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 ‘산상수훈’


예수님은 마치 산처럼 위대해 보인다. 그 밑에 사람들은..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받는 자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마음이 온유한 자들, 핍박받는 자들에게 복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천국복음의 진수였다.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 겸손한 자들의 것이다.

그림의 구도가 특이하다. 예수님을 크고 안정되게 꽉찬 삼각형 구도로 그렸다. 배경에 흐릿한 산들을 그려넣어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고 있다. 표정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자애롭다.

벤베누토 첼리니, ‘그리스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556-62년경.
대리석, 높이 143.5cm. 스페인. 에스코리알.
산 로렌초 엘 레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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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계로 와서 또 하나의 즐거운 일은 도계도서관을 찾는 일이다. 그곳에 가면 값이 비싼 커다란 화집이 꽂혀 있다. 나는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빌려다가 읽고 또 본다. 바쁠 것도 없으므로 반납기간을 한 주간 더 연장해가면서 곁에  두고 내 책인 것 처럼 읽고는 다시 도서관에 보관해놓는다―마치 내 책인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림 읽기에 관한 책들도 곁들여서 읽어내려간다. 역시 천천히, 천천히 읽는다. 미술에 관한 이론서 한 권과 화집 한 권을 대출해서 연장기간까지 2주간 동안 틈틈이 내 영혼을 시원하게 하고 맑게 한다. 그래서 어줍잖은 ‘그림 읽기’도 시도해 볼 염량을 가져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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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보면 좀 당혹스러운데–그래서 나도 괜히 도서관 얘기를 늘어놓고 있나–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하다. 전혀 익숙치가 않다.  예수 그리스도-십자가-하나님의 아들-구세주가 도저히 이 적나라한 나체하고는 연관이 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우리들을 외식적인 신앙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벌거벗은 채로였다. 예수님의 옷은 로마 병정들이 가져가 버렸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한복음 19:23-24). 옷을 빼앗긴 예수님은 당연히 벌거벗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면 한결같이 허리부분을 천으로 가려놓았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본 모습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위선적인 신앙을 강요했던 것이 바로 이런 그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셨고 우리를 위하여 ‘수치’를 당하셨다면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그 수치를 절실하게 깨달을 때에라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보던 그림이나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수치]을 놓치게 하였다. 마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어서 경건의 탈을 덧씌우면서 우리를 분리주의자[바리새인]로 만들어 버렸다. 감히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그리겠는가? 하는 경외의 마음으로 했겠지만, 그 처음의 마음과는 너무도 먼 곳에 와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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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본 것은 데이비드 핀이라는 이가 지은 <<조각 감상의 길잡이>>라는 책에서였다. 역시 도계도서관에 있는 책이다. 이 저자는 이 조각을 힘들게 촬영했다고 적고 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또 다른 훌륭한 작품으로는 첼리니가 흰 대리석을 쪼아 만든 그리스도의 누드상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 스페인의 에스코리알(Escorial: 마드리드 북서쪽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역주)에 보관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과 좀 특이한 인연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작품이 16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왔을 때, 스페인의 국왕은 적나라한 그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다 자신의 스카프를 조각의 허리 부분에 묶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항상 흰 천이 정갈하게 허리에 둘러져 있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첼리니에 관한 책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에스코리알에 가서 허락을 받은 다음, 그 작품이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한 작은 성당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리스도의 허리에 걸쳐 놓은 천 조각을 보고는 나를 안내했던 사람에게 내가 사진을 찍을 동안만이라도 그것을 좀 치워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그럴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마드리드 시의 관계 부서를 찾아가 문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촬영 장비들을 준비하고 다른 부분들의 사진을 먼저 찍고 있을 동안 빨리 좀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람이 문의를 하러 떠났고 대신 자리를 지킬 다른 사람이 한 명 불려 왔다.
  삼십 분 가량 지나자 작업복 차림의 신부님 한 분이 총채로 이곳 저곳의 먼지를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그리스도상 앞으로 와서 그 천 조각을 걷어 내고는 조각 전체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기뻐서 그분에게 내가 사진을 찍을 몇 분 동안만 그것을 그대로 치워주실 수 없겠냐고 부탁드렸다. 그분이 쾌히 승낙을 해주어서 그 작품이 지닌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몇 통의 필름에 담을 수가 있었다. 내가 촬영을 마치자 그 신부님은 천 조각을 원래 자리에 다시 둘러 놓고는 총총히 그곳을 떠나셨다.
  이윽고 처음의 그 안내인이 되돌아오더니 책임있는 관계자들과 연락을 해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작품의 누드 상태로는 촬영 허가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내가 필요한 사진을 다 찍었다느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사람은 몹시 화를 냈다. 내게 그 사진들을 폐기시키겠다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크게 혼날 줄 아시오!”라고 겁까지 주었다. 좀더 지위가 높은 한 관리는 불법적인 원판들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 내 필름들은 스페인 정부의 관계 당국에 의해서만 인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단 한 장의 사진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는데, 만일 우리 집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체포까지 당할 뻔했다. 아내는 내가 대부분의 필름들을 이미 안전하게 치워 두었다는 것을 알고는 카메라에 남아 있는 필름만 꺼내서 그게 전부인 양 주어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이 일부러 더 큰 제스처를 쓰며 나를 못살 게 군 그 사람에게 필름을 넘겨 주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고, 우리는 풀려났다.  (데이비드 핀 지음 / 김숙·이지현 옮김 <<조각 감상의 길잡이>> (시공사, 1993), 77~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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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어떤 수치와 욕을 당하셨을까?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스캔된 사진 한 장으로도 뭔가 짚여오는 것이 있다.


