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산업의 최근 트렌드와 지속가능한 성장 전략

C&EN의 ‘글로벌 톱 50’을 대상으로 글로벌 화학 기업들의 과거 10년간 실적을 분석해 본 결과, 분야별로는 커머디티 중심 기업의 약진과 종합화학 기업의 선전, 기술 집약적 제품을 생산하는 스페셜티 제품 중심 기업의 약세 현상이 두드러졌다. 또한 화학산업에서 유럽, 미국, 일본 이외 지역의 신흥 기업들이 화학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상위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강화됨에 따라 화학산업이 점차 글로벌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아울러 고성과 화학 기업들의 성장 전략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이들 화학 기업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었다. 고성과 화학 기업들은 변화에 민감하여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확보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글로벌 사업에 임하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한국 기업들과 대비된다.

< 목 차 >

Ⅰ. 글로벌 화학 기업들의 성과 분석
Ⅱ. 고성과 기업의 성장 전략
Ⅲ. 지속가능한 성장의 키는 비즈니스 인사이트

화학산업은 IT 버블 붕괴 후 2004년부터 세계 경제의 회복 추세에 힘입어 본격적인 호황 사이클에 접어들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성장세 회복, 중국 등 신흥시장의 고도 성장으로 화학산업 경기는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현재까지 호조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미국의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실물 경제 악화, 내적으로는 화학산업 내 공급 과잉 등이 맞물려 내년 이후 화학산업은 본격적인 하강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다. 예전의 화학산업 경기 사이클과는 달리 중동 및 중국의 급부상이라는 새로운 변수까지 가세하면서, 이번에 맞이할 화학산업의 불황이 어느 정도의 깊이로 얼마나 지속될 지에 대한 시각 차가 크다.

화학 기업들의 역사는 불황을 극복하며 성장을 거듭하기 위한 노력들로 점철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1998년 이후 글로벌 화학 기업들의 성과 분석을 통해 주기적인 경기 변동 속에서도 이들 기업이 어떻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에 대비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한국 화학기업들에 대한 시사점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I. 글로벌 화학 기업들의 성과 분석

사업 구조별 경영 성과 차이와 기업별 경영 성과 차이 등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을 실시하였다. 이를 위해 미국화학협회(ACS)에서 발간하는 화학산업 전문 주간지 C&EN(Chemical & Engineering News)의 자료를 활용하였다. C&EN은 화학 부문 매출을 기준으로 매년 ‘화학 기업 글로벌 톱 50’를 선정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 C&EN에서 발표한 글로벌 톱 50 기업들의 화학 부문 재무성과를 기초자료로 활용하였다. 영업이익률은 영업이익 자료가 있는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산출하였다.

1. 사업 구조에 따른 성과 분석

화학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가짓수는 매우 많다. 화학 기업들은 산업의 성격상 매우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정 화학 기업의 사업의 특성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는 분석의 편의를 위해 화학 제품 매출 중 범용 제품(Commodity)의 매출 비중이 70% 이상인 기업을 ‘커머디티 기업’으로, 전문 제품(Specialty)의 매출 비중이 70% 이상인 기업을 ‘스페셜티 기업’으로 분류하고, 그 밖의 기업을 ‘종합화학 기업’으로 구분하였다.

가) 개괄

1998년 이후 글로벌 톱 50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모두 73개이다. 이들 중 일부는 M&A를 통해 사라지기도 했고, 성과가 나빠 글로벌 톱 50에서 탈락하기도 하였다. 한편 1998년에서 2007년까지 모두 10년간 ‘개근한’ 기업은 30개로 전체 기업의 41%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10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지속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글로벌 톱 50의 전체 성과를 보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연평균 9.7%와 10.4% 증가하였다. 영업이익률은 1998년 10.0%에서 2007년 10.5%로 근소하게 향상되었다.

나) 스페셜티 기업 부문

사업 구조별로는 우선 스페셜티 부문의 상대적 지위하락이 눈에 띈다. 닷컴 붕괴의 여파로 화학 기업들은 2001년에 전반적인 매출 감소 현상을 나타냈는데, 특히 스페셜티 부문이 큰 타격을 입고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톱 50 기업들의 매출이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9.7% 성장한 데 반해 스페셜티 부문은 3.4%에 그친 것이다. 그 결과 스페셜티 기업 수는 1998년 24개에서 2007년에는 19개로 대폭 감소하였다. 스페셜티 기업이 감소한 것은 고유가 상황으로 접어들면서 커머디티 제품 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커머디티 기업의 매출 규모가 상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스페셜티 제품 영역에서 신제품 개발을 통한 새로운 시장 창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도 한 가지 큰 요인이다. 실제로 현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화학 제품들은 대부분 1950년대 이전에 개발되었고, 1990년대 이후에는 혁신 제품 자체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1999년에 톱 50에 속해 2006년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는 스페셜티 기업 중 자료 수집이 가능한 13개 기업의 화학 관련 R&D 지출을 살펴보면,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지출 비중이 1999년 4.1%에서 2006년 3.3%로 감소하였다. 이들 기업의 매출 총합이 17.1% 증가한 데 반해 R&D 지출 규모는 오히려 6.4% 감소한 것이다.

