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가 숨은 것은요 죄가 들어와서 그런것이 아니라 벗은 것이 두려워서 숨은 것입니다. 벗은 것이 부끄러워 숨은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숨었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I was afraid because I was naked.. 이거 어려운 문제입니다. 7절의 눈이 밝아 자신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치마를 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기 전까지는 그들이 벗은것을 몰랐다는 말이 되죠.
그래서 2장 25절의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라고 한 것은 그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고도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벗은 것을 몰랐기 때문에 부끄러워 아니했다는 말이 됩니다. 그들이 벗은 것이 두려워서 숨은 것이지 선악과를 먹은 것이 가책이 느껴져서 숨었다고 하는 것은 임의적인 해석입니다. 저는 이전에 ‘눈이 밝아 선악을 안다’라는 말의 의미를 그저 죄에 눈을 뜬게로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맞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선악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짓지는 않으시지요.
그러므로 선악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중의 어떤 한가지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 속성을 사람이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가지게 됨으로 인해서 생명나무 실과를먹는 것을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은 그것이 뭘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어떤 것이 생겼을까하는 것입니다.
원문뜻은 잘 모르겠지만 눈이 밝아.. 선악을 알게된다는 말은.. 눈이 밝는다는 것이 선악을 알게되는 것의 조건처럼 들립니다. 다시 말해서 눈이 밝아야 선악을 알게 된다. 선악을 아는 것이 눈이 밝음으로 인하여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선악을 안다는 말은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속성이다.
2. 눈이 밝아야지 가능한 것이다.
3. 사람이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3번은 반론을 제기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뱀이 설명하기를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될까봐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사단이 원래 거짓의 영이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인간이 선악을 아는 것을 하나님께서 꺼리시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생명나무도 따먹고 영생할까 걱정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선악을 아는 것은 사람에게 허락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눈이 밝았다(open – 뜨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시력이 회복된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1절에서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their eyes were opened – NIV) 그인 줄 알아 보더니(recognized)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disappeared) ‘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는 말을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첫번째 가정은 잘못되었네요. 그리고 보니 처음에 제가 말한 것도 잘못된것 같습니다. 아담은 벗은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이해했던 대로 ‘벗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 같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벗은 것을 볼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알게 되어 그들이 벗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끄러워 한 것은 눈이 밝아진 것의 결과인지 선악을 안 것의 직접적인 결과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눈이 밝아 벗은 줄을 깨달았다고 하고 눈이 밝아 선악을 알았다고 하니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대단히 놀라운 성경구절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신명기 1장 말씀입니다.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신 1:39)’
신명기의 내용은 선악을 분변하지 못했다(have no knowledge of good and evil – KJV)로 창세기의 선악을 알다(know good and evil)와 같은 의미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선악을 알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들… 하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바로어린아이들은 … 벗은 것을 부끄러워 아니한다는 것이 생각납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선악을 안다는 것에 한가지 속성을 더 넣자면 4. 아이들은 선악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에 또다른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솔로몬이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 3:9)’
여기서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은 지금보니 선악을 안다는 표현과는 다르므로 관련이 없군요…. 안타깝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논란의 여지 없이 선악을 분별한다는 말이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별해 낸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 의미는 선악을 안다는 의미로 쓰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선악을 잘 구분해 내는 일을 금하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도 그런 능력을 주셨지요.. 그리고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분별할 수 있었다면 솔로몬이 기도할 필요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히브리서에도 관련된 구절이 있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 5:12-14)’
여기서는 분별이 아니라 분변이라는 말이 쓰였지만 사실은 선악을 아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표현이 (discern good from evil – KJV, distinguish good from evil – NIV)로 Know와는 다르고, 모든 사람이 선악을 분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아까 신명기 말씀은 어린아이들만 적용되었으니, 어린아이가 크면 모두 선악을 알게 되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조금은 중요하게 취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신명기 말씀도 번역하기에 따라서 선악을 분변한다는 말이 (know good from bad – NIV, have knowledge between good and evil – KJV)로 다르게 해석된 것, 또한 어린아이.. 라는 말이 들어가서 신명기 말씀과 상당한 공통점을 보이고 있는 점입니다.
지금보니 비슷하기만 할 뿐 대단한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군요..후우.. 어렵습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뭔지.. 좋은 생각나시면 이야기좀 해주세요..
99.3.23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에 동산을 창궐하셨습니다. 사람을 그 동산에 살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선악을 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답으로는 선악을 안다는 것은 악이라는 것이 무언지 깨달아 알아서 죄를 범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시는 말씀중에 ‘이들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도 선악을 아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선악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었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반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공의로우시고 인자가 끝이 없으시며 거룩하시고 지혜가 많으신 분이신데 그런 하나님을 사람이 닮는 것이 죄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서는 선악과가 인간에게 좋은 것인데 먹지 말라 하신 것일까요? 그러나 이 질문은 일단은 제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로 우신 것을 금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항상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일단은 선악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인간이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과연 이같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속성은 다 사람이 본받을만 한 것들이 아닙니까? 그리고 선악을 아는 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벗은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악을 아는 것은 현재 우리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어야합니다. 아담은 선악을 알았는데 그들의 후손들은 선악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없는 속성이어야 합니다. 신명기 1장에 아이들은 선악을 알지 못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것들을 종합하여 볼때에 가장 적합한 설명으로는 선악을 안다는 것이 바로
선악의 기준을 세운다는 의미이다는 것입니다. 좀더 부언하자면 선악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었고 그의 피조된 세계에는 선과 악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완전한 상태였지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선과 악의 기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한 것들도 선으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여긴 것들도 (sex 가 여기에 포함될듯) 악으로 여기게 됩니다.
아마 그래서 그들이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게 되었겠지요. 이같은 설명은 위의 조건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아이들은 선과 악의 개념이 없이 욕구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합니다. 벗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지요… 무엇지 죄인지 의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선악의 판단 기준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속성이지만 인간들 스스로 그 기준을 세워서는 안되기에 사람이 지닐 수 없는 것입니다. …. 어떤 분의 도움으로 제가 내린 결론인데.. 여칠 밤을 잠을 못이루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희 학교 어떤 신학과 선배에게 묻자 어려운거 라고 하면서 조직신학을 알아야 한다고.. 그러시던데….음… 아무튼 적절한 결론인지 모르겠습니다. 잘못하다가.. 이단(?) 될지도.. ^^ 허긴 선악을 아는 것이 밥을 먹는 것이라고 해도 이단은 안될 겁니다. 예수그리스도와 성삼위이신 하나님을 바로 믿지 않으면 이단이지요.
선악을 안다는 말은..눈이 밝아졌다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사람은 생령으로 지어졌는데 육체의 눈이 밝아져서 영이 아닌 육의 일을 보게 되었고 자신의 생각으로 선과악을 판단하는 것을 선악을 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영의 눈이 밝아졌을 때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스가랴, 계시록에서는 이 눈을 성령으로 말씀합니다. 우리는 영과 육을 가진 존재로 영과 육의 눈이 있습니다. 영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에덴 동산에서는 부끄러움도 악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을 선택했을 때 자신을 바라보는 육의 눈에 뜨여지고 자신의 판단으로 선과 악을 말하는 것이 ‘악’입니다.
선악을 분별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말미암습니다.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분별..그것이 앎과 분별의 차이이고 육의 눈과 영의 눈의 다른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