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국수님 인터뷰 퍼온 글

[‘시골의사’ 박경철의 직격인터뷰]
마우스 잡고 프로게임 뛰어든 조훈현

비록 인기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그래도 250만 명의 애호가가 있는 바둑계가 최근 들어 급작스러운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 한국 바둑의 상징적 존재인 조훈현 국수가 있다. 그는 한국기원의 상임이사로서 온라인 바둑업체의 이사를 맡아 미풍을 일으킨 바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온라인 대국도 아닌 바둑 게임 ‘바투’에 뛰어들면서 아예 태풍을 불러왔다. 당대의 고수이자 일국의 바둑을 대표하는 프로기사가 헤드폰을 낀 채 마우스를 잡고 바둑게임에 뛰어들어 파격 행마를 보이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처음이다.

왜 그랬을까. 일각의 의심대로 돈을 더 벌기 위한 목적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바둑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고육지책일까. 그를 만나 속내를 들어보기로 했다.

1. 바둑이란 무엇인가.

토요일 오후 용산의 어느 백화점에 있는 상설 e-게임장에 얼추 오륙십 명 정도의 관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간간이 사오십 대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20대 안팎의 젊은이들이었다. 잠시 후 조훈현 국수가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무대에 올라가더니 K-1 링에 오른 최홍만처럼 두 손을 번쩍 들어 답례를 했다. 그 모습에서는 (인터뷰어가 기대했던) 어떤 종류의 어색함도 발견할 수 없었다.

Q: 네 살 이후 50년간을 바둑을 둔 셈인데 아직도 바둑이 재미있습니까?

내게 바둑은 재미있다, 없다의 경지를 떠났지요.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재미로 못 하듯 나도 최선을 다할 뿐이고, 그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 들어선 길이니 앞으로도 걸어갈 뿐이죠.

Q: 그렇다면 바둑이란 기(技)입니까? 술(術)입니까? 아니면 도(道)입니까?

일본에서는 기도(棋道)라고 배웠습니다. 일본은 차나 꽃꽂이까지 도를 붙이지요. 하지만 일본도 요새 바둑은 스포츠로 넘어오고 있어요. 이 때문에 바둑은 무엇이다, 이렇게 규정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에요. 어느 것 하나로 규정할 수 없고 판정 내릴 수 없는 것이 바둑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알지 못해 규정하기가 싫어요. 그저 흐르는 대로 도로 생각하건, 예술로 생각하건, 스포츠로 생각하건 자신이 느끼는 대로가 바둑이겠지요.

Q: 아홉 살에 입단 후 열 살 때 유학을 갔습니다. 본인 스스로 길을 결정할 나이가 아닌데 심경이 어땠습니까?

그때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게 꿈이었어요. 배로 가라고 했으면 속마음은 싫었겠죠. 어린 마음에 ‘비행기 한번 타자’ 그렇게 떠났는데 어느새 10년이 흐르더군요.

Q: 청소년기에 정규 교육보다 바둑 교육을 더 많이 받게 된 셈인데, 일본 생활은 어땠나요?

무인도에 떨어졌는데 먹을 것 없다고 그냥 죽을 수는 없잖아요. 고기도 잡고 열매도 따 먹으며 살아야죠. 인간은 떨어뜨려 놓으면 그 환경에 맞춰 자라게 돼 있어요. 나는 목적까지 있었으니 다행인 거죠. 좋은 일은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잘살아 배 곯을 일이 없었고, 둘째로는 훌륭한 스승에게서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죠.

(과거 프로기사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나치게 바둑 교육에만 치우친 탓에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조 국수는 다행히도 그곳에서 가장 부족해지기 쉬운 소양인 ‘정신’을 배웠다고 말했다.)

Q: 스승에게서 배웠다는 그 정신은 어떤 것이었나요?

