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선론

어떻게 하면 돈을 잘 쓸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이 문제의 깊이나 중요성에 비해 관심이나 기존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매우 미흡하다. 반대로 어떻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라는 문제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과 연구가 집중되어있다. 서점에서 팔리는 책만봐도… 돈버는 것과 관련된 책들(재테크관련)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책은 눈씻고 찾기 어렵다.

돈을 벌기위한 방법론, 철학은 끊임없이 발전되고 늘어가지만 돈 쓰는 것에 대한 바른 철학 또는 학문이 거의 발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가진 부에 대해 부족하다고 느낀다. 따라서 돈을 벌면 자기의 기본적인 필요를 위해 쓰기 바쁘고 그마저도 부족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 내가 쓰기 부족할 정도로 많은 돈을 모은 사람들에 한해 필요한 고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마도 ‘당신은 돈이 충분하십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해보면 그렇다라고 응답하는 비율은 매우 낮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돈은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고, 성경적으로 보면 개인의 필요 이상의 재산은 그것이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얼마나 어떻게 나누어 쓸 것인가? 남을 위해 쓰는 돈은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가? 마치 이것은 돈을 벌기 위해 자산을 어디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의 문제만큼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다. 또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왜냐면 이것은 수단의 영역이 아니라 목적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수단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시간은 보통 잘 주어지지 않는다. 평생 열심히 돈을 모으다가 마지막에 기부할 때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기부해야 하는지 쉽게 결정하고 만다. 내가 모은 돈을 죽어서 사회환원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간혹 있다. 그러면 갑작스럽게 어디에 어떻게 사회환원하는 것이 좋은가? 라는 질문을 당연히 하게 된다. 지나가는 거지에게 줄 것인가? 혹은 병원이나 학교에 기부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 사실 어디에 써도 좋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가는 거지에게 전재산을 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보다 학교나 병원에 기부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더 유익할 것이라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그 이상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성경적인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그 중요성에 비해서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치 투자에서 자산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흡사한 문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수준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필요가 없고 반대로 그 차이가 심할 수록 부의 이전은 더욱 많이 일어나야하는데 그 크기가 갈 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효율성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부익부빈익빈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그 중대성이 훨씬 부각된다고 말할 수 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기부천사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자기가 주로 관심있게 생각하는 분야를 돕거나(한 예로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광고를 위해 돈쓰거나..) 학교나 병원에 기부하거나 한다. 사실 그런 행위들은 매우 존경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더 고민을 많이 한다면! 이 사회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특히 자본주의처럼 사회가 발달할수록 빈부의 격차가 더 심해질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돈을 모으기 위한 수단을 위해 공부하는 것만큼 돈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한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그것을 대신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면 그에게 맡기면 더 좋지 않을까?

만약 국가의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인다면 세금을 내는 행위로도 그 역할을 충분히 대신해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본다면 국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대부분 세금을 쓰게 되고 그 사이에 낭비, 비효율도 존재하므로 세금을 내는 것은 하나의 좋은 방법이긴하지만 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헌금도 좋은 방법이나 최선은 아니라고 느낀다. 교회는 헌금을 늘리기 위해서 참으로 많은 설교와 연구를 한다. 하지만 헌금을 어떻게 배분해서 쓰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철학이 부족하다. 헌금은 사실 어떻게, 얼마나 모으느냐가 중요한 것 만큼이나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헌금을 많이 하기는 하나 그것이 성경적으로 쓰여지고 있는가? 막상 교회건축이나 행사를 위해 쓰거나 건물 유지관리비를 위해, 건물 치장하거나 기타 등등… 물론 교회마다 예산을 세우고, 필요에 맞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얼마나 성경적인 방법인가에 대해 교회는 그만큼 연구하고 있는가? 선교에 헌금의 몇 퍼센트 정도를 쓰는 것이 옳은지 교회는 성경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가? 구제와 장학에는 교회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 음향시설이나 행사를 위해 사용하는 헌금의 비중에 대해서… 또 성경적으로 어느 정도가 옳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되어 있는가? 물론 성경은 정확히 얼마 이렇게 답변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한 철학을 제시한다. 그러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가? 헌금을 하는 방법도 좋지만 이러한 철학을 가진 교회나 단체가 우선 존재해야하고 그러한 곳들에게 적절하게 배분이 되어야하기 때문에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자선단체에 기부할 수도 있으나 어떤 자선단체가 최선인지 펀드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고민이 필요하게 된다. 각 단체마다 특정사업에 편중되어있을 수도 있고, 같은 사업에도 쓰는 효율성에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빈곤퇴치를 위한 단체라면 단순히 빵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 나은 종자를 개발하는 것이 좋은 사업일 수 있다. 또 물을 나눠주는 것보다 우물을 파주는 게 좋은 사업일 수 있다. 이러한 효율의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돈을 쓰는 것은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같은 종류의 고민을 각자 따로따로 하고 있는 것 또한 비효율이고 낭비이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이러한 돈 쓰는 문제에 대해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 또는 집단이 존재해야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자금을 맡기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여러 철학을 가진 복수의 개인 또는 단체가 있을 수는 있다. 사람들은 그 중에 본인의 철학에 맞게 선택하면 될 것이다.)

돈을 불리는 일에 있어서는 펀드매니저라는 대리인이 존재한다. 이들은 가장 효과적인 투자처에 올바르게 투자해야지만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고, 사회의 총 효용의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자금을 증대시켜주는 일에 전문가가 되고 보통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고민하고 싶지 않은 경우 이 전문가에게 돈을 맡기면서 전반적으로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물론 진짜 전문가여야하겠지만..)

나는 같은 방식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펀드매니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불리는 개념이 아니라 돈을 쓰는 개념의 펀드매니저(자금관리인), 바로 돈을 다른 이들을 위해 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문역량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각각의 대표적인 인물이 미국에 있다. 첫번째는 바로 워렌버핏이고, 두번째는 바로 게이츠부부다. 세계 최고 부자라고만 알려진 빌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게이츠는 사실 최고의 자선사업가다. 어떻게 하면 부를 최선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둘은 세계 최고이다.(규모로나 능력으로..) 단적인 예로 워렌버핏이 2006년에 자기 재산의 85%를 빌게이츠부부가 운영하는 재단에 내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돈을 쓰는데 게이츠재단이 최고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워렌버핏의 자식들도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식의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고 게이츠재단을 택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고민하지말고 게이츠재단에 기부하면되지 않나?’ 물론 그게 어쩌면 정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직접 고민하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대기업이 하는 사업과 중소기업이 하는 사업이 다르고, 투자에서도 큰자금이 투자하는 영역이 다르고 작은 자금이 투자하는 영역이 다르듯이 선도 직접 고민해서 연구한다면 게이츠재단이 커버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경적인 방법론이 전제되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단순한 나의 지적호기심 때문이다. 나의 최근 관심사는 돈을 어떻게 쓰는 것이(성경적이고 박애적인 관점에서) 최선의 길인지에 대한 것이다. 우선 워렌버핏에 대해 공부한 것 만큼이나 게이츠재단에 대해 공부해 보려고 한다. 또 그가 말했던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해서…(성경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상대적으로 많이 공부했다. 공부는 편중되면 안되니까..)

인생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로 인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최대로 할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재능과 가진 환경, 지식을 그 목적을 위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있다. 나는 당분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 성경적 관점을 벗어나지 않는 전제 하에서 최선의 공부를 진행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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