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수난곡
종교 음악에는 예배와 직접 관계가 있는 음악과 그렇지 않는 (즉 연주회장에서 연주하는) 음악이 있다. 이 ‘수난곡’이나 ‘오라토리오’ 같은 음악은 후자에 속한다. ‘수난곡’이란 한마디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기까지의 이야기를 묘사한 극음악을 말한다. 그 기원은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비롯되었다. 음악의 형태는 ‘오라토리오’와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반주에 레치타티보를 곁들인 웅장한 것이다. 바흐는 이런 ‘수난곡’을 다섯 곡 작곡했다고 한다. 그 다섯 곡이란 ‘마태복음’, ‘요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피칸더(Picander)의 대사에 곡을 붙인 것 등이다. 이 중 ‘마가복음’과 피칸더에 의한 곡은 분실되어 없고, ‘누가복음’에 붙인 곡은 위작으로 간주되고 있어서, 오늘날 널리 연주되는 곳은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두 작품뿐이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St. Matthew Passion BWV 244)이 그의 《요한 수난곡》과 함께 고금의 수난곡을 대표하는 걸작임을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마태 수난곡》을 언제 착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연은 바흐가 44세 때인 1729년의 성 금요일(聖金曜日: 4월 15일)에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이 수난곡은 네 개의 복음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마태복음’ 중 제26, 27장의 예수 수난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피칸더가 쓴 대사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전체는 2분 78곡으로 이루어졌으며 전곡 연주에는 약 3시간 걸리는 대작이다. 이 《마태 수난곡》 중 여덟 곡의 아리아와 마지막 합창은 쾨텐의 영주이며 바흐가 주종관계를 넘어 우정을 맺고 있던 레오폴드 공의 추도식(1729년 3월 24일)을 위해 작곡한 장송 칸타타(BWV 24a) 속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어느 곡이 원곡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마태 수난곡》을 초연한 성 토마스 교회에는 오르간 좌우에 회랑(廻廊)이 있고 오르간도 새로 개조되어, 매우 이상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어서 바흐는 이 교회를 흡족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오르간 앞에 합창단을 좌우의 회랑에는 둘로 나눈 악기군을 배치하여 《마태 수난곡》의 특색인 2중 합창의 효과를 구사할 수 있었다. 《마태 수난곡》은 바흐가 살아 있을 때에 적어도 두 번은 상연했으리라고 짐작되지만 그 후는 멘델스존이 부활시킬 때까지 완전히 잊혀진 채 묻혀 있었다.
바흐가 초연을 거행한 1729년부터 꼭 100년 뒤인 1829년 3월 11일에, 멘델스존 자신이 지휘대에 올라 《마태 수난곡》의 역사적 재연을 가졌다. 이 연주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고 지금껏 잊혀져 온 위대한 음악에 새로운 빛을 비쳐 주었다. 멘델스존의 재연은 단지 《마태 수난곡》만을 소생시켰을 뿐 아니라, 19세기에 부활하여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위대한 바흐 부흥’의 길잡이가 되었다.
멩겔베르크와 바흐의 《마태 수난곡》
《마태 수난곡》은 종교적인 측면 못지 않게 인간적인 극적 음악으로까지 확대하여 파악할 때 비로소 보다 뜨겁게, 보다 생생하게 우리 가슴속에 파고든다. 이 음악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통, 베드로의 인간적인 나약함이 빚어 낸 배신, 전형적인 관리의 비굴함이 돋보이는 제사장, 무지한 군중 심리와 부추기는 선동에 휘말려 그리스도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가 그의 부활로 비로소 눈을 뜨게 되는 가련한 민중,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따르는 가난한 여인 등 이들이 벌이는 오늘날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멜로 드라마의 보다 강하고 격렬한 박력과 인간의 오욕, 연약함, 눈물 그리고 거기서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발견한다.
이상과 같은 인간의 애환을 여실히 재현한 지휘자가 멩겔베르크였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매년 부활절 전 일요일이면 멩겔베르크의 지휘로 《마태 수난곡》이 상연되었다. 그 연주회에는 전 세계에서 청중이 모여들었으며, 그 중 1939년에 거행된 연주 때의 실황연주에서 멩겔베르크는 대편성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기용하여 드넓은 연주장에서 스케일 큰 연주를 시도했다. 이러한 연주야말로 바흐 음악(《마태 수난곡》)의 진정한 표현방법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바흐 시대의 양식 따위에 구애되지 않았다.