스페셜티 부문에서 공업용 가스 전문 기업들을 떼어놓고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공업용 가스 기업들은 독일의 Linde에게 인수된 영국의 BOC를 포함하면 2007년까지 모두 존속하고 있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공업용 가스 전문 기업들의 매출 성장률은 전체보다 조금 낮은 연평균 9.3% 정도지만, 영업이익률은 전체 평균인 8.7%의 그 배가 넘는 17.6%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최근에는 20% 이상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타 스페셜티 기업의 성과는 좋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면에서는 연평균 2.3% 성장하고, 영업이익률은 전체 평균을 조금 넘는 9.0%에 그쳤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혁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스페셜티 기업의 신제품 출시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고, 기술의 범용화로 인해 기존 혁신 제품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커머디티 기업 부문

한편 동기간 커머디티 기업은 18개에서 23개로 크게 증가하였다. 구체적으로는 11개 기업이 편입되었고 6개 기업이 목록에서 사라졌다. 새로 톱 50에 이름을 올린 기업의 특성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자원 및 시장에 기반한 형태로 중국의 국영 석유 및 석유화학 기업 Sinopec, 브라질의 국영 석유화학 기업 Braskem 등이 있다. 둘째, 독일의 거대 화학 기업인 BASF와 Shell의 범용 석유화학 부문이 합작하여 2000년에 설립된 Basell, 석유 메이저인 Total의 화학부문 자회사로 2004년에 설립된 후 2006년에 완전 독립한 Arkema 등 모기업에서 특정 사업만이 떨어져 나온 분리독립형이 있다.  마지막으로, 모체가 화학 기업이 아니면서 자본 투자를 통해 다양한 화학 사업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Ineos Group과 같은 전문 경영형이다. 커머디티 부문 역시 2001년에 단기적인 부침이 있었으나, 연평균 16.0%의 성장을 구가하며 평균 영업이익률 7.9%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순위가 급상승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Ineos Group, Formosa, Lyondell, Sinopec, Reliance 등을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급성장과 전통적 석유 메이저들의 다운스트림(Downstream) 강화가 스페셜티 기업들의 위상 약화를 초래하였다.

라) 종합화학 기업 부문

커머디티 제품과 스페셜티 제품을 두루 생산하는 종합화학기업의 숫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독일과 프랑스의 거대 화학기업이었던 Hoechst와 Rhone-Poulenc의 해체가 있었다. 나머지 6개 종합화학 기업은 2007년까지 톱 50에 남아 있었고, 2개 유럽 거대기업의 빈 자리는 Shin-Etsu와 LG화학이 채워, 종합화학 부문은 전반적으로 아시아 기업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이 부문의 매출 성장률은 8.6%로 톱 50 전체 성장률을 조금 밑돌았고, 평균 영업이익률은 6.8%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2. 주요 기업별 성과 분석

가) 개괄

2005년 이후 글로벌 톱 50에 계속 선정된 기업 중 화학부문 매출 규모가 100억 달러 이상인 기업들을 대상으로 분석을 실시하였다. 모두 25개 기업이 이 기준을 충족시켰는데, 이 중 2007년 기준 매출 규모가 400억 달러 이상인 기업이 3개, 200억 달러 이상 400억 달러 미만인 기업이 9개, 100억 달러 이상 200억 달러 미만인 기업이 13개였다. 1998년 톱 50에 속했던 기업은 25개 기업 중 19개로 76%의 생존률을 보였다.

2007년 매출액이 400억 달러 이상인 초대형 기업에는 BASF와 DOW, Shell 등이 있었다. BASF와 DOW는 화학산업을 선도하는 쌍두마차로 지속적인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석유 메이저인 Shell은 적극적인 다운스트림 투자를 통해 매출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매출액 200억 달러 이상인 기업 12개 중 스페셜티 중심 기업은 DuPont과 Bayer 2개사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대부분 커머디티 중심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다.

