의의 거짓말인지 자신을 위한 핑계인지는 끝
까지 고민해보아야할 문제다.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6-8)
아!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내가 QT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가 아니구나
성경통독을 일 년에 몇 번 했느냐가 아니구나
기도를 하루에 몇분 하는가가 아니구나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싸매주고
나에게 괴롭게 행한 사람을 용서하여 주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후대하며
외로운 자들에게 찾아가 풍어주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조금 불만이더라도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겸손과 섬김,
비록 작지만
그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버리는 것.
목숨까지도 상대하지 못하는 친구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구나.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꼬박꼬박 QT를 하라 하시지 않았구나.
하나님께서 성경통독을 일년에 몇번 해야한다고 하시지 않으셨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말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으로 묵상하면서
아! 그것이 아니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
다. 오히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보여진 독생자를 아끼지 않는 하나님의 사
랑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앞에 드렸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네가 네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항상 이야기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뜨거운 사랑은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돌아봅니다.
아들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