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삭을 낳을 것이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심중에 웃었다.(창 17:17)
다니엘 풀러라는 사람은 ‘성경의 일관성’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이렇게 해석한다.
아브라함이 엎드려서 웃은 것은 경배와, 놀라움과 믿음의 행위였다고…
그것은 사라의 웃음(창 18:12)과는 다른 것으로 해석한다…
특이한 해석이지만 일리가 있다.
그 근거는 로마서 4:22절의 바울의 주장은 창세기 15장 6절로 17장 17절 사건을 설명한 것이라는 점이다.
로마서 4장에는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15장의 사실만 가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다. 왜냐하면 15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라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라와 달리 꾸짖음이 없다는 점, 그가 엎드렸다는 점.
또 바로 할례를 행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삭의 이름은 ‘웃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믿는 믿음으로 웃을 수 있다면,
그 또한 하나의 믿음의 행위로서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