나) 성장성

매출 증가율을 보면,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Ineos는 30% 이상의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고 있다. 현재 PE, PS, PVC 등의 분야에서 매물이 나오면 과감하게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M&A를 통해 세 불리기를 하고 있다. Ineos는 Exxon 출신의 엔지니어였던 짐 랫클리프(Jim Ratcliffe)가 금융 전문가로 변신하며 1998년에 설립하였고, 다른 화학 기업들이 비핵심사업으로 분류해 매각하는 사업부문을 사들여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Ineos에 사업을 매각한 기업은 ICI, Degussa, Dow, Rhodia, BASF, Chevron Phillips, BP, Borealis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2007년 상반기에는 노르웨이 석유 기업인 Norsk Hydro의 폴리머 사업을 10억 달러에 인수하기도 하였다.

매출 증가율이 글로벌 톱 50 전체 성장률 9.7%의 2배 이상인 기업들은 Basell과 Lyondell, Formosa, Sinopec, SABIC 등이 있다. 이 중 2007년 글로벌 톱 50 순위가 각각 13위와 14위였던 Basell과 Lyondell은 작년 말에 합병되어 Lyondellbasell로 새롭게 태어났다. 설립 후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Basell은 2005년 이란의 국영 석유 기업인 NPC와의 경합 끝에 또다른 전문경영형 기업인 Access Industries가 인수하였다. 미국을 기반으로 천연자원 및 화학, 미디어 및 이동통신, 그리고 부동산 분야 등에 집중하는 Access Industries는 2007년 말에 역시 고성장 가도를 달리는 Lyondell을 인수하기에 이르러 외형 성장이 극에 달했다. 신흥화학 기업인 Sinopec과 SABIC은 각각 대표적인 시장 및 자원 기반형 기업들이다. Sinopec은 중국의 내수 공급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해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고, SABIC 역시 2010년 매출 목표를 600억 달러로 설정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Formosa는 원유 정제에서 NCC, 합성수지, 플라스틱 가공 부문까지 수직통합 체제 구축 및 PVC 등 핵심 제품의 지역적 다각화를 통해 사업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2000년 하반기부터는 정유 부문에까지 사업을 넓혀 정유-업스트림-다운스트림을 잇는 수직통합 체제를 구축하였다.

한편, 평균 이하의 성장률을 나타낸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스페셜티 전문 기업과 일본 종합화학기업들로 나타났다. 스페셜티 부문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뾰족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 종합화학기업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타 평균 이상의 양호한 매출 성장을 한 기업들은 대부분 석유 메이저들의 화학 부문 기업들로 나타났다.

다) 수익성

영업이익 측면에서 살펴보면, 단연 사우디아라비아의 SABIC이 독주하는 모양새다. SABIC은 저가 원료와 풍부한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글로벌 톱 50 평균의 3배가 넘는 최고의 영업이익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을 구가하고 있다. 다음으로 Shin-Etsu, Formosa, Reliance, DuPont 등이 평균 이상의 수익성을 얻었다. Shin-Etsu는 Silicon Wafer 및 PVC 분야에서 시기적절하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동시에 달성하였다. 가장 효율적인 지역에 신규 플랜트 건설, 합작, M&A 등을 이용한 과감한 투자로 주력사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였고, 북미 PVC 4대 메이저 중 하나로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Formosa는 투자 지역마다 수직통합 체제를 강화함으로써 성장과 수익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인도의 종합화학기업 Reliance는 원유 채굴부터 다운스트림까지 수직계열화를 하고, 성장성 높은 시장을 기반으로 지속적인 수익을 얻고 있다. 스페셜티 전문 기업들은 매출 성장률과 마찬가지로 영업이익 성장률 면에서도 대부분이 글로벌 톱 50의 평균을 밑돌며 여전히 맥을 못추고 있다. 그럼에도 10년간의 영업이익률 평균을 살펴보면, 대부분 전체 평균보다 조금 못하거나 나은 수익성을 거두고 있다. 한편 석유 메이저의 화학 부문 기업들은 매출 성장률보다 영업이익률 성장률이 높아 전반적으로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분석 종합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화학산업은 유럽, 아시아 등 3대 권역으로 분할되어 지역별로 다수의 기업들이 시장을 분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동 지역의 초저가 원료를 사용하는 기업의 등장과 화학 기업들의 글로벌화가 강화되면서 산업 집중도가 높아지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Data Monitor에 따르면, 제약을 제외한 2006년 화학산업의 규모는 1.55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글로벌 톱 50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6.4%에 달해 2003년의 37.4%에 비해 9%p 증가하였다. 최근 화학산업의 산업 집중도 증가 현상에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다. 산업 집중도의 증가는 개별 기업 규모의 거대화를 의미하는데, 이러한 현상이 전통적인 화학 메이저 기업들이 포진한 유럽, 미국, 일본이 아닌 중동, 중국, 인도 등의 신흥 기업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98년 글로벌 톱 50 내에서 유럽, 미국, 일본 이외의 국가에 속한 기업의 매출 비중은 3.9%에 불과했으나 2007년에는 17.1%로 급격히 증가해, 이들 기업들이 2000년대 화학산업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I. 고성과 기업의 성장 전략