특히 멩겔베르크이 《마태 수난곡》 중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전곡 도처에 깔려 있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합창이다. 생전에 멩겔베르크의 협력자이며 친숙한 벗이었던 크론하임(Paul Kronheim)은 “멩겔베르크의 음악은 운동적인 요소와 아울러 서정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삼는다. 타고난 미성을 지녔던-이미 어려서부터 교회 합창단 단원이었으며 청년기에는 합창 지휘자로 활약했던-그가 자기의 오케스트라 뿐만 아니라 암스테르담 톤쿤스트 합창단까지 훈련했다. 아무나 손쉽게 흉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합창 기술의 신비성을 밝혀 내는 묘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교묘하게 융합시켜 노래하게 만들었다.”(「멩겔베르크」)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이 음악이 처음 시작되는 제1곡의 “오라, 너희 딸들아, 와서 함께 슬퍼하자.”부터 멩겔베르크는 우리를 사로잡는다. 느리고 깊숙하게 젖어드는 템포, 슬픔에 잠긴 채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는 듯한 현의 음색, 그것은 포르타멘토와 루바토의 효과로 더욱 강화되며 이제 다가올 비극을 예감하게 한다. 또 제5, 제7곡의 합창에는 처절한 박력이 휘몰아친다. 오랜 세월 손수 다듬어 온 톤쿤스트 합창단인 만큼 마치 손발처럼 움직여 주어, 음색이나 표정, 음향이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제33곡의 슬픔의 2중창을 갑자기 밀어젖히면서 치솟는 분노의 합창의 격렬함은 숨이 막힌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군중이 “저 분은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라고 노래하는 합창의 표정, 그리스도에게 침을 뱉고 몽둥이로 때린 뒤 결국은 죽여버린 그들의 감동과 두려움과 회한의 괴로움을 안고 고백하는 이 합창을 멩겔베르크의 몸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그대로 뿜어 나와 듣는 이의 가슴속에 태운다.
마태수난곡-그 내력과 해석
<마태수난곡>이 녹음으로써 남아 있어 몇 번이고 다시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안도감, 어쩌면 두려움의 감정까지 가져다준다. 바하의 이 작품은 실로 위대한 작품이다. 독실한 기독교인들과 음악애호가들이 <제5복음서>라고도 할 만한 이 작품을 존경으로 대하고 있듯, 약 네 시간 동안 숭고한 음악을 듣노라면 누구나 성화(聖火)된 감정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대하는 이 작품이 유일무이한 완결된 작품이며 단 하나의 확실한 해석만을 요구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엄밀히 말해 이 한 질의 작품이 있기까지, 이 레코딩이 있기까지의 내력에 관해 아무 것도 말해 주는 바 없다. 칼 리히터의 총보에 대한 혜안, 마디마디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일생에 걸친 노력, 개개의 아리아에서 악기와 인성이 완벽한 균형, 개개 합창의 “정확한”빠르기 등등을 둘러싼 그의 고뇌에 대해서도 말해 주는 바 없다. 노련한 바흐 지휘자들은 여러 해에 걸친 숙고의 결과, 위와 같은 물음들에 대하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 왔지만, 이러한 “지적 노력의 산물”이란 가만히 앉아 손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그 순간 덮쳐 오는 영감으로 그 앞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칼 리히터는 여러 해 동안 이 작품 중 개개의 곡들이 담고 있는 극적 긴장과 서정적 전개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그런데도 매번 해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두드러진 변화라 할 만한 것들이 매번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번번이 작품 전체에 대한 리히터의 조망에서 벗어났던 변화들이었다. 작품 자체가 원체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하는 요소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예컨대 리히터는 코랄을 때로는 개인의 영혼의 서정적 묵상으로, 때로는 공동체적 신앙의 움직이지 않는 확신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칼 리히터의 해석 뒤에는 바흐에 대한 그 자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뿐만이 아니라, 1918년에서 50년까지 성 로마 교회의 악장으로 있던 스승 칼 슈트라우베로부터 젊은 리히터가 전수 받은 라이프찌히의 바흐 전통 또한 숨어 있다. <마태수난곡>이 있기까지의 내력, 그리고 오랫동안 역사 속에 숨어 있던 것을 멘델스존이 발굴해 낸 1829년이래, 아니면 초연이 있는1729년이래, 더 거슬러 올라가 1727년이나 28년이래 이 작품이 겪어 온 변화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금세기에도 이 수난곡은 바흐에 대한 낭만주의적 경외심을 상징하는 최상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고 또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새로이 고증되어 편집, 간행된 바흐 악보들 틈에서 <마태수난곡>을 찾아보면 이 곡이 “절대의”, 변경의 여지가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초기의 <마태수난곡>은 지금껏 작곡된 해로 알려져 온 1729년보다 앞서 이미 존재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마태수난곡>은 1736년 바흐가 다시 손을 보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때로부터 바흐가 세상을 떠난 1750년 사이에 라이프찌히에서만 “적어도 한 번 만 더”<마태수난곡>이 연주되었는데, 이 때도 세부에서는 좀 다른 형태였다. 따라서 <마태수난곡>을 “진행중인 작품”(work in progress)으로 보려는 시도가 필요해 진다(알프레트 뒤르는 <마태수난곡>의 초기 악보의 팩시밀리를 곁들여 이 작품이 겪은 변화들에 정확한 문헌 고증을 제시한 바 있고 [라이프찌히, 1972] 나중에 나온 판에 대해서도 상세한. 비판적 주석을 내놓고 있다[카셀, 1974].