<출처 : http://dokyesungsan.net >

한스 홀바인,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한스 홀바인 –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글 : 이주헌 미술 평론가

한때 바젤에서 활동했던 홀바인의 대표작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홀바인은 썩어들어가고 있는 앙상하고 싸늘한 주검을 통해 16세기 당시 부패한 카톨릭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닫힌 공간. 세상과 절연된 곳. 그 곳에 썩어져가는 육신이 외롭게 누워 있다. 마른 명태처럼, 꺾인 나무가지처럼 그렇게 버려진 육체. 시신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인간 형상이라는 점에서 가장 쓸쓸한 이미지다.

돌을 깎아 만든 인간 형상 앞에서는 경배도 드리는데, 청동으로 주물을 떠 만든 인간 형상 앞에서는 아름답다고 연신 탄성을 울리는데, 주검 앞에서는 그 누구도 그런 따뜻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얼음 같은 외면과 절벽 같은 이별만이 있을 뿐이다.

한 때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했던 화가 홀바인(1497~1543)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1521년)은 그 단절의 깊은 골을 죽은 예수를 통해 조망해 보는 작품이다.

파랗게 변색된 얼굴과 손발, 그리고 극심한 고통으로 뒤틀린 몸뚱아리. 과연 이렇게 비틀리고 짓이겨진, 썩어져가는 육체가 부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눈 앞의 이 냉엄한 현실을 너무나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홀바인이 진정으로 그리고자 한 것은 지금 이 그림 안에 없다. 홀바인은 무엇보다 예수의 영혼을 그리고 싶었다.

주어진 소명과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세상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깊이 자각했던 한 영혼. 그것들을 위해 그 어떤 고통도,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한 영혼. 그렇게 순수한 영혼이었기에 오히려 그의 육신은 이리도 망가지고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홀바인은 그 망가진 육신을 통해 절묘한 반어법적 표현으로 예수의 영혼을 생생히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다.

홀바인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유럽은 바야흐로 종교개혁의 열기에 휩싸여들었다.

역사가들이 당시 교황들에게 ‘패륜아’니 ‘탕아’니 하는 수식어를 붙인 것을 보면 당시 가톨릭 교회가 상당한 정신적 위기에 봉착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루터와 맞섰던 교황 레오 10세에 대해 한 카톨릭 역사가는 “사도 시대에 살았더라면 교회당의 문지기로도 적합하지 않았을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렇듯 세속화되고 권력과 돈에만 혈안이 돼 있던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에 대해 프로테스탄트들 뿐 아니라 에라스무스같은 온건한 인문주의자들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에라스무스는 교황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 그들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홀바인이 이렇게 남루하고 비참한 그리스도를 그린 데는 바로 화려한 보물과 예술, 기름진 음식에 취해 있는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의 의도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또한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에라스무스의 제자였던 것이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난 홀바인은 스위스 바젤로 이주해오면서 미코니우스라는 한 인문주의자로부터 형과 함께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배웠다.

작가로서의 명성이 쌓이면서는 당시 바젤에 와서 살던 에라스무스와 직접 교분을 쌓는 한편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의 예술에서 늘 꼿꼿한 인문주의자의 격조가 느껴지는 이유이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은 그러나 에라스무스나 홀바인이 기대한 세상을 그 당대에는 만나보지 못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은 끝내 유혈충돌로 이어졌고 양측의 불관용은 16세기 중반 이후 한 세기 동안 피비린내나는 폭력과 종교전쟁을 야기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온건한 인문주의자는 양자 모두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왕이나 제후의 절대권력 아래 있지 않고 독립적이었던 스위스의 도시들에서는 특히 급진주의가 세를 얻었다.