글로벌 화학 기업들의 성장 전략이 어떠한 형태로 전개되었는지 분석하기 위해, 배인앤컴퍼니의 크리스 주크(Chris Zook)가 <멈추지 않는 기업(Unstoppable)>에서 제안한 ‘집중-확장-재정의(FER, Focus-Expand-Redefine)’ 사이클을 적용하였다. 이 사이클은 핵심사업을 강화하고 이에 주력하는 단계, 인접 사업으로의 확장을 모색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핵심사업 및 역량을 재정의하는 단계 등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연구 결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달성한 기업 중 상당수가 일정한 순환 사이클을 가지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집중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집중과 확장 단계를 반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 단계와 확장 단계에서는 II장의 ‘주요 기업별 성과 분석’의 25개 분석 대상 기업 중 주로 수익성을 동반한 성장, 즉 성장성과 수익성이 일정 수준을 달성한 기업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1998년부터 2007년까지 전세계 명목 GDP 연평균 성장률 6.9% 이상인 기업들은 성장성이 있는 것으로, 영업이익률 평균이 동기간 글로벌 톱 50 전체 영업이익률 평균인 8.7% 이상인 기업들은 수익성이 동반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재정의 단계에서는 성장성과 수익성 기준을 동시에 충족시키지 못해도 재정의를 통해 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였다. 사업 구조조정 등 화학 기업의 경영 활동에 의한 성과는 비교적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이하에서는 1998년부터 2007년까지의 경영 실적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는데, 그 결과는 동기간 이루어진 경영 활동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이전에 이루어진 경영 활동에 기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일부 기업들의 경우 1998년 이전의 기간까지 고려하여 분석하였다.

1. 집중 단계 : 핵심사업 집중을 통한 수익 극대화

‘핵심사업’이란 강력한 시장 지위와 최고의 경쟁 우위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다. 기본적으로 경쟁사들과 차별화되는 역량을 갖추고 품질이 인정된 제품 및 서비스를 수익성이 높은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면, 그 사업을 핵심사업이라 할 수 있다. ‘수익을 동반하는 성장’은 핵심사업에서 창출되기 때문에, 핵심사업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FER 사이클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집중 단계에서는 첫째, 고객 관점에서 경쟁사와 대비되는 차별화 요소를 확보하고 둘째, 주요 경쟁사 대비 지속적인 비용 우위를 달성하며 셋째, 경쟁사가 자사의 핵심사업에 재투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종합화학기업인 Shin-Etsu는 어떤 식으로 핵심사업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 기업이다. Shin-Etsu는 석유화학, 실리콘, 전자재료 등 각종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글로벌 톱 50에 오른 후 화학 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늘어난 유일한 기업이다. 전체 사업의 영업이익도 2007년까지 13년 연속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경기 변동 리스크를 줄이면서 각 사업의 핵심 제품에만 집중하는 전략이 있다. 석유화학 부문에 있어서는 PVC에 집중하고 있으며, 생산능력 기준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미국에 1973년 합작으로 진출해 현재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유럽으로 진출해 포르투갈에 이어 네덜란드에 생산 거점을 확보하였다. 이를 통해 PVC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유럽, 미국, 아시아 등 주요 지역에 모두 진출하여 지역별 경기 변동성을 줄일 수 있었다. 이 회사는 또한 엄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가격 교섭 및 수급 조절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호황기일 때도 장기계약 위주의 판매 구조를 유지하고, 국가 위험도까지 고려한 투자로 중국 붐이 불던 2000년대 초에는 미국과 유럽에 우선 투자하기도 하는 등 안정적 수익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그와 동시에 소수 인력으로 합리적 생산 시스템을 구현해 이를 전사로 확산하는 등 비용 우위 확보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프랑스의 공업용 가스 전문 기업인 Air Liquide는 고객 니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수익성 높은 고객과의 관계 형성으로 유명하다. 1998년부터 10년간 글로벌 톱 50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Air Liquide는 분석 기간에 톱 50 안에 계속 머문 기업들 중 영업이익이 계속 증가한 유일한 사례이다. 2007년 13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Air Liquide는 공업용 가스 시장의 27.1%를 점유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공업용 가스 시장은 일반적인 화학사업과는 달리 산업 집중도가 매우 높은 분야이다. 가스의 특성상 장거리 수송은 매우 높은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가스 전문 기업들은 대부분 고객들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Air Liquide는 전세계에 250여 개 이상의 자회사들을 두고 있다. Air Liquide는 성장과 수익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고객 산업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도 우량 기업들과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공정에서는 웨이퍼의 건조에 질소가 사용되고 이 외에도 다양한 공정에서 특수 가스가 사용된다. Air Liquide는 사용 규모만이 아니라 수익성 측면까지 고려해 고성장 산업인 반도체산업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Texas Instruments와 같은 기업들과 파트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Air Liquide가 지속적으로 고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절반 이상의 매출을 이와 같은 고성장 시장에서 거둬들인다는 점 때문이다.