“진행중인 작품”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덧붙이고 뺄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제임스 조이스 이래 널리 쓰이고 있는 이 표현의 의미는 <마태수난곡>과의 관련하에서는 이렇다. 곧 바흐가 완벽을 향한 내면의 부름에 좇아 또는 매번 연주 때마다 상황에 맞추어 이미 쓴 곡을 손수 고치고 다듬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를 겪으면서도, 극히 정교하게 고안되고 심오한 뜻을 담게 만들어진 전체 구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예컨대 원래 악보에서 제1부 마지막 코랄 “Jesum lass’ ich nicht von mir”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바흐는 그 대신 <요한 수난곡>제2판에서 코랄 “O Merisch, bewein dein sunde gross(오 사람들아 그대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슬퍼하라)를 빌려왔다. 두 곡은 규모나 양식에 있어 매우 다른 것이면서도 같은 E장조로 되어 있다. 이로써 바흐는 곡 하나를 바꿔치기하여 작품에 윤택을 더하는 동시에 조의 연쇄는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중세 및 초기 바로크의 영향
<마태수난곡>이 일종의 “요약”인 것은 연주와 연구 양면에서 수많은 해석가들이 기울인 일생에 걸친 노력 때문만도, 또 바흐 자신이 이 작품을 완결되고 변경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만도 아니다. 가장 깊은 뜻에서도 “요약”인 것이, 여러 세기에 걸쳐 수난 장(章)에 붙여진 경건한 음악들 가운데서도 정수라 할 만한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바흐의 화성적 요구를 염두에 두고 <마태수난곡>을 연주하면 어떤 선법적 분위기(특히 프리지안 선법으로 된 “Wenn ich einmal soll scheiden”<나 언젠가 세상을 떠나야만 할 때>에서)가 은근히 그러나 뚜렷하게 전곡에 스며들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고대 교회 선법의 사용으로 수난곡은 과거와 맺어졌다. 그 결과 우리는 바흐가 전 세대 작곡가들의 유산을 폭 넓게 집대성한 이 작품 속에서 중세의 음악, 중세의 믿음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말에 붙인 음악 – 이것이 이 작품의 신성불가침의 핵심일텐데 – 의 모습에서 우리는 훨씬 오랜 과거에 뿌리박은 전통과의 연관을 본다. <마태수난곡>또 그 밖의 수난곡을 그리 많이 접해 보지 않았다고 할 때 예수의 빛나는 모습을 음악으로 나타내자면 베이스보다 테너가 어울린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바흐의 <마태수난곡>에서는 당대의 다른 수난곡들에서처럼 그 반대로 되어 있다. 예수의 말은 베이스로, 오히려 복음사가의 목소리가 테너로 처리되는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수난곡의 일천년 역사에 그 답이 놓여 있다! 로마 카톨릭에서 수난주간의 의전을 이루는 4복음서에 붙인 평성가에 의한 라틴어 수난곡들에서, 각 성부의 상대적 음높이는 가사 위에 문자로 표시되었다.(에를랑엔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10세기의 성구집에 보듯)매우 초기에도 예수의 말은 낮은 성부로, 복음사가의 진술은 중간 성부로 처리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과 군중의 말이 일반적으로 높은 성부로 되어 있다. 마태와 요한이 증언하는 예수의 수난에 가장 빈번히 음악이 붙여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로마 카톨릭의 수난주간 의전에서 마태의 수난 장(章)은 종려주일에 마가의 것은 화요일에 누가의 것이 수요일에, 그리고 요한의 수난장이 성 금요일에쓰였다. 브루노 슈테블라인에 따르면, 중세 성구집 에서는 놀랍게도 마태의 수난장에 연주를 위한 표시들이 가장 널리 나타내고, 요한, 마가, 누가의 차례로 줄어드는데, 이는 “마태의 수난장이 주일에, 요한의 수난장이 성 금요일에 쓰인 데 반해 미가와 요한의 것은 일하는 평일에 쓰였다는 사실로써 설명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바흐가 <마태수난곡>에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있는대로 쏟아부은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러 세기 동안 수난장에 음악을 붙이는 일은 의전 가운데 성서 구절을 제시하기 위한 수단 정도로만 인식되어 왔고, 그런 까닭에 교회 예배에 걸리는 일상 시간을 크게 넘어서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카톨릭에서는 수난주간동안 기악 연주를 금했으므로 이따금, 아주 이례적으로만, 그것도 주로 이탈리아에서만 단선음악(monody, 주선율에 콘티누오 반주가 붙은 것)이나 콘체르탄테 음악이 수난곡에 쓰일 수 있을 따름이었다.
