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에 대한 투자 너무 많다
18년에만 제약바이오기업에 투자된 자금이 2조원을 넘었다. 벤처캐피탈들이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산업이고, 신규창업도, 신규상장도 바이오업체들이 가장 많다. 국내가 상대적으로 고평가인지 최근에는 해외 인력까지 데리고 와서 국내에 회사를 만들기도 하고, 해외 바이오기업에게까지 코스닥상장 유치전에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잘은 모르지만 좀 이게 국가적인 방향착오이며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그냥 평소 생각을 정리할겸…
내 어줍잖은 생각으로는 국가적으로 바이오보다는 차라리 AI 및 소프트웨어, 컨텐츠 산업 육성에 더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해 봤다. 왜냐면 두 산업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생물학에 비유하자면 바이오는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행위랑 비슷하고, IT는 새로운 종을 만드는 행위와 비슷해보이기 때문이다.
신약개발과 유전개발은 거기서 거기
자연에서 새로운 생물을 찾아다니는 건 처음에는 쉽지만 누적될수록 기존에 찾아놓은 생물이 점점 많아져 난이도가 증가한다. 이런 비즈니스는 시간이 갈수록 혁신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이런게 또 뭐가 있을까? 가장 흡사한 게 유전개발 같은 E&P 비즈니스가 있다. 이미 수익성 높은 광구는 대부분 찾은 상황이라 후발주자들은 더 좋은 광구를 찾기가 힘들고 심해유전처럼 깊은 바다를 높은 비용을 들여 파야 새로운 광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예외적으로 기술발전으로 셰일오일 같은 싸고 좋은 유전이 간혹 발견될 수도 있지만)
나는 신약개발 사업은 E&P 사업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탐사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고 낮은 확률로 성공하며, 성공했을 때는 큰 돈을 벌 수도 있지만, 한정된 기간동안 돈을 번다는 점들이 다 비슷하다.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신약들은 이미 어느 정도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고, 기존보다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다. 지금 신약개발에 돈을 쓰는 건 금광 개발에 돈을 쏟아붓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금광개발은 골드러시 시대에 했어야 하는 사업이다.
유전이나 금광을 개발하려면 신규광구 탐사비용에 찾아낼 확률, 생산원가, 추정매장량, 현재 시세 등을 감안해서 IRR이 확보된 상황에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신약개발도 이런 차원에서 제대로 검토되고 있는 것일까?
Eroom’s Law
무어의 법칙(Moore’s Law)를 거꾸로 쓴 이룸의 법칙(Eroom’s Law)은 1950년 이후 9년마다 연구개발비용 10억 달러당 승인받는 신약의 수가 절반으로 줄고 있다는 법칙이다.
위 표는 2010년까지의 자료인데, 그 이후에도 상황이 그닥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12개 주요 빅파마의 R&D대비 투자 성과는 1.9%로 2010년 10.1%에서 더 감소했다고 한다. 신약시판까지 평균 비용은 1,188백만달러(2010년)에서 2,168백만달러(2018년)로 2배 증가한 반면, 약물 최대 매출액은 반으로 줄었다. 생명공학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갈수록 투자비는 많이 들어가고 기존 약보다 더 좋은 약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이런 사업을 국가에서 미래사업이라고 밀어주는 것은 방향착오가 아닐까(내가 보기엔 과거사업).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바이오에 투자를 늘리려고 안달인 것일까? 유전들처럼 선진국들에게 이미 선점당한 산업을 미래산업으로 부르는게 적절할까. 지금은 유전을 개발할 때가 아니다(유전개발은 안보 때문에 수익성이 낮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내가 생각하는 미래사업
차라리 AI를 포함한 IT서비스나 콘텐츠 사업에 더 비중을 싣는 것이 낫지 않을까. AI기술은 인터넷이 처음 도입됐을 때처럼 이제 막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느낌이다. 사실 알파고가 처음 대중앞에 보여졌을 때만해도 AI 뿐 아니라 딥러닝, 머신러닝 이런 단어들은 생소했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너무나 익숙한 단어가 되지 않았는가? 기술 발전이 너무 빠르다.