창립 후 세 번째 세기를 맞이한 DuPont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유 부문을 보유해 전체 매출이 400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었지만, 사업 재정의를 통해 화학 부문에 집중하였다. 이에 따라 2000년대에는 나일론으로 유명한 섬유 부문을 분리하는 등 성과 분석 기간의 성장성은 상당히 저조한 편이지만, 화학산업 내 위상이 높고 혁신성을 통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해온 점을 평가해 예외적으로 소개한다. DuPont은 TiO2(이산화티타늄) 사업에서 경쟁사의 추가 투자를 성공적으로 견제한 사례이다. TiO2는 페인트, 종이, 플라스틱 생산에 이용되는 백색 안료의 원료이다. 1972년 미국에는 TiO2 제조사가 7개 있었다. 그 중 DuPont이 미국 내 시장 점유율 34%로 1위 기업이었다. 당시 갑작스런 원재료 부족 현상과 새로운 환경 관련 법안 통과로 인해 DuPont이 특허를 가진 공정 기술의 단위 원가가 두 번째로 제조 원가가 낮은 업체보다는 15%, 다른 고원가 경쟁업체들보다는 25%나 하락하게 되었다. 당시 DuPont은 외부 환경 변화로 얻게 된 원가 우위를 활용하는 전략으로 적극적인 설비 신증설을 택하였다. 그 결과 1981년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을 57%까지 확장하는 동안 경쟁 기업들은 전혀 설비를 늘리지 않았다. 또한, 1990년대 ICI의 TiO2 설비를 인수함으로써 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였고, 이로 인해 DuPont 내에서 TiO2 사업이 핵심사업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2. 확장 단계 : 인접 사업 영역으로의 확장을 통한 성장

기업들은 기존 사업 영역에서 성장의 한계에 직면할 때, 대부분 일차적으로 인접 사업 영역에서 성장의 기회를 모색한다. 이처럼 확장 단계로 접어든 기업들은 강력한 핵심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지역이나 고객군, 신규 유통채널 등으로 확장을 시도한다. 이에 성공하기 위해 첫째, 핵심사업을 기반으로 인접 사업을 추진하고 둘째, 심도 있는 고객 통찰력을 확보하며 셋째, 반복 가능한 인접사업 확장 공식을 창출해야 한다.

화학산업에서 폭풍의 눈이자 대표적 고성과 기업인 SABIC의 경우, 자원 기반형 사업 전개에서 벗어나 수요지 직접 진출뿐만 아니라 범용제품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1977년에 설립된 사우디의 국영 기업 SABIC은 2007년 화학부문 매출만 293억 달러로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에서 227위, C&EN 글로벌 톱 50에서 7위에 올랐다. 성장 초기에 SABIC은 자원 기반의 투자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만 해도 SABIC의 해외 플랜트는 제한적이었고, 자국 내에서 글로벌 메이저들과의 합작투자 위주로 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합작사업을 통해 SABIC은 자원을 제공하고 파트너들로부터 기술, 마케팅 전략 등 사업 역량을 이전 받았다. 2002년 들어 네덜란드 기업 DSM의 유럽 석유화학 부문을 인수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였다. 중동의 저가 원료에 기반한 강력한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줄곧 수출에만 의지하다 수요지에 직접 판매 거점을 마련한 것이었다. 2007년에는 영국 기업 Huntsman의 유럽 범용 화학사업 부문을 인수하였고, 곧이어 기능성 제품이 주력인 GE Plastics를 인수하였다. SABIC은 이를 통해 미국 시장 교두보 및 기능성 소재 기술력을 확보하였고,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 범용과 기능성 사업을 고루 갖추게 되어 글로벌 화학 메이저로까지 평가받게 되었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제품, 시장, 밸류체인 등 확장 가능한 대부분의 영역으로 확장을 시도해 성공한 것이다.

