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솔로몬은 왕권을 단단히 하고 모든 반역의 가능성을 처리함으로서
견고한 나라가 세워졌다.
3장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고 그에 따라 백성들을 재판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 다윗성(1절)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취하여 다윗성에 두었다고 나온다.
다윗성은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 빼앗은 성으로서 시온 산성,
나중에 이 성이 이름이 바뀌어 예루살렘이 된다.(대상 5:7-9)
다윗이 그 성에 거하였고, 후에 법궤를 되찾아 다윗 성으로 들여놓는다.
이 곳은 다윗시대 통일 왕국의 수도였다.
후에 솔로몬은 다윗성을 북쪽으로 확장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산을 포함시켰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결혼을 한 것은 솔로몬 왕국의 위치를 애굽과 같은 열강들 사이에 두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수많은 이방 여인은 이방신을 섬기도록 함으로서 나중에 솔로몬의 앞날을 어둡게 하였다.
2. 기브온 산당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장소는 바로 기브온 산당이다. 산당은 대개 이방종교의 신을 숭배하던 장소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왔을 때 가나안 사람들이 기존에 숭배하던 산당이 곳곳에 있었다. 그들은 지구가 평평하며 신들은 높은 곳에 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자리잡은 숭배의 중심지가 신들의 관심을 더 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나안을 정복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산당을 파괴하라고 지시하셨다(민 33:52)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존속하였으며, 나중에 이스라엘 왕들의 발목을 잡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로서 계속 남는다.
2절에는 여호와의 전이 건축되지 않아서 계속 산당에서 제사드렸다고 나오나, 3절에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드렸다’ 라는 구절은 이러한 사실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기브온의 산당은 다윗 시대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산당으로 보인다. 규모도 컸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던 처소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기브온 산당이 가나안 정복 전부터 있던 곳인지, 혹은 예배처소로 후대에 만들어진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 8km 지점에 위치하였으며, 가나안 족속들의 4대 성읍 중에 한 곳이었다. 이 곳의 산당에는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있었으므로 성전이 만들어지기 전 예배처소임에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산당을 다 없애라고 하신 의미는 분명하다. 그들이 가나안의 이방신들을 섬기도록 산당이 끊임없이 그들을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렸다.
3. 일천번제
일천번제를 천일동안 번제를 계속 드린 것인지, 천마리의 제사희생을 드린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역대하1장의 내용에는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다고 하는 것을 보면 후자의 의미인 듯하다. 그러나 천일동안 한마리씩일수도 있고 한번에 천마리를 드린 것일수도 있다. 그리고 일천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많은’을 의미하는 것 일수도 있다.
4. 솔로몬이 구한 지혜
11절에 보면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이라고 나온다. 이것은 솔로몬이 구한 지혜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는 세상의 엄청난 지식과 판단력으로 주신 것임은 분명하다.
지혜를 구한다고 해서 다 솔로몬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솔로몬 같은 지혜를 달라고 하지만 의도는 다르다. 내가 공부 잘하기 위해서, 무언가 내 인생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지혜를 구할 때가 많다. 그러나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네가 너 자신을 위해 구하지 않고 내 백성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 것이 기쁘셨기에 그의 대답을 듣고 모든 것을 주셨다.
——————
솔로몬은 지금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했다.
그러나 산당에서 드렸던 예배, 이방인과의 결혼은 그의 생의 오점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경우에서 하나님께 정말 온전한 마음으로 살고자 했던 자들이지만, 그들의 말년은 조금은 불행했음을 느낀다. 밧세바와의 동침,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성적인 유혹만큼 쉽게 사람을 무너뜨리는 죄가 있을까.
다시한번 이 것들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나의 삶도 더 나아질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2003.4.3
열왕기상 4장
솔로몬 왕국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4장은 다윗의 시대와 솔로몬의 시대가
극명하게 다름을 보여준다
다윗의 시대는 전쟁과 정복의 시대였다.
사울의 세력으로부터 시작하여, 블레셋, 암몬, 여부스, 압살롬, 아도니야까지 이어지는 그의 역사는 전쟁과 정복의 역사였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에 언제나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나 솔로몬의 시대는 평화의 시대였다.
그가 다스리는 40년간 전쟁이 전혀 없었고, 인구는 늘고, 모두 안연히 거하였다고 나온다. (24-25절)
본래 이스라엘은 지파간의 경계로 12구역으로 나뉘었으나 솔로몬은 이를 무시하고 새롭게 전체를 열두 구역으로 나눈다. 이로서 그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한다.
솔로몬 12행정구역을 설명한 지도책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3대 왕위에 오른 솔로몬에게 주어진 과제는 부왕인 다윗이 이루어 놓은 대제국을 효율적으로 다스리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다윗 당시에 일어난 반란과 백성들의 불만을 잘알고 있었으며 대형 건축사업을 위한 막대한 재정을 위해서도 강력한 제도적인 조치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관직부서의 조직은 다윗 당시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거기에 궁내대신과 관리장을 추가하였으며, 지방 행정도 확대 강화하였다.
특히 전국을 12구획으로 나누어 그곳에 각각 책임자인 관장을 두어 관리케하였다. 이같은 행정구역 정책의 가장 큰 이유는 각 지방의 충성심을 조정함으로 예루사렘이 있는 중앙정부에 완전히 묶어 두려는 고도의 목적과 건축사업을 위한 막대한 재정의 원활한 각출을 그 목적으로하고 잇었다. 그래서 이들 관장 중 벤아비나답과 아히마아스는 왕실과 혼인관계로서 직결되어 있었으며 관장들은 왕과 왕실의 음식 1개월분을 일년에 한번씩 돌아가며 준비해야 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이 되고 인사정책을 편 것이 큰 파격이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솔로몬과 비교해볼만한 대목이다.
솔로몬의 인사를 보면 다윗시대의 인물들을 그대로 쓴 경우(여호사밧, 아도니람)도 있고, 요압을 대신해서 브나야를 기용했고, 서기관을 둘로 늘렸다. 또 사독의 아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계속 잇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