바젤도 폭력적 상황을 겪었고 이를 피해 프라이부르크로 피신한 에라스무스는 당시 홀바인이 그린 그의 초상화에도 나타나듯 매우 지쳐 있었다.

예수는 이 시기의 유럽을 위해 아마도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고 싶었을 것이다.

오토 딕스, ‘동방박사의 방문’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는 마리아의 표정, 예수님의 얼굴 표정이 남다르다. 인물들의 외모에서는 평범함만이 느껴지지만, 모자의 표정은 그들의 미래에 대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만 같다. 동방박사는 세 사람으로 각기 다른 특이한 모습으로 그렸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그냥 얼핏 보기에는 흑인 같은데, 그럼 이 동방박사 세사람이 모든 인류를 대신하는 것인가? 작가에게 질문할 수 없으니 혼자 추측해볼 따름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이 그림은 너무 많이 봐서 어떻게 보면 지겨운 듯 하지만 생각하며 볼수록 흥미진진한 그림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굉장히 고심해서 그렸다고 한다. 그는 해부학에 열심이었는데, 사람의 얼굴과 성격의 관계를 열심히 연구했다고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성격이 어떤 사람은 얼굴이 어떻고… 라는 식으로, 그래서 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성경에 있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 분석하고 그들의 성격을 읽어내고 또 그 성격에 맞는 얼굴을 가진 모델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여기 있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의 그림은 그런 노력들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유원절 전날 제자들을 모아놓고 저녁을 함께 하셨다. 그 때 돌연히 예수님께서 말씀을 꺼내신다.


“너희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느니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주여 저입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것이다.”


그림 속 장면은..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직후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일단은 그림의 구도이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식탁 한 쪽에만 앉아있다. 원래는 빙 둘러앉아 있거나 그래야 정상인데 그림 가까운 면쪽에는 아무도 앉지 않은 것이다. 화가는 이런 구도로 보는 이들을 만찬에 함께 앉게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이 그림은 식당에 걸기 위한 것이었다고 들은 것 같다.)


가운데 예수님이 앉아 있는데 후광이 없고 다만 원근법의 소실점이 예수님 머리쪽으로 집중하여서 주목을 주고 있다. 예수님의 두 손을 보면 한 손은 위로 다른 한 손은 아래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 물론 입고 있는 옷의 색도 의미가 있다. 붉은 색은 보혈을 의미하는 듯하고, 푸른색은 고귀한 신분을 의미했던가? 아무튼 ‘서양화 읽는 법’이라는 책을 읽으면 옷의 색의 의미도 자세히 나와 있다.


예수님 바로 오른편은 요한, 두 팔을 벌리면서 설마 저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 뒤로 손가락을 위로 치켜든 것은 도마라고 한다. 의심이 많기로 유명한… 열 두 제자가 취하는 표즈는 다 제각각 다르며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경이 급하고 불같았던 베드로는 예수님 왼쪽 두 번째 에 그려져 있는데 흰 수염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등 뒤로 칼을 감추고 있는 것이 보인다. 누군지 알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모습이다.


유다는? 그는 베드로 바로 왼쪽에 얼굴이 약간 검은 모습… 오른손에는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유다임이 확실하다. 조금은 흠칫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유다와 예수님의 얼굴을 찾느데 굉장히 고민했다고 한다.


어딘가에서 퍼온 글


”’ 레오나르도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형태에서 추함을 탐구했다. 그는 전쟁 장면과 기괴한 것들을 스케치했고, 꽃과 아름다운 젊은이들 옆에 대홍수 장면을 자주 등장시켰다. 레오나르도는 거리에서 신체 불구자나 외모가 이상한 사람을 보면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니며 세세한 점까지 기록했다. 어떨 땐 그 고장에서 가장 기괴하게 생긴 사람들만 초대해 파티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히스테리컬한 웃음을 터트릴 때까지 계속해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파티가 끝나고 나면 파티에 왔던 사람들의 얼굴을 밤을 새워 스케치하기도 했다.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가 추함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을 두고 ‘사람들이 고딕식 성당에 괴물 형상의 석누조 조각을 다는 동기’에 에 비유했다. 괴물 형상의 돌 조각은 성자의 상을 보완해주었다. 레오나르도의 기형 인물 스케치는,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완해주는 역할을했다.’ ‘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보면 항상 신비스럽게 대하게 되는데 왜냐면 그가 그린 사람얼굴이나 표정 몸짓 하나하나는 굉장한 연구와 정보수집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는데 굉장히 어려워서 이 그림에서도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의 전형 다빈치… 이 너무나도 유명한 ‘최후의 만찬’ 알고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