우리 선생님(세고에 겐사쿠)은 도인이었죠. 나는 그 분을 사람 이상으로 봐요. 열 살의 나이에 일본말도 모르고 뭘 알았겠어요. 더구나 선생님도 당시 73세였는데 건강이 어땠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외국인 제자의 입문을 허락했는데, 스승이 ‘바둑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에서 꽃피웠다. 내가 다행히 중국의 우칭위안(吳淸源)을 키웠고 일본의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를 키웠지만, 한국에는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는데 네가 한국인이라 은혜를 갚게 됐다.’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당시에는 대체 한국에 무슨 빚과 신세를 졌나 생각했죠. 그러나 이 이야기를 지금 돌아보니 선생님이 보통 경지가 아니었던 거죠.

Q: 그렇다면 조 국수에게 그 스승은 어떤 존재입니까?

제가 같은 질문을 선생님께 한 적이 있었죠. 그랬더니 ‘답을 주는 것은 스승이 아니다. 가는 길을 갈 수 있게 만들어주고 길을 터주는 것이 스승이다. 이끄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생각의 차원이 달랐어요. 스스로 기도의 시범을 보이며 앞서 걸어가는 것이 스승이라는 뜻인데 당시엔 몰랐어요. 어린 마음에 ‘정신이 어두워지셨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가슴에 와 닿고 한마디 한마디가 새겨지네요.

Q: 조 국수 정도가 되면, 그렇게 배운 스승의 유산을 문하생들을 키워 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선생님은 1등이 아니면 안 받아줬죠. ‘배울 뜻만 있으면 아무나 와서 공부해라’ 이런 건 학원이 하는 거죠. 즉 스승은 1등 자질이 아닌데 시작하면 네가 불쌍하니 처음부터 딴 길로 가라고 하는 거죠. 그에 반해 기타니 문하는 제자가 60~70명 정도는 되었죠. 그중에는 성공과 실패가 혼재하죠. 나는 스승의 방식이 옳다고 생각해요.

Q: 그럼 지금 내제자를 키우지 않는 것은 아직 1등 자질을 만나지 못했다는 뜻인가요?

지금은 세계 1등할 사람을 거두기 쉽지 않아요. 예전에 운이 좋아 창호를 만났지만 이후에는 인연을 맺기가 어렵더군요. 재능이 부족해도 그저 바둑을 배우고 싶은 사람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주면 되고, 그 한 명을 만나야 하는데 솔직히 나는 아직 그런 걸 보는 눈이 없어요. 느낌은 있는데 확신은 없는 거죠.

Q: 그럼 내제자로 유일하게 가르쳤던 이창호는 어떤 제자였습니까?

일단 받아들인 후에는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창호도 스승의 뜻을 따랐다고 보죠. 지금 욕 안 먹고 있으니….

Q: 한데 이창호 국수는 내제자 시절 스승과 지도대국 몇 번 둔 것이 전부였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창호 입장에서는 섭섭한 게 당연하죠. 사람 만들어주고 갈 길 만들어주는 게 선생인데, 처음엔 나도 서운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듯이… 바둑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내 방식이 서운하다고 해도, 또 배운 게 없다고 해도 나로서는 할 말이 없어요. 제자가 배웠다고 생각하면 배운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죠.

Q: 이창호는 처음부터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내제자로 받아들이신 건가요?

아니요. 처음에는 ‘계륵’으로 생각했어요. 뭔가 아쉬운,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그런 정도로 보였어요. 한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죠. 어린 나이에 성실했어요. 창호는 ‘안의 천재’가 아니라 밖에서 ‘보이는 천재’죠.

Q: 안의 천재가 아니라 보이는 부분이 천재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능력만큼의 성실성 같은 것이죠. 창호는 100번 중에 한 번이라도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판을 크게 이길 수 있어도 그 수를 안 둬요. 창호에게 ‘왜 그 수를 안 뒀느냐’고 하면 ‘자기가 가는 길로 가면 100번 중의 100번을 반집이라도 이길 수 있다’고 하더군요. 이게 답이 될 수 있을 거예요.

Q: 기풍(棋風)의 차이라는 뜻인가요?

