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김성민 전도사님께서 졸업선물 해주신 이 책은 선교사들의 묘지로 알려진 양화진에 방문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19세기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초기 선교사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존헤론을 시작으로 알렌과 원두우(언더우드), 시란돈(스크랜톤), 아펜젤러, 애니와 벙커, 헐버트, 릴리아스 호톤, 게일, 로제타 셔우드, 윌리암 제임스 홀 등의 이야기가 실려있음은 물론, 새남터교회와 정동교회, 연세대학과 이화여대, 배재학당의 시작이야기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광화문 근처 거리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 주변에 가끔 놀러가곤 한다. 그곳에 가면 넓게 트여진 도로에 경복궁, 덕수궁 등을 주변으로 박물관, 갤러리, 옛 교회들이 많이 남아있다. 특히 서울 성공회 대성당과 정동교회 등 아주 오래된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새문안 교회도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던 적이 있다. 내가 언더우드 의 전기를 읽은지 얼마 안된 때였기 때문이다. 양화진을 읽으면서 이 모든 사람들과 초기 기독교 선교의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하게 전해져서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처음 광혜원이 지어지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설립되는 장면, 헤론이나 언더우드 등의 열정과 근대 우리나라의 실상들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9월 20일에는 추석을 맞아서 대학부 순 후배들과 양화진에 갈 계획을 하고 처음 양화진에 다녀왔다.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수많은 영혼들의 엄숙하고 숭고한 메시지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고 적힌 헐버트의 묘는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수많은 비석들은 전쟁의 상처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총탄이 할퀸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어떤 십자가는 부러진채 비석 위에 올라와 있어 전쟁의 지독한 모습마저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언덕 위쪽에 묘들을 보던 미혜가 불러서 찾아낸 것이 바로 언더우드의 묘, 그리고 그 옆에는 양화진에 처음 묻힌 선교사인 존 헤론의 묘가 있었다.

JOHN W. HERON, MD
who came to Korea IN 1885
MISSIONARY  PHYSICIAN
TO/ CORT ANT LEGATIONS/DERBYSHIRE ENG,1856
DIED/ SEOUL JULY,1890
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 그의 묘비명이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영혼을 위해 자신을 주었다는 의미인가. 생각해본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귓전을 스쳐 지나간다. 존헤론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해 테네시 의과대학을 개교이래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주변의 끈질긴 만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모교에 남아서 후배를 양성해주게, 자네같은 사람은 한사람의 의사가 되는 것보다, 보다 많은 의사를 양성하는 일에 헌신하는 길을 택해야 하네’ 그러나 그는 안정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소설 양화진을 통해 읽는 존헤론의 이야기는 수많은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외에 정신여고를 세운 벙커, 수많은 업적을 남긴 로제타 홀, 언더우드와 알렌 선교사 등의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묘지 한 구석으로는 조가마한 묘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이 땅에서 태어나자마자 죽어간 선교사 아기들의 무덤임을 보게 된다. 어떤 아이는 태어난 날과 죽은 날이 같고, 태어나자마자 3일 만에 죽은 아기 한달 정도 살다 죽은 아기등. 수많은 무덤이 있다. 결핵과 콜레라, 천연두 등이 만연했던, ‘미개’했던 나라 조선에 찾아들어온 선교사들의 아기들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소설 양화진을 보면 알렌과 헤론, 언더우드 세사람의 다툼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나는 선교에 대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지만, 그들의 다툼을 보면서, 그것이 피부로 조금은 느껴졌다. 알렌은 이미 조정의 신뢰를 받아 벼슬까지 한 국의이다. 그는 어떻게든 나라의 신뢰를 얻고자 선교사역을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한다. 그러나 헤론, 언더우드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온 사람들인데, 나라의 눈치만 보면서 어떻게 선교를 하고자 하느냐고 생각한다. 언더우드는 25세 정도 된 청년이니 그 열정이 어떠했겠는가. 그들의 다툼과 마음의 갈등을 읽는 것도 퍽 도움이 되었을 뿐더러, 환경을 바라보는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쉽게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고민도 하게 되었다. 특히 선교와 그것을 방해하고자하는 환경에 대한 두 가지 접근, 즉, 지혜롭고 냉철한 판단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인가, 믿음을 강조하며 환난과 고난을 감내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일명 무대뽀 정신을 발휘할 것인가, 후자가 더욱 열정넘치고 멋지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믿음만 강조했던 지난날의 선교사들이 오히려 선교사업을 그르친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러한 고민들과 또 우리 근대 역사의 중요한 공헌들을 했던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 양화진, 또 합정역에 있는 외국인 공원묘지 양화진, 책의 뒷부분을 아직 미처 다 읽지 못한 상태이지만, 이렇게 그들이 준 감동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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