개신교의 “오라토리오 수난곡”(복음서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수난 과정에 대한 자유로운 시적 묵상에 터잡은 “수난곡 오라토리오”와 구별!)의 발전과정에서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개신교의 수난곡에는 단선음악과 독주악기의 콘체르탄테를 포함한 일체의 음악 양식들이 자유로이 이용될 수 있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나타나는 풍부한 음악양식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진화해 온 가능한 음악적 표현수단들의 요약에 가깝다. 바흐는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를 다같이 썼고, 코랄을 집어넣었으며 기존 코랄들을 다양하게 편곡해서 표현을 풍부하게 하는 수완을 발휘하는 한편 자유로운 코랄 패시지도 만들었다.
바흐는 음악적으로 독단주의자가 아니라, 예수를 통해 듣는 이들은 은혜로운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고 싶어한 신앙심 깊은 기독교인이었다. 바흐가 사용한 악식 가운데 하나인 다 카포 아리아는 베네치아 오페라에 기원을 둔 것이 뒤에 독일 칸타타와 오라토리오에 도입된 것으로, 비할 데 없이 잘 조화된 기악 반주 의 신비적인 다 카포 아리아 “Aus Liebe will Mein Heiland starben”(나의 구주는 죄를 지은 일이 없는데)(소프라노, 플루트, 두 대의 오보에 다 카치아)와 같은 곡은 낡은 악식에 생기를 불어 넣어 전혀 새로운 음향을 만들어 낸 보기가 된다.
위대한 음악에서는 언제나 전통과 진보가 신비한 결합을 보이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뜻에서 바흐의 <마태수난곡>이 완성된 절정이라기 보다 음악 발전 전 과정의 요약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바흐 자신 속에는 “교회 악장들의 시대”에 중부 독일에서 발휘된 여러 세기 동안의 음악적 장인기질의 절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들어 있었다. 음악에 대한 이러한 헌신의 한 가운데에 바흐 일가가, 누구보다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가 있는 것이다.
멘델스존의 탐구 성과
거의 잊혀지다시피 한 <마태수난곡>의 역사적인 재발견은 주로 젊은 펠릭스 멘델스존, 그리고 강력한 후원자 에뒤아르 드브리앵(뒤에 예수 역을 부른다.)에 힘입은 것이다. 여기에 다소 어렵게 마지못해하던 첼터를 설득하여 그의 명성을 빌리는데 성공했다. 히틀러의 제3제국 시대에는 오히려 첼터의 기여를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멘델스존이 유태계라는 사실이 그의 정당한 몫을 빼앗아간 것이다.