보통 바둑에서 계열, 즉 ‘유(流)’는 강자와 약자의 실력 차가 확실하죠. 그래서 같은 유로 강자를 극복하기는 어려워요. 내가 다가가는 만큼 상대도 도망가니까요. 하지만 정반대의 유나 ‘형(形)’으로 하면 이길 수가 있어요. 허를 찌르는 것이니까요. 그 점에서 바둑에서 전세(승리의 모양)를 중시하는 나와 반집이라도 이기면 승리하는 창호는 차이가 있죠. 굳이 비유를 들자면 이창호는 ‘번쩍번쩍류’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이세돌은 나와 유형이 비슷하죠. 그래서 창호는 나를 이겼고 이세돌은 다시 창호를 이겼고, 또 누군가가 이세돌을 이기려면 창호류나 혹은 다른 유가 나와야겠죠.

(인터뷰 중에 자연스럽게 일본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고지로’의 전설적인 결투 이야기가 나왔다. 한 사람은 장검을, 다른 사람은 쌍검을 사용했고 검법 역시 달랐다.)

Q: ‘번쩍번쩍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공식대로 말하면 창호는 ‘부동류’라고 하죠. 나는 ‘자유류’라고 하고요. 형에 매이지 않고 있는 데서 최선을 다하는 거죠. 한데 창호는 조용히 물처럼 기다려요. 그 부동의 흐름 속에서 번쩍번쩍하고 있는 거죠.

Q: 바둑에서 정석이란 어떤 것인가요?

원래 바둑을 배울 때는 정석이 필요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달라져요. 나는 처음에 ‘전투’에는 강한데 ‘정석’과 ‘포석’에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죠. 그래서 선생님 책 중에서 ‘정석백과사전’을 들고 모두 외워버렸죠. 이후에 바둑이 강해졌어요. 정석에 대한 걱정이 없었으니 말이죠.

Q: 모든 정석을 다 외워도 다른 단계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정석을 배운 다음에는 잊어버려야 하죠. 진정한 기사는 정석을 창조하고 끄집어내고 최선의 정석이 뭔지 만들어갑니다. 배움도 마찬가지예요. 선생에게 매 맞는 제자가 바둑이 세요. 왜냐? 스승이 시키는 대로 하면 매를 안 맞거든요. 그런데 스승이 두라고 해서 그냥 두면 왜 이렇게 두는지를 모르죠. 그것은 스승의 수이지 자신의 수가 아니에요. 이 때문에 스승에게 칭찬받고 매를 안 맞는 제자는 실전에 약해지죠. 반대로 자기 유로 두면 스승에게 맞아요. 하지만 그것이 내 바둑이에요.

Q: 그렇다면 굳이 스승에게 배울 필요 없지 않습니까?

아니에요. 그러면서도 스승에게 배워야 하는 이유는 100개 중 한 개의 생각지도 못했던 수를 배우기 위해서죠. 오로지 그거 하나 배우기 위해 99번의 매를 맞아야 하는 겁니다.

(인터뷰어가 어느새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무대인사 장면과 헤드폰을 낀 그의 모습을 보고, 당대 최고의 바둑고수를 만난다는 흥분이 가라앉으며 굳어 버렸던 인터뷰어였다.)

Q: 9단이면 입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경지에 이르니까 바둑이 어떻게 보이던가요?

나도 마찬가지지만 그 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보세요. 아마 다들 아직 멀었다고 말할 거예요. 그건 겸손이 아니에요. 처음이나 9단이나 같아요. 끝이 없는 길에 누구는 1m를, 누구는 100m를, 누구는 1㎞를 간 것일 뿐, 길 전체로 보면 아득하긴 매한가지죠. 하지만 아마추어들이 두는 것은 다음 수가 훤히 보여요. 굳이 말하라면 그 정도의 차이랄까요?

(사람이 한 분야에서 경지에 다다르면, 물리가 저절로 트인다고 한다. 고등어 배를 가르고 소금을 치는 간잽이 이동삼씨도, 시골장터의 이름 없는 혁필 화가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의 영역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물리와 이치가 트인 것이 느껴진다. 조 국수의 말도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다.)

2. 프로기사 조훈현 Vs 프로게이머 조훈현

나이 들면 보수가 된다? 조훈현은 반대를 택했다. 권위를 벋고 파격의 길로 들어섰다. [권혁재 전문기자]

인터뷰어는 바둑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입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문외한조차도 이해시키는 힘이 있다. 조 국수도 그랬다. 하지만 그전에 컴퓨터게임 장면을 지켜본 추억 때문일까? 결국 조 국수에게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Q: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은 그것에 대한 자부심과 보수성이 강한데 조 국수께서는 상당히 입장이 유연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입장 때문에 오해도 꽤 있던데요?