Dow는 선진 시장의 성장 둔화로 성장 가능성이 제한되자 상대적으로 성장 잠재력이 큰 이머징 마켓의 시장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글로벌 생산 거점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기업의 출현으로 인한 경쟁 심화에 직면하여 무분별한 다각화를 포기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사업 위주로 경영자원을 집중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Dow는 자산경량화 전략을 통해 진출 대상 지역 기업과 합작 사업을 추진한다. Dow의 합작사업은 수직통합 체제 구축과 통제권 확보를 원칙으로 추진된다. 수직통합 체제 구축을 통해 안정적 원료 및 원가 우위를 확보하고, 통제권 확보를 통해 Dow의 마케팅과 기술력을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능동적인 통제권 활용을 통해 Dow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업과의 중복 및 충돌을 방지하고, Dow 브랜드에 걸맞는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통제권 확보의 주 목적인 것이다. 세계 최대 석유 생산 회사인 사우디의 국영 기업 Aramco와 대규모 정유 및 석유화학 단지 합작투자를 추진하는 중에 투자비가 급증하자 당초 50대50의 투자 계획을 바꿔 각각 35%씩만 보유하고 30%는 상장할 계획이다. 이는 사실 2000년대 이전부터 자원 보유국들에 진입하는 외국 기업들이 로컬 기업과 합작사업을 진행할 때 적용한 주요 사업 성공 요인이다. 결국, Dow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역량을 잘 알려진 성공 방정식에 투입해 합작사업을 거듭 성공시키고 있는 것이다.

3. 재정의 단계 : 핵심사업의 재정의를 통한 사업 구조 전환

핵심사업 재정의가 필요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대다수 성숙기 산업에서 발생하는 미래 수익 풀의 감소, 둘째, 범용 제품 산업에서 나타나는 차별화 요소의 약화 셋째, 인터넷 경제 도래 등 새로운 사업 모델 출현 및 와해성 기술의 등장으로 핵심사업의 수익이 위협 받는 경우 등 세 가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은 성장성 및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게 된다.

지속적인 고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심사업 재정의의 시기를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재정의한 기업들은 기업 내에 이미 존재하는 숨은 자산(hidden asset)을 새롭게 정의해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숨은 자산으로는 현재 사업 플랫폼, 고객 자산, 핵심 역량 등이 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한 기업 중 절반은 고객을 출발점으로 삼았고, 나머지는 사업 플랫폼과 핵심 역량을 활용해 새로운 핵심사업을 발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Toray의 탄소섬유 사업은 장기간에 걸쳐 선도적으로 고객 니즈를 이끌어내고 적기에 비주류 제품을 새로운 성장 플랫폼으로 전환해 사업을 새롭게 정의한 사례로 볼 수 있다. 1998년 이래 글로벌 톱 50에서 중위권을 유지하며 고성과를 이룬 Toray는 일본에서도 기술력이 강한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Toray의 탄소섬유 사업은 1971년 생산과 판매를 시작한 이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주류 제품군으로 분류되었다.

