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그림을 알레고리화라고 한다. 그림의 사물마다 의미를 담고 있는 그런 종류의 그림 말이다.
이 그림에서 베르메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화가란 어떤 사람인가?’
소녀가 보인다. 한 손에는 나팔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었는데 이런 모습을 한 여인을 ‘역사의 뮤즈’라고 한다. 이 책은 투키디데스의 책이며, 월계관을 쓰고 있으므로 ‘명성’을 상징한다.
책상에는 가면이 보이는데 이것은 모방을 의미한다.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그는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를 그리며
화가는 그림을 순서없이 월계관먼저 그리고 있다. 이는 화가의 의도를 나타내는데 한번 들은 설명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커튼은 숨겨진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이다.
베르메르는 다른 그림은 다 팔았어도 죽을 때까지 이 그림만은 팔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의 야망이 담긴 작품이다.
오토 딕스, ‘열 처녀의 비유’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13)
Henri Nouwen
“고흐만큼 나에게 영향을 준 작가나 화가가 없었다. 깊은 상처의 사람, 놀라운 재능을 가진 고흐는 나 자신의 아픔과 재능에 다른 사람이 줄 수 없는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흐는 나의 전 생애의 영적 인도자로서 나의 영적 생활을 이끌어 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고흐야 말로 신학적 성찰을 위한 참된 근원이 됨을 발견하도록 한 것이다. 고흐는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법 뿐 아니라, 삶의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있다. 그의 그림은 마음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고, 고흐는 언제나 한 목회자로 남아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우리는 그가 회개를 촉구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 사실이 바로 고흐의 그림이 지닌 깊은 우주적 호소력일 것이다. 고흐는 사람의 실패와 고난과 기쁨, 그 모든 것을 겪었고 또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그의 그림 속에 모두 표현했다.”
– Henri Nouwen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림’
The Deposition, 1612, oil on wood, Antwerp Cathedral
렘브란트의 십자가에서 내리는 그림과 비교해서 보면 재미있다. 그림의 내용도 같고 시점도 비슷하지만 좀더 클로즈업 되어 있고, 루벤스 답게 색이 풍부하다.
남자의 붉은 옷과 흰 두루마기가 눈에 확 드어온다. 붉은 옷은 마치 흘러내리는 보혈을 상징하는 듯하다. 예수님의 몸의 묘사는 매우 건장한데 이것은 또한 한스홀바인의 그림과 비교해보면 좋다.
그가 이렇듯 건장하게 그린 것은 그저 아름다운 육체의 표현을 하고 싶었던 것이고, 주제는 그 목적을 위한 도두였던 것 같다. 그림의 주제보다는 대각선 구도나 육체표현 등의 미술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라고.. (아는 것은 없지만) 마치 그렇게 보인다. 램브란트나 한스홀바인의 그림보다는 감동은 덜하다. 하지만 흰색과 붉은 색의 대비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그림은 어쨌거나 비통한 그림이며, 여인들의 표정묘사도 그렇다. 그리스도의 표정은 완전히 지친 듯하다.
오토 딕스, ‘십자가를 지심’
개와 같이 목에 밧줄을 묶었다. 앙상한 발목은 힘이 풀렸다. 예수님은 언덕을 기듯이 올라간다.
채찍을 든 사람은 무자비한 표정을 지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호기심으로만 쳐다본다.
그 누가 이 사람이 자신을 위해 올라가는 것을 깨달았나? 그저 호기심어린 눈으로 하나님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선동한, 한 목수의 아들의 죽음으로만 알았을 뿐. 그리스도의 표정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그는 하나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