그 점에 대해 잡음과 말썽이 있지만 감수해야죠. 우리나라는 전보다 바둑이 침체돼 있고 그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바둑도 변해야 하고 탈출구가 필요하죠. 이미 상황은 돌이키기 어려워요. 위로 상승하기 어렵고 이제 유지하거나 하락할 수밖에 없는데 기존 틀로서는 방법이 없죠. 가끔 ‘어떻게 조훈현이 그럴 수 있느냐’라는 말을 듣지만 나는 바둑을 보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죠.

Q: 그래서 ‘바투’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뜻인가요?

이것은 게임입니다. 보통 ‘놀아라’ 하면 ‘공부하라’보다 낫듯이, 바투는 놀지만 바둑은 공부하는 것이니 접근성이 높죠. 그래서 바투로 놀다 보면 저절로 바둑을 배우게 되고, 결국에는 바투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 연구하다가 다시 바둑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즉 바둑계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시작한 것이에요. 바투 입문서는 바둑 입문서와 거의 같아요.

Q: 일생의 라이벌이 있다면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

없어요. 자기 자신이 라이벌이죠. 남들이 재미로 붙인 것이 라이벌이지 모두가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보통 비슷하면 라이벌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나이나 실력, 능력들이 비슷해야 라이벌이 되죠. 이런 것은 팬들이 재미로 만든 거지, 모두 자기가 라이벌이에요.

Q: 그래도 바둑계에서는 조 국수께서 서봉수 9단과 실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던데요?

허허~ 남들이 말하는 대로라면, 바둑에서 졌다고 불편하다면 모두가 다 원수게요.

Q: 서봉수 9단과는 대국 전후에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복기(復棋)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설 정도라던데요?

그건 말이죠….

(인터뷰 내내 지켜지던 조 국수의 평정심이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 느껴졌다. 라이벌을 애써 부인하는 그는 바둑의 라이벌이라서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Q: 제자였던 이창호에게 처음 졌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충격과 기쁨이 동시에 왔죠. 과거에는 그런 사례가 없었거든요. 서로 격차가 커 제자가 어릴 때는 스승이 고수고 제자가 왕성할 때는 스승이 돌아가셨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젊을 때(33살) 제자를 받았고 그 때문에 제자와 정상에서 진검 승부를 벌이는 기록을 남긴 셈이죠. 돌아보면 지금쯤 내제자를 받았어야 하는데 너무 빨랐던 거죠.

Q: 이창호는 어떻게 문하를 떠났나요?

그건 집이 이사 갈 때도 됐고, 더 가르칠 것도 없었고, 또 이미 창호에게 대국에서 ‘패’를 한 다음이라 내가 더 가르친다는 것이 적당치 않았기 때문이에요.

Q: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바둑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일본 바둑은 모양과 형식이 강하죠. 대신 수백 년간 형식에 얽매여서 발전이 더뎌요. 그에 비해 한국과 중국의 바둑은 전투적이죠. 승부를 너무 따지고 내용을 모르는 단점은 있지만 대신 승부에는 강해요.

Q: 승부에 집착하면 ‘기도’로서의 바둑이 너무 살벌해지는 거 아닌가요?

‘도’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죠. 예를 들어 우리 시대에는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불렀지만 지금 최불암씨는 다들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나요? 술도 지나치면 나쁜 것이지 어떻게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약도 될 수도 있어요. 잡기인 바둑도 ‘적당히’가 중요한 거죠.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바둑이 잡기(雜技)나 기박(棋博)의 범주에 함께 속했지만, 그 다음에는 예술로, 지금은 스포츠로 바뀌었잖아요.

Q: 그 말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국수 조훈현이 바둑의 ‘고고한 도’를 저버렸다는 비판에 대한 답 같은데요?

한복을 예로 들어보죠. 요새 개량 한복을 많이 입죠. 하지만 왜 전통을 파기하느냐고 항의하면 한복은 사라지고 말겠죠. 우리가 개량 한복을 인정하듯 바둑도 변화를 인정해야 해요.