탄소섬유는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철보다 강하며, 머리카락보다 얇은 특성에도 불구하고 적용 분야와 수요가 한정적이었다. Toray는 탄소섬유 산업에서 선도적인 지위를 구축했지만, 가공 및 성형의 어려움과 높은 가격으로 인해 조기에 수요가 확대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장 여건은 다시 소량 생산을 강제하여 가격 인하의 여지를 확보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사업성이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Toray는 오히려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탄소섬유의 성능을 강화하고 양산 기술을 개발하여 비용 절감을 추진하였다. 또한 고유가 상황과 환경에 대한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2004년 탄소섬유 관련 사업을 운영하도록 ‘탄소섬유 복합재료 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탄소섬유 사업을 Toray의 핵심사업으로 재정의하였다. 항공기 연비 절감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Toray 탄소섬유 사업의 상황은 급격히 호전되었다. 1982년부터 거래를 시작한 미국의 항공기 제조업체 Boeing과 2006년부터 향후 16년간 총 7,000억 엔에 달하는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의 의류업체인 Uniqlo와 5년간 소재 공급 및 개발 제휴를 맺고, 자동차 산업에서 탄소섬유 적용 확대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등 인접 사업으로 발빠른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탄소섬유 매출은 2003년까지만 해도 400억 엔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7년에는 800억 엔을 넘어섰다. 탄소섬유 부문은 매출 비중이 Toray 전체 대비 5.1%에 불과함에도 영업이익 비중은 17.5%에 이르러 Toray의 핵심사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Shell은 BASF와 Dow에 이어 2007년 글로벌 톱 50 3위에 랭크되었고, 화학부문 매출 469억 달러의 초대형 기업이다. 2000년 매출에서 3배로 성장한 Shell은 석유 정제와 석유화학 부문을 포괄하는 콤플렉스를 구축함으로써 강력한 석유화학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 수익성의 극적인 악화로 인해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 작업에 착수하였다. 수지 사업을 핵심사업으로 선정해 폴리올레핀 사업을 적극적으로 매수하였고, 유럽 등 석유화학 사업 조직을 통합해 경영 효율성 증대를 꾀하였다. 또한 농약 사업 등 비핵심사업의 매각과 비효율적 플랜트의 폐쇄도 함께 추진하였다. 2002년까지 이루어진 구조조정을 통해 규모가 큰 고객 기업에 화학 제품을 저가로 대량 공급하는데 주력하였고, 기초화학 분야에서 수익 구조가 안정적인 사업 부문만을 남기고 사업을 대폭 축소하였다. 이를 통해 Shell은 2003년의 적자에서 벗어나 이후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다. 대부분의 석유 메이저 계열 석유화학 기업들이 그러하듯 Shell도 석유 기업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크래커 플러스 원(cracker plus one)’이라는 전략을 활용해 왔다. 기본적으로 업스트림을 중점적으로 강화하면서 수익성 있는 다운스트림을 전개해 나가는 전략이다. 현재는 지역적으로 원료 우위가 있는 중동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중심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Shell은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함께 다시 한 번 핵심사업 재정의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의 정유 및 석유화학 연계 전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화학 제품 생산을 위한 CTL(Coal-to-Liquid), GTL(Gas-to-Liquid) 기술과 바이오매스로 화학 제품을 만드는 공정 기술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이오매스 기술은 연료 생산이 위주이지만 동시에 화학제품 생산과 관련해서도 기술 개발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이오매스로 생산한 디메틸카보네이트(DMC·Dimethyl Carbonate)를 폴리카보네이트(PC·Polycarbonate)의 원료로 사용하는 연구 분야가 그것이다. 현재 연구 중인 기술의 상용화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장의 흐름과 기술 트렌드 예측에 기반한 Shell 특유의 접근법을 감안할 때, 향후 화학산업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올 가능성이 있다.

III. 지속가능한 성장의 키는 비즈니스 인사이트

화학산업의 경기 사이클은 높은 투자 비용과 상대적으로 긴 제품 생명주기(PLC) 등으로 인해 다른 산업들에 비해 비교적 긴 편이다. 화학 기업이 불황을 이겨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단기 대응보다 중장기적 대응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당연하다. 사회, 경제적 변화는 보통 특정한 방향성을 가지게 마련인데, 이를 ‘트렌드’라고 한다. 따라서 기업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파악하려 하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나타날 사건들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기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예측하려는 것이다.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추세적인 변화, 즉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이 곧 비즈니스 인사이트이다.