멘델스존이 지휘한 역사적 연주가 1829년 3월 11일 베를린에서 있었고, 이의 대성공에 힘입어 열흘 뒤, 바흐가 아이제나하에서 태어난 1685년 3월 21에서 꼭 144주년이 되는 날 재 공연이 있었다. 재 공연에는 첫 공연을 들은 모든 사람들과 이들의 설명으로 흥미를 느낀 이들을 포함, 베를린의 지식인 계급이 모두 참석했다. 재 공연 뒤 첼터의 집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좌중의 한 중년 남자가 유난히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데 의아해진 드브리앵의 아내가 옆의 멘델스존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내 옆에 앉은 이 멍청하게 생긴 남자가 누군가요?” 멘델스존이 속삭이듯 대꾸했다. “부인 옆에 앉은 멍청하게 생긴 남자는 유명한 철학자 헤겔입니다.” 후의 블로흐, 브레히트, 아도르노 들과는 달리 정말로 헤겔은 <마태수난곡>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첼터는 괴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두 번의 공연에 관해 쓰고 있는데, 첫 편지에서는 헤겔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제[3월 11일] 바흐는 참 좋았습니다. 펠릭스[멘델스존]는 확신에 찬, 차분한 지휘자였습니다. 국왕 전하는 물론 대신들도 모두 참석했고, 연주장은 만원이었습니다. ……작품 자체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갖가지 음악이 훌륭하게, 감동적으로 뒤섞여 주제의 의미가 하나의 개념을 이루고, 시인의 시어 자체도 이 개념에 통합되었습니다. ……탁월한 극적 진실이……” 첼터가 1829년 3월 12일에 괴테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헤겔이 언급되는 것은 그 다음 편지에서이다. “여기저기서 요청이 쇄도해 우리는 다시 [3월 21일에] 공연장을 꽉 메운 청중 앞에서 재 공연을 가졌습니다. ……우리 음악가들이 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듯 철학자들도 음악 앞에서는 마찬가지인 것 같더군요. ……헤겔이 그 보기죠. 대학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모양인데, 이번에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이 음악은 신통치 않아. 음악은 상당히 진보했는데, 움직임이 썩 자연스럽지 않군. ……”
프로그램의 비의
헤겔의 시대이래 우리의 사상이 “상당히 진보”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 진보는 헤겔의 오만한 신념과는 정반대 의미의 것으로, 우리는 바흐의 수난곡을 순수하게, 무조건 칭송하게 되었다. 눈썰미 있는, 때로 심술궂기까지 한 분석가들은 바흐의 이 작품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해독해 냈다. 해독된 의미들은 작품의 정수이면서 동시에 해독에 대한 끝없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흐 음악에서 소프라노와 알토는 각각 보이 소프라노와 남성 콘트랄토에 의해 불리우며, 테너와 베이스에는 합창에서든 독창에서든 모두 젊은 남자를 썼다. 바흐의 관현악 서법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는데, <마태수난곡>의 두 개의 합창단을 채용하는 구도로 된 것은 아마도 라이프찌히의 성 로마 교회가 두 개의 합창단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빈프리트 슈라메크는 1975년 <바흐 연감>에 기고한 글에서 “육필 악보의 음역 배치에 관한 고찰”을 통해 <마태수난곡>이 1736년 라이프찌히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연주된 것이 사실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마태수난곡>에 대한 연구들이 사실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듣는이의 감정에, 상상력에, 감수성에 호소하는 이 음악의 힘은 너무나 대단한 것이어서 어떻게든 이 힘의 신비, 그리고 이렇듯 음악이 가슴을 어루만지는 까닭을 드러내고야 말겠다는 기상천외의, 때로 신비주의적이기까지 한 발상들을 유발했다. 언뜻 눈에 보이는 극음악적외피(이로 하여 다른 수난곡들과 마찬가지로 <마태수난곡>은 근대 방송국의 선구자가 된다.)뒤에 복잡한 상징적 연상들이 숨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코랄들에서, 또 “떨리는” 심정을 묘사한 부분에서 볼 수 있는 텍스트의 부분부분들에 대한 극적이고 눈에 보이는 듯한 해석, 그리고 틀림없이 프로그램 음악이라 할 수 있는 바흐의 서법-이 모든 것들을 연주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예컨대 예수가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자기를 배반할 것임을 예고한 뒤 “Herr, bin ich’s”(주여 그것이 내니이까)라는 가사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는 청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물음은 모두 열 한번 나온다. 열 하나-열두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예수를 파는 자이며, 나머지 열 한명은 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세세한 프로그램은 시사해주는 바 많으며, 틀림없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마태수난곡>에는 11이라는 운명의 숫자가 뚜렷한 뜻을 띠고 쓰이는 부분이 몇 군데 더 있다. 예컨대 ‘해리 안’은 수난과 22라는 숫자 사이의 연관을 조명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시편 제22편은 예수 고난의 시편이다. 빌헬름 베르커의 연구에서 보듯, 그래서 바흐도 예수의 노래를 스물 두번 집어넣고 있다.”
