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종교는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종교의 의미가 어떤 것이냐라고 하면 그 답은 달라지겠지만, 그것이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정의한다면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즉,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어떤 사람에게 물었을 때, 빅뱅으로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에게는 과학이 종교라 말할 수 있다.
존재의 이유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없는 것일까? 일견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세상은 신이 창조했다’라는 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소한 그런 사람들은 ‘세상은 신이 창조했는지 알 수 없다’ 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듯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수용하지 못하는 불가지론자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세계관이야말로 가장 무의미하고 때론 파괴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
윤리적 현상도 설명하지 못하고, 과학적, 사회적 현상도 설명하지 못하고, 종교도 설명하지 못한다.
또 한편으로, 개인적인 생각에서 현대인은 돈과 관련된 종교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고 돈을 위해 손을 벌리고 돈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한다. 돈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잣대이다. 돈이 윤리가 되고, 경제적 효율성이 가치판단의 최종잣대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놀랍도록 돈과 연관되어 있다. 돈은 인간의 사고와 가치를 최종적으로 지배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과 관련하여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현대인들을 나는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진정 인생의 가치를 무엇과 연관지어 살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나는 왜 하나님의 침묵에 관해 말하는가
오늘 친구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아는 언니가 암에 걸렸는데
그 언니를 아는 목사님 한분이
“수술을 받지말고 한번 기도해보거라”
라고 조언해주셨다고 한다. 더 보기 “나는 왜 하나님의 침묵에 관해 말하는가”
인공환경
24시간 세계에서 몇번째 손가락으로 꼽는 큰 도시안에서 생활하는 나는
24시간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환경과 부대끼고 있다.
오늘아침에도 닭울음소리가 아닌, 핸드폰의
64poly 음이 나를 깨웠다.
아침을 먹기 위해 나는 계란은 후라이팬에 얺고 가스불을 켰다. 냉장고에서는
인공바람이 흘러나온다.
세면하기 위해 움켜쥔 수도꼭지에서는 인위적인 방향으로 물의 흐름이 조절된다.
나는 인공의 냄새를 풍기는 스킨을 얼굴에 바른다.
거대했던 동물의 모습은 잃어버린 인공의 구두와 인공의 대리석이 부딪히며 내는 인공의 소리를 들으며
인공의 평평한 바닥을 걸어 나는 거대한 운송수단에 오른다.
에스컬레이터는 인간의 크기에 맞게 디자인된다.
인간은 이 모든 도시 구조물을 만들었다
어떤 것도 자연그대로는 없다.
심지어는, 나무의 배치와 크기, 풀이 자란 방향
강물의 흐름, 하늘의 색.
내가 초등학교 때는 압구정동에 잠자리가 날고 올챙이가 살았다.
봄에는 신촌에 제비가 낮게 날았다.
그런데 2006년 여름,
나는 아직 생존력 강한 모기 외에는 잠자리도 매미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만 내 귓속에서는 아직
군대에서의 K-2 80발 환청만이 매미소리처럼 들린다.)
내 주변에는 인공물 뿐이다. 난 하루의 일부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지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인공물이다.
난 잠자리나는 모습이 그립고, 들꽃이 그립고, 하늘의 별자리, 은하수, 매미소리가 그립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더럽다고 미워하지만
난 도시에서 누구하나 돌봐주지 않아도 사람을 벗하여 살아가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마움을 느낀다. 난 비둘기를 사랑한다.
비둘기들이 몇년 더 우리의 곁에서 이 도시에 남아줄까.
서울의 24시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사람 외에는 어떤 자연물도 없다. 모든 자연은 사람이 손대 놓았다.
그들의 방식과 가치관, 그들의 세계관대로 그들이 살 환경과 자연을 만들었다.
그들은 도시의 신이 되었다. 인간만이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 거대한 도시
난 오늘따라 이 감옥같은 인공환경이 싫다.
인간은 모든 신의 흔적을 인간의 흔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신의 숨결을 느낄 공간은 이 도시에 없다.
우리집에도 거미가 살고, 제비가 둥지트고, 밖에서 새소리 울었으면 좋겠다.
구더기가 나와도 좋다. 이 사람의 스킨 냄새만이 가득한 세상이 갑갑하다.
지평선을 보면서 갑갑한 도시 벗고 싶다.
별의 노래 듣고 싶다.
바다 수천 미터 아래
바다를 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멀리 지평선을 보거나 확트이고 시원한 파도를 감상하기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다를 보면서 그 깊이를 헤아리고 싶어한다
저 바닷속 수천 미터 아래
그 속에 얼마나 신비로운 세상이 가득한지
우주보다 더 신기한 바닷속 사람의 눈과 손이 한번도 닿지 못한 곳
바닷속은 미지의 세계이다 인간은 바다의 깊이를 재긴 했지만 그 속 깊이 들어가 본 일은 한번도 없다
지금도 인간이 바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1%에 불과하며 계속해서 바닷속에 살고 있는
새로운 생물이 발견된다고 한다
바다는 우주만큼 신비롭다
사람도 각자의 내면에는 신비로운 바다같은 세계를 가지고 산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람의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내 안에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친구를 가지고 싶다
삶의 전쟁터에서
예전에 (오래전이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올랐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아주 신기하게 읽은 적이 있다.
예수님과 함께 배에 오른 제자들
그들은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서
뜻하지 않던 폭풍을 만난다
배 위로 물이 넘실거리고 배는 침몰의 위기를 맞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예수님은 아무것도 모르고 주무시고 계신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워서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상하게도 제자들을 꾸짖는다
‘..믿음이 없는 자들아!!’
당시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한동안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예수님은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제자들을 크게 나무라신 것일까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일까
그렇게 따지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제자들은 어찌되었건
예수님이 뭔가 도와주실 힘이 있다고 믿었기에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 아닐까,
그것이 왜 믿음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러한 의문이 생겼다.
그 후에 나는 이 본문을 몇번 더 읽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의 참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 말씀이 나오기 바로 전에
쉽게 지나치기 쉬운 말이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구절이 들어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자들아
예수님을 그들이 예수님을 깨웠다고 나무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고 그들을 나무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안에 떠는 표정,
그들의 가슴 속에 치고있는 불신앙의 파도를
꾸짖으신 것이다
믿음의 본질은 무엇일까
믿음에는 두려움이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요청하면서
예수님은 무언가 이 위험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지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 우리를 도와주소서 하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불안했다
넘실대는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예수님이 해결해주실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현실이 눈 앞에 닥칠 때
그보다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보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현실은 불안하다, 현실은 믿음을 흔든다
그러나 그 뒤에 현실 너머에 그분의 계획이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다
믿음은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믿는다
그러한 명확한 믿음이 현실을 현실로 인식하지 않게 만들 때
비로소 믿음은 온전해진다
내가 보는 것이 녹화된 축구경기라면
지고있다고 흥분하지 않는다
믿음은 두려움이 없다
두려워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구약성경에서 여호수아를 세우실 때
하나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전쟁의 작전은
“두려워 말라” 였다
전쟁에 나갈 때, 두려워 말라
삶은 전쟁이다
믿음을 뒤흔드는 전쟁이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다
그 전쟁터 속에서 두려워 말라,
그 폭풍 속에서 두려워 말라
삶의 무게가 네 위에 넘실대고
삶의 파도가 너를 흔들지라도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시고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위대함과
그들의 의뢰하는 자의 절대적인 능력을
드러내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