나는 아직도 알파고 바둑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는데… 당시 나는 가까운 미래에 주4일, 주3일 근무제가 도입될 세상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노동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레저, 컨텐츠, 교육, 피트니스(건강관리) 같은 산업이 유망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덧붙여 환경(재활용) 분야도 갈수록 중요해질 것 같다. 국가적으로도 이런 산업에 더 비중을 실어야 하지 않을까… 바이오 분야 투자도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과한 건 좀 걱정된다.
말씀 하셨듯이 요즈음은 저자산 트렌드라 (애플/페이스북 같은 저자산 기업들) 바이오는 돈이 많이 들어가서 별로죠.
거기다가 기초과학이 탄탄해야 하는 기본을 깔고 들어가는 곳이 바이오인데 한국은 기초과학에서 이미 퇴짜 맞는 나라입니다. 노벨상도 생전 못 타본 나라가 바이오에 뛰어든다라…..
바이오에는 신약분야만 있는것은 아니니까요, 새로운 신약개발이어렵다면 기존제품의 성능을 살짝 올려주는 바이오베터쪽의 전망은 더 좋다고 볼수있겠네요~ 성공가능성도 신약보다 훨씬 높고요
현직 안과의사입니다. 과거 블루홀 투자시기부터 투자에 훌륭한 통찰을 보여주셔서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글을 읽고있습니다.
바이오보다는 IT AI가 우리나라에 좋겠다는 큰 방향성을 제시하신 것도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가까이서 보면 10년 전에 비해 투자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역량도 깊이나 폭도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여기에 미래산업을 다 맡긴다는 것은 맞지 않겠지만 변화를 지켜볼 여지는 있는 듯합니다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글은 장황하게 썼지만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어설픈 지식만 가지고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정책적인 측면에서 살짝 아쉬운 마음이 있어서 적어보았으나, 말씀해주신대로 개별 기업이나 새로운 기술 차원에서 접근하면, 제가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발전들이 많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열심히 공부해보겠습니다.
말씀주신 맥락에서 최근 AI 바이오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약하지만 한국 회사들도 이런 쪽으로 준비하고 있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있고, 상장사도 나오고 있구요.
음 네 저도 글 쓸 때 AI와 바이오와의 시너지에 대해서도 생각은 해봤습니다. 잘 모르지만 아직까지의 제 생각은 AI가 바이오에 활용된다고 하더라도 큰 흐름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는 정도입니다. (1950년 이후 지금까지 R&D 효율을 높이는 수많은 기술, 관리적인 요소가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용은 계속 증가하고 수익성은 계속 저하되고 있다는게 제가 생각하는 큰 흐름입니다.) 예컨대, 제가 대학생때만 하더라도 Genome Project에 대해 많이 다뤘었고 기대도 컸던 것 같은데, 물론 생명공학에서 의미있는 기술적 도약이 이뤄지긴 했지만, Eroom’s Law로 표현되는 신약개발에서의 수익성 저하라는 큰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 것 처럼 보이거든요. 저는 AI도 비슷한 수준의 영향력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잘 모르지만 신약개발과정만 이야기해본다면 AI는 대부분 전임상단계에서의 스크리닝 효율성 정도 일부 높여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실질적으로 임상비용의 상당부분은 3상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이부분에서 임상의 복잡성이나 허들(성공기준)은 계속 높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거든요. AI의 역할과 개발의 효율성은 각 부분에서 물론 증대되겠지만요. 이 부분도 사실 글을 적으면서 소주제로 다뤄보고 싶었지만, 그냥 감만 있을 뿐 아직 제가 언급할 수준의 지식이 없는 것 같아 미뤄두고 있었는데 더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아직 잘 몰라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공부하다가 인상적인 링크들이 몇개 있어서 추가
https://www.biopharmatrend.com/post/108-the-evolution-of-pharmaceutical-innovation-model/
https://endpts.com/pharmas-broken-business-model-an-industry-on-the-brink-of-terminal-decline/
https://endpts.com/pharmas-broken-business-model-part-2-scraping-the-barrel-in-drug-discovery/
전무님 항상 좋은 고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쾌한 관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