이 정도에까지 이르면 가히 수학의 횡포라고도 할 수도 있겠다. 숫자들(특히 3, 7, 그리고 이것들의 배수)에 붙어있는 종교적 함의(含意)때문에 의미있는 조합의 가능성은 풍부해진다. 위의 한의 결론과 같은 것은 설득력이 거의 없는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요한 수난곡>도 마찬가지이지만) <마태수난곡>이 모두 6부로 나뉘어 체계적인 연관된 조성과 “부분들 사이의 균형”을 띠도록 고안되어 있다는 점(H. J.모저), 바흐가(당시에는 금지되어있던)연속 5도나 “음악 속의 악마”라던 중 4도를 써서 그릇된 것, 악한 것에의 연상을 일깨우려 했다는 점 따위는 반박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바흐의 음구조적 사고의 힘, 가장 세세한 구석까지 미치는 바흐의 손길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 피칸더의 대본은 그의 문학작품 모음의 일부로 집필되자마자 출간을 보았는데, 우리는 바흐의 입장에서 뿐이 아니라 대본 편집자의 입장에서까지 피칸더의 작품을 대했음을 알 수 있다. 바흐는 피칸더의 노랫말에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 변경을 가해 예컨대 “unselges Golgatha”(저주받은 골고다)로, “del seele Ruhstatt sein”으로 바뀌었다.(뒤의 경우 단수를 복수로 바꾼 것은 바흐가 대본 작가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인간 영혼” 모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뒤에 바흐의 사위인 알트니콜이 <마태수난곡> 초창기 악보를 사보하여 펴냈는데 여기에는 바흐가 사소한 부분에까지 얼마나 관심을 갖고있었는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알프레드 뒤르가 알트니콜은 때로 “전혀 엉뚱한 가사”를 쓰고있다고 지적한 것은 정확하다. 예컨대”bindet nicht”라 해야 할 것을 “Haltel bindet ihn”(뒤에 다른 사람에 의해 정정됨)으로, “in Tigerklauen”라 해야 할 것을”Ach! mein Lamm mein Tigerklauen”<아아! 호랑이 발톱에 걸린 나의 어린양이여>(끝내 정정되지 않음)로 적고 있다.
자유로운 해설의 한계
바흐의 수난곡들에 혀용되는 해석의 자유는 다른 음악이나 극작품들에 비해 훨씬 제약된다. 수난곡은 지휘하고 부르기 위한 것, 말하자면 “연주하기”위한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인 해석의 자유에 관해서는 역사적으로 어떤 것을 진짜 악보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더울 절실하게 제기된다. 바흐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합창단을 염두에 두고 곡을 썼는데 이것을 19세기 후반 식의 대규모 합창단더러 부르라고 할 수 있을까? 바흐의 역사적 위치, 한편으로 오늘날의 연주양식 변화, 19세기와 20세기의 발전에 영향받은 우리의 청취 양식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런 물음에는 명쾌한 대답이란 있을 수 없다. 문제의 해결이 혹 있다면 그 것은 이러한 대조적 요소들의 조화에 의하여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해석의 자유란 대체 어떤 것인가? 예컨대 시작 합창의 고동치는 현악기 리듬이 죄에 묶인, 그래서 구속을 희구하는 인간의 격렬한 심장의 고동으로 해석되어양할 것인가(또는 그런 해석도 가능한가?)묵상하는 영혼이 문득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다는 점에서 제자들이 자기들 가운데 누가 예수를 팔 것인가 묻는 극적 메시지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정적이 흐른 뒤 코랄이 “Ich bin’s, ich sollte bussen”(그것은 나입니다)라고 끼어들며 응답하는 것에는 틀림없이 어떤 뜻이 담겨 있다(에른스트 블로흐는 {음악미학}에서 이 독특한 순간을 그렇게 해석한 바 있다.).
또 뒤에 베르크가 <보쩨크>에서 그랬듯이 바흐도 C장조를 추악한 것, 특히 돈과 연관지어 사용했다는 데도 마찬가지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마태수난곡>에서 화려한 트릴로 장식된 빈정대는 합창 “Andern hat er geholfen”(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에 나오는 C장조 종지는 “so wollen wir ihm glauben”(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 지어다.)이라는 반어적 가사에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식의 새로운 연상들을 발견해내고 이에 신빙성을 더하는 데만도 일생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러면서도 바흐의 <마태수난곡>, 음악에 의한 믿음의 최상의 이 표현물은, 흔히 위대한 예술작품의 수준과 풍부함의 상징인 넓은 범위의 상반된 해석 가능성에 아무런 제약도 가하지 않는다. 예컨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몇 년 동안 연구한 사람이라면 리어왕을(완고하기는 할 망정) 운명에 얻어 맞은 선한 왕으로, 어떤 때는 불쌍한 인물로 보기보다도 어떤 때는 전제적이고 자기 중심적이 아버지로 볼 것이다. 파우스트 또한 한편으로는 인간에 허용되지 않는 지식에의 갈망으로 악마의 유혹에 빠진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정도의 해석의 자유를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적용하는 것은 어쩌면 주제의 세속화 일 수도 있다. 수난 줄거리 자체가 (아나톨 프랑스나 헤밍웨이 등)많은 위대한 작가들에 의해 제 각각으로 해석되기는 했다. 또 그래서 안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바흐 수난곡의 해석자라면 모름지기 등장인물들 사이의 묘사된 관계에 변경을 가하려 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태수난곡>이 “복음사가 성 마태에 의한”수난장으로 이해, 연주되는 한 그러하다.