Q: 그래도 조 국수께서 나서기에는 본인이 지닌 상징성이 너무 크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지금은 내가 나서서 길을 터줘야 하는 상황이에요. 바둑계에서 내가 아니면 나설 사람이 없어요. 내가 이런 고민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나선 걸 봤다면 나도 ‘프로기사가 헤드폰을 끼고 뭐 하는 거야?’ 라고 욕을 했겠죠. 그러나 일단 지금은 내가 나서서 노는 장을 만들어주고 이후에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다고 생각해요. 시작은 내가 해야 하겠지만 끝까지야 가겠어요? 나머지는 후배들이 해줄 거라고 믿는 것이죠.

Q: 바투 말고도, 온라인 바둑 사이트 ‘타이젬’의 이사도 맡고 계신데 ‘온라인 바 둑기전’ 등에 대해 한국기원에서는 반대하고 있지 않나요?

막을 이유가 없어요. 바둑계에서 온라인이 인기가 있다면 그쪽을 열어줘야지 막을 이유가 없다고 봐요. 축구나 야구는 인터넷으로 직접 공을 차고 던질 수 없지만 바둑은 할 수 있죠. 어쩌면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바둑이에요. 바투 게임도 마찬가지죠. 나는 거기에 바둑의 길이 있다고 봐요.

Q: 정신을 강조해 가르친 ‘세고에’ 선생이 지금의 조 국수를 보면 뭐라고 할 것 같나요?

아마 스승님이 살아 계신다면 죽도록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때는 세고에 선생님 시대죠. 바둑이 그렇게 항상 그대로 지키는 것이라면, 옛날 기박일 때는 노름이었으니 지금도 노름으로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기박이 예술로 변했는데 이제 다시 스포츠로 변하는 것을 왜 막아야 하죠? 받아들여야지요.

Q: 바둑은 육체 운동이 아닌데도 나이가 들면 왜 점점 고수가 되지 않고 약해지나요?

바둑은 체력이 가장 중요해요. 내 몸이 건강해야 정신력이 나오죠. 예를 들어 20대에 100m를 10초에 뛰었다면 50대에는 50초에도 못 뛰겠죠. 대국에서는 순간 집중력과 불꽃 같은 정신력이 필요한데 나이가 들어 한 판을 길게 두다 보면 찰나에 딴 생각이 끼어들죠.

Q: 불가에서 말하는 마구니 같은 것이로군요?

맞아요. 그때 한 점 정도의 실수가 일어나죠. 그러면 그 한 수로 지고 말아요. 결국 바둑은 건강과 체력인데 나이가 들면 별 잡스러운 생각이 많아 어려워요. 하다못해 지금처럼 인터뷰 약속도 있고 가족도 있고 할 일도 자꾸 생기잖아요. 하지만 10~20대는 꿈도 삶도 모두가 바둑이니 이 두 정신상태에서 누가 이기겠어요? 어차피 그 수준에 이르면 실력은 차이가 없는데 말이죠.

Q: 바둑에서 정신력이라는 부분이 정말 쉽지 않은 경지로군요.

대국을 치르면 거의 무아의 경지에 이르죠. 음악이 시끄럽고 옆에서 쿵쾅거려도 몰두하면 그 소리가 안 들려요.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대국에 들어가면 실력이 전부가 아니에요. 기분이 좋을 때와 나쁠 때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요. 아마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같을 거예요.

Q: 그런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상 물정을 모두 버려야 하겠는데요?

진짜 바둑의 고수는 19줄 반상의 바둑과 술 한잔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죠.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인데 결국 세상 물정을 모르기가 쉬워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공부를 열심히 해 ‘바둑의 국수’가 아닌 ‘바투의 국수’로 거듭나겠다는 정도로 해두죠.

3. 마치며

마지막 한마디가 극적인 대반전이었다. 당대 고수와의 선문답이 바투로 시작해서 바투로 끝났다. 그에게 지금 이 현장은 새로운 시작일까? 아니면 그의 말대로 쇠퇴하는 바둑을 부흥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하심(下心)의 발로일까. 그와 헤어지며 이래저래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 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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