액센추어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화학산업에서 고성과 기업들은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더 높고, 사업 목표와 제품 포트폴리오에 대해서 좀 더 긴 안목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성과 기업일수록 트렌드에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고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한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예는 Shell이라 할 수 있다. Shell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분석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위해 Shell은 단기적인 트렌드 파악을 위한 경쟁 정보팀과 중장기적 미래 예측을 위한 시나리오 플래닝팀을 운영하고 있다. 경쟁 정보팀은 현재의 사건을 모니터하고 그것을 분석하여 동향과 패턴을 찾아내는 역할을 수행하고, 중요 이슈가 발생하면 임원들에게 조기경보 시그널을 제시한다. 시나리오 플래닝팀은 지역적, 사회적 및 거시경제적 구조의 전개 상황을 모니터하고 거기서 유입되는 시그널을 내부 가정 및 시나리오에 비춰봄으로써 대처 방안을 강구한다. 나아가 이러한 시나리오 구축을 통해 경쟁 정보팀이 모니터링해야 할 중요 영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Science Company’를 표방하는 스페셜티 기업의 선두주자 DuPont은 기술 트렌드 분석을 위해 노력한다. DuPont 역시 시장, 기술,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예측에 기반해 R&D 투자와 사업 전개를 결정한다. 섬유사업에서 철수하긴 했지만, DuPont은 나일론을 비롯해 Kevlar, Tyvek 등 혁신적인 소재를 선보이며 신기술 개발의 첨병 역할을 하였다. DuPont은 신사업 개발 부서(CNBD·Corporate New Business Development Division)를 설립하여, 시장에 대한 통찰로부터 기회를 평가하고, 제품의 확장 수준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업 개발을 추진한다. 미래 예측에 기반한 신사업 전개가 주 목적으로서, 거시 트렌드 분석을 통해 사업 및 제품 니즈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 주요 기술 동향 및 잠재 시장 분석을 병행하고 있다. DuPont에서는 1927년 이후 4회의 혁신 주기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각 주기 내에서 성장과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는 시기가 있고, 비용 절감과 사업 재편에 집중하는 시기가 있다. 각 시기별로 사업 및 R&D 투자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자체의 성장 사이클을 인식하고, 새로운 사업에 대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다.

유수의 화학 기업들은 미래 예측 및 시장 분석을 통한 비즈니스 인사이트 확보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석유 메이저의 화학부문들은 장기적 에너지 수요 예측이 필요한 석유 및 정유 사업 조직과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공유한다. 국가 경제 개발 차원에서 성장하고 있는 국영 화학 기업 역시 장기적인 시각에서 사업을 전개한다. 화학 기업에 있어 경영 환경을 둘러싼 중장기 변화의 핵심을 파악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얻고, 이를 통해 변화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야 말로 수익을 동반한 지속적인 성장으로 가는 왕도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화학 기업의 과제

변화하는 경영 환경은 전세계 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고 있다. 화학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전자, 자동차 등 수요 산업의 글로벌화 가속, R&D 비용 확대, 신흥시장의 급팽창, 자본시장의 자유화 등 화학산업을 글로벌 사업으로 전환시키는 요인들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화학 기업들이 글로벌 사업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요소로는 자본, 자원, 혁신, 시장 등 4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화학기업들은 글로벌 사업 역량의 요소 네 가지 중, 어느 하나 경쟁력 있게 갖추지 못하고있다. 자본 면에서는 글로벌 화학 메이저들의 M&A 등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 자원 면에서는 산유국 기업들과 석유 메이저의 과점, 혁신 면에서는 일본 및 구미 기업의 강세, 시장 면에서는 지역별 국영 화학 기업들의 거대화 등에 막혀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화학산업에서 한국 화학 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화학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커머디티 부문은 첫째, 저가 원료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저가 원료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미주 및 아시아 지역에도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 둘째, 지역별 시장 기회에 기반해 사업 및 지역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해야 한다. 세계 경제는 중국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가장 큰 성장 시장인 중국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다른 지역에서도 다양한 시장이 성장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중국에 비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사업과 지역이 많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셋째, 제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추진해야 한다. 중동과 중국을 중심으로 범람하는 커머디티 제품들은 현 상태에서 가격으로 승부하기가 어렵다. 커머디티 제품에 가치를 더할 수 있도록 스페셜 그레이드 제품 개발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내 R&D 역량을 강화하거나 필요 시, 저가 연구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지역에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도 있다.

한국의 스페셜티 부문은 커머디티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기 때문에 전략적 자유도가 낮은 편이다. 커머디티와 비슷하게 사업 및 지역 측면에서 특화 사업의 틈새 시장에 집중하거나, 제한적이긴 하겠지만 기술 확보를 위한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대규모 물량 공세는 이겨낼 수 없고, 자체적인 기술 개발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적 대안들을 선택하여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은 결국 ‘어떤 사업을 어느 지역에서 누구와 함께 언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인 ‘왜’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 이유를 밝히고 실행력을 쏟게 만드는 원천이 바로 비즈니스 인사이트이다.

화학산업에 있어서 5년은 긴 시간이 아니다. 10년, 20년 후의 관점으로 사업에 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내수와 수출 중심의 한국 화학기업들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장기적인 글로벌 사업 역량 확보를 위한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에 집중하고 언제 확장해야 할지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이 부족하다 보니 변화를 선도하기보다는 따라가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학산업이 지역 산업에서 글로벌 산업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화학 기업이 생존하려면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 손 안에 있는 이익의 원천보다는 미래에 수익을 창출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을 찾도록 장기적인 시각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끝>

출처: L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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