그 결과 수정가능한 참신한 해설은 언제나 “무엇을”보다 “어떻게”에만 적용할 수 있게 된다. 또 이 “어떻게”의 물음은 주제(변할 수 없는 복음사가의 정체감을 유지하고 있다.)와 분리하여 순수하고 미적 으뜸 요소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아무런 긴장 없이 쳇바퀴 돌 듯 건성으로 작품을 되풀이 연주할 위험이 생겨난다. 이 위험을 피할 방법은 단 하나이다. 연주가들이 바흐가 요구하는 수준의 예술적 진리에 직접 대응할, 또 엉뚱한 것을 참지 못하는 음악적 깊이를 마치 제2의 본성에 따르듯 음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듣는 이들의 몫은 무엇일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태수난곡>에 대한 체험도 바뀐다.
처음 듣고서는 극적인 합창, “Barabbam”(바라바로소이다)라는 외침에서의 거친 중4도 화음의 화려함이 억제된 음화(音畵)와도 같은 코랄들 “Wahrlich dieser ist Gottes gewesen”(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는 선언에서 속세를 떠난 듯한 숭고함에 매료된다. 이러한 순간들의 힘이란 결코 줄어들지 않는 것이지만, 아리아들과 이들의 의미심장한 반주 텍스츄어의 아름다움 또한 감수성이 예민한 정신을 차츰차츰 사로잡는다. 오늘날 청자들을 가장 완벽히 사로잡을 마지막 요소는 아마도, 도대체 누구의 입장에서 바흐가 이 수난곡, 복음사가의 서술적 레치타티보를 썼을까 하는 문제일 것이다.(최근에는 심지어 복음사가 역은 빼어버려야 마땅하다는 터무니없는 의견까지 나온 바 있다.)
그러나 바흐가 이 엄청난 이야기를 얼마나 정교하게 꾸며 내놓고 있는가를 우리는 곧 느끼고 이해하게 된다.(프로파간다 문제에 골몰한 베르톨트 브레히트도 이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모든 일을 목격한 복음사가가 어떻게 구주의 고난에 동참하기 시작하는가. 현악기의 빛나는 후광에 둘러싸인 예수의 기품있는 목소리가 어떻게 부각되는가?(다만 예수가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절망하여 “Mein Gott, mein Gott, warum hast du mich werlassen”(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이라 부르짖을 때 현악 합주의 빛나는 음색이 사라지고 죽어가는 구세주만이 남아 있는 것은 예외)를 우리는 차츰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면서 우리는 이 작품의 악보가 담고 있는 놀라운 면모들을 깨닫게 된다. 우리를 차츰 성숙하게 하는 음악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마태수난곡>, 바흐의 이 진행중인 작품, 영원하고도 숭고한 도전은 우리가 성숙해서 다다라야 할 어떤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코 그 깊이를 완전히 측량할 수 있다.
《마태 수난곡》의 내용
제1부
제1곡 도입 합창 e단조
《마태 수난곡》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2중 합창의 효과를 남김없이 피력한 웅장한 합창곡이다. 통주 저음의 규칙적이며 유연한 리듬 위에 제1합창대가 “딸들아, 와서 함께 슬퍼하자”고 슬픔의 노래를 흘리면, 제2합창대는 그 사이로 짧게 “누구를?” “어떤 모습을?” 하고 물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제30소절 때부터 아동 합창이 코랄 “오, 죄 없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여”를 드높이 부르며 두 개의 합창과 악기군, 소년 합창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이때까지 각기 문답을 나누고 있던 합창대는 제73소절 째부터 하나가 되어 “보라, 예수가 사랑과 자비로 손수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을”하고 힘차게 노래한다. 장엄함과 슬픔을 아울러 간직한 웅대한 서곡이다.
Ⅰ. 수난의 예언(제2곡∼제5곡)
도입 합창에 이어 ‘마태복음’ 제26장 1절부터의 긴 수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예수는 이제 머지않아 일어날 수난을 짐작하고 제자들에게 그 사실을 예고한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유대의 대사제나 학자들이 남 몰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제2곡 레치타티보
수난의 이야기를 진행하는 복음사가(福音史家)가 테너로 노래한다. 이어 예수가 베이스의 위엄 있는 목소리로 등장한다. 《마태 수난곡》에서는 대개 길게 잡아늘인 반주를 동반하고 있다. 이 특색 있는 현 반주는 마치 예수를 둘러싼 광배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수의 말 “십자가에 못 박힌다”(Gekreuziget)가 불안한 음향의 장식적인 움직임으로 강조되고 있다.
