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rner Syndrome

근래 나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었다.
대인관계도 극히 줄었으며, 교회생활도 무척 소원해졌다.
일상은 매우 지루하고, 무의미해졌다.
가끔은, 아니 매우 자주, 나는 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그나마 책읽는 즐거움에 대해서만큼은 잃지 않고 있었는데
요새는 책읽기도 너무나 무의미해보였다. 나는 왜 책을 읽는다는 비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가.

우연히 읽은 김현의 글귀가 그래서 유독 마음에 들어왔다.

‘아무짝에도 써먹지 못하는것을 무엇하려고 하느냐? 그 질문은 아직까지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힌다. 아무짝에도 써먹지 못한다! 중세기처럼 문학을 이해하는 권력에 가까이 가는 길도아니며, 몇몇의 날렵하고 재치있는 수필가,작가들이 비록 그들의 저술로 치부를 하였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더라도,문학을 해가지고 아무나 돈을 크게 벌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식민지 치하의 몇몇 작가들 처럼 모두들 지사로서 대접을 받는것도아니다. 그런데도 문학을한다 무엇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그것은 그것을 할만한 가치를 그 자체 내에 갖고있는가?

남은 인생내내 나에게, 써 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신 어머니, 이제 나는 당신께 나 나름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지성이 탄식했던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물론 촐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때,가령 돈이 없을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역설적이게도 문학은 유용하지 않기때문에 유용한 것이다.’

‘문학’ 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독서’로 바꾸어 읽어도 충분히 비슷한 의미가 된다.
나의 책읽기는 유용하다기보다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그저 읽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위대한 사상을 만들어내어 세계를 변혁시키는 것이 아닌한
내가 어느정도의 즐거움만을 위해서 취미생활 정도의 책읽기를 한다는 것은
별로 쓸모짝에 없다.

나는 스페셜리스트가 될 소질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그저 평범한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서 삶을 매우 불분명하고 평범하게 살다갈 것 같다.
가끔 큰 꿈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해보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하고 또 생각하곤 한다.
나는 이상한 사고에 갖혀있다. 삶은 너무나 짧고,
나의 사소한 행위는 말 그대로 사소할 뿐이다.

아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이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남은 삶을 살다갈 것인가!
아 이러한 고민은 언제쯤 분명하게 끝이날까?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무엇을 바라십니까?

나는 많은 눈을 가지면 세상을 더 바르게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이 너무 많으니 모든 사물이 중첩되어 보입니다.
아무것도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저를 바보가 되게 만들어주십시오. 저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인생의 덧없음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습니다.
늙어서 깨달아도 좋은 것을!

아 내 정신은 환갑이다.
탈출구 없는 정신착란. 무섭다.

이것이 사단의 장난이라면 그는 실로 두려운 존재다.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서 맴도는 것 같다.

“Werner Syndrome”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안녕하세요. 너무 예전 글에 댓을 남기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그래도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글에 깊은 식견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와 어려운 글임에도 술술 읽혀 글을 읽다읽다 이 글 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즐거움으로 끝난 독서가 아니었고, 저 포함 타인에게 지혜를 주고 계십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분이 매우 높은 기준을 대어 본인을 평범하다 하시네요.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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