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 장

마태복음 8장

10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11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12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신기하게까지 여기신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으면서도 어떤 이스라엘 사람보다 뛰어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기도회 중 8장을 묵상하며 나누는데 12절의 말씀이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어지면서 머리속에 들어왔다.
자기도 군대를 다스리는 사람이라서 자기 졸병들에게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온고 이래라 저래라 말만하면 듣는다는 말이었다.

그럼 무슨 말인가?

예수님께서 내가 직접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시자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제 하인이 앓고 있는 이 질병은 예수님이 쫄다구 부리듯이 부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거기까지 가실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저도 제 아래 있는 쫄병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면 그들이 알아서 듣는데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백부장의 믿음이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겠다고 할 때 가만 있었더도 되었다는 점이다.
그가 가만 있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하인을 찾아가서 고쳐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것이 견딜 수 없을만큼 황송했다는 것이다.
나라면….. ‘어서와서 고쳐주옵소서’ 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는 이방인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믿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엉뚱한 믿음들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더욱 놀라운 것으로 비추어진다.
그가 어떻게 이러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신비스런 일이다. 그는 유대인들과 달리 순수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 꼭 믿음과 연관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아는대로 믿느냐? 하는 것이다.

판단의 한계

성경에 보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판단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한번 생각해보았음 한다.

* ‘판단하라’

1. 시대를 분별함,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함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눅 12:56.57)

이 시대를 분별하고 옳고 그른일을 판단할 줄 아는 것은 언제나 합당하다.

2.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을 따라 판단함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여도 내 증거가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앎이어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요 8:13-16)

바리새인들이 에수님의 증거를 참되지 않다고 판단한것은 그들이 육체를 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증거를 참되다고 판단한다면 그 판단도 예수님께서 말리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게 육체를 따라 판단하느냐, 성령을 따라 판단하느냐에 따라 판단의 옳고 그름이 결정됩니다. 판단의 대상은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조금더 넓힌다면 하나님의 말씀까지 적용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3. 교회 안의 분명한 죄악을 저지르는 자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 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 5:11-13)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6:2-3)


* 판단치 말라

1. 그리스도인 사이의 서로 다른 성경적 가치관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 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롬 14:3)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고전 10:29-30)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의 영역으로 주어진 문제들에 대하여 서로 상대방의 가치관에 대해 비판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에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 가운데 상대방이 양심에 따라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일을 가지고 서로 비판할 수 없다.

2. 외모, 재산, 성격, 학벌, 인종, 성별, 건강상의 이유 등의 모든 이유로 사람을 차별 대우 하는 것은 안된다.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2:3-4)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저 사람은 부자다, 가난하다, 예쁘다, 못생겼다, 흑인이다, 백인이다 라는 것 까지 판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 그 판단으로 인해,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부당하게 대우한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성경에도 심히 아리따운 여자였다고 판단하는 부분이 나온다.

3. 서로 욕하고 비방하며 싸우는 일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약 4:11)
이 말씀의 배경은 4장 1절에 나오듯이 서로 욕을 하며 싸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다.

4. 서로 비판하는 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롬 2:1-3)

자기도 똑같은 죄를 지으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일은 그도 하나님으로부터 비판받게 한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죄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죄를 비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 교회 안에서의 징계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교회 안에서는 그에게 뉘우칠 기회를 허락한다. 그리하여 그가 회개하면 용서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눅 17:3)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5-17)

우리가 징계하고 판단하고 쫓아내어야 할 대상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의 권고를 듣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도 자신의 죄를 판단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요일 3:17

누가 이 세상 제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요일 3:17)
 
오늘 학교 오는 길에 구걸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을 도와줄까 말까 고민이 되었는데 가지고 있는 세금 외에는 돈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그 때 마음에서 이 말씀이 메아리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새롭게 가슴을 쳤습니다.
도와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와줄 마음이 생기는 데도 다른 이유로
그것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 속으로 동정심이 생기고 암만 불쌍히 여기고 가슴아파 한다 할찌라도
누군가를 도와주겠다고 아무리 다짐을 한다한들 그것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위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이라는 구절이 도와줄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보고도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이 아니라 도와주고
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데도 그것을 막고 도와주

지 않으면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랑은 동사..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말씀도 분명하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그 말씀을 찾았더니 그 말씀 다음에 이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하는 만큼 실천하도록 하자.

십자가의 고통

사형수는 십자가 형에 앞서서, 즉 형장으로 떠나기 전이나 가는 길목에서 먼저
채찍질을 당해야 했다.
기둥에 묶인 죄수를 때리는 채찍은 가죽끈의 끝 부분에 금속 조각이 달린 것으로서,
이 채찍에 맞으면 죄수의 등은 피로 얼룩지고 맞은 자국마다 찢겨진 살이 너덜거리
는 참혹한 모습이 되게 마련이었다.

이 형벌은 죄수의 신체를 허약하게 함으로써 십자가에서 당할 고통의 기간을 단축시
키고 죽음의 순간을 재촉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호의인 셈이었다.

사형수들은 보통 자신의 십자가(수직막대기가 아니라 가로대인 ‘파티불룸’)
를 처형장까지 운반해야했다. 희생자는 처형장까지
행진하고 나서 처형을 당했다. 팔레스틴에서 일부 유대인은 이렇게 완전히
벌거벗은 것에 분명 민감하게 반응했을 것이다.

십자가는 고대 세계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사형법이었다.
온몸이 발가벗쳐진 채 군중의 시선 앞에 노출되는 것은 팔레스틴 유대인에게는
특별히 수치스런 일이었는데다가, 범죄자에게 주어지는 냉대와 더불어 사형수는
군중이 보는 앞에서 배설을 해야만 했고,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렸다.

희생자를 십자가에 고정시키기 위해서 밧줄로 묶기도 했지만, 예수님의 경우처럼
못으로 박는 경우도 있었다.
손이 묶인 죄수는 피가 흐르는 상처에 몰려드는 벌레를 쫓을 수 없었다.

죄수의 체중으로 인해 몸이 늘어지면 호흡이 점점 가빠졌다.
발 밑에 있는 받침대가 지탱에 도움을 주긴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침내 기력이
쇠진하게 마련이었고, 결국(보통 며칠이 지나면) 숨을 쉬지 못하고 질식사하는
것이 죄수의 운명이었다. (IVP 성경배경주석의 글)

솔로몬의 영광과 한 송이 백합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29)



솔로몬은 이 세상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 최고로 지혜있고 명성있고, 부유했다.
그러나 그가 입었던 옷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입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들의 핀 한 송이 백합.

그는 수고도 하지 앟았고 옷을 지어 입은 것도 없지만
한나님께 내어 맡긴 영혼은
그 분 께서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것으로 존귀한 것으로 입히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