제3곡 코랄 b단조
“진심으로 사랑하는 예수여, 당신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습니까?”하고 청중이 무고한 죄인 예수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노래한다.
제4곡 레치타티보
장면이 바뀌어 예수를 잡으려고 계책을 꾸미는 제사장과 장로들을 묘사하고 이어 격렬한 합창을 이끌어 낸다.
제5곡 대사제들의 합창 C장조
두 합창대가 “축제 기간에는 그러지 말자.”고 격렬하게 주고받는다. 플루트, 오보에 등의 관악기를 비롯하여 현악기까지 반주를 맡는다. 특히 서두에 나오는 플루트의 16음표에 의한 빠른 패시지는 예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유대인들의 초조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곡 끝에서 “민중 속에 소동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가사(歌詞)의 ‘소동'(Aufruhr)이라는 말에는 16음표가 붙어서 장식적인 움직임이 길게 늘어진다.
Ⅱ. 베타니야 마을의 향유(香油)(제6∼제10곡)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근교의 베타니야 마을에서 나병 환자인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을 때, 한 여인이 값진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붓는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이 분노하자 예수는 조용히 “내 장례를 준비해 준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난을 미리 알고 있는 예수와 아직 아무 눈치도 못 채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제6곡 레치타티보
제7곡 제자들의 합창 a단조
제1합창대가 부르도록 지정되어 있다. 이 곡은 예수의 제자들이 값진 향유를 예수에게 부운 짓을 나무라며 “무엇 때문에 그런 낭비를 하느냐”고 힐난하는 가사가 들어 있다. 우선 4성이 같은 리듬, 같은 가사를 노래하는 호모포니크의 수법으로 시작되고, 곡 후반의 “그걸 비싸게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줄 수도 있었을 텐데”부터는 테너, 베이스, 알토, 소프라노 순으로 모방 풍의 노래가 이어진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에서 제1합창이라고 지시된 합창이며, 여기에는 후에 나오는 적의에 찬, 격렬한 유대 군중의 합창은 없다.
제8곡 레치타티보
제9곡 레치타티보(알토) b단조
플루트 두 개의 떠도는 듯한 반주를 동반한 알토가 “나의 눈물을 당신의 머리에 붓게 해주십시오.”하고 호소한다. 이 플루트가 반주를 담당한 채 “참회와 후회로 죄 많은 마음은 찢어질 듯합니다.” 하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 가사는 갖가지 형태로 몇 번이나 나타난다. 후반의 “괴로움의 눈물이…”에서는 플루트가 하강음형을 스타카토로 연주하여 눈물 흘리는 효과를 살리고 있다.
Ⅲ. 유다의 배반(제11곡∼제12곡)
제11곡 레치타티보
제12곡 아리아(소프라노) b단조
유다의 배반을 제11곡의 레치타티보가 노래한 뒤, 이 저주스러운 일을 안타까워하는 애절한 감상이 넘치는 아리아가 삽입된다. 서두의 가사 “피를 흘리게 하라”(Blute nur)라는 말을 싱코페이션의 리듬으로 부르고 곧 간주로 이어진다. 세 번째의 “피를…”부터는 가사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기분의 고양을 나타낸다. 아리아 후반에서는 “죽인다”(ernorden)와 “뱀”(Schlange)을 섬세한 음표로 강조한다.
Ⅳ. 최후의 만찬(제13곡∼제19곡)
과월제(過越祭)준비를 하고 예수는 12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는다. 이 자리에서 예수가 “너희들 중의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자, 만찬의 자리는 순간 불안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후에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성찬식(聖餐式)은, 뒤이은 자유시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더욱 그 중요성과 감명을 북돋운다.
제13곡 레치타티보
제14곡 제자들의 합창 G장조
제1합창대가 부르는 이 합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모포니크로 계속되며, 새삼스러운 감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제15곡 레치타티보
레치타티보의 중간부터 ‘최후의 만찬’ 묘사가 시작된다. “너희에게 말하노니”(Wshrlich, ich sage euch)라는 예수의 말은 도약(跳躍)하는 커다란 음정 속에 나타난다. 여기서 예수의 확신에 찬 모습을 보게된다. 이어 “너희들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하려 하고 있다.”는 주 예수의 뜻밖의 말에 일동은 큰 충격을 받고 두려워하면서 제각기 “주여, 저는 아니겠지요?” (Herr, binichs?) 하고 묻는다. 합창은 모방풍으로 전개되며, 앞을 다투어 주 예수에게 묻는 제자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제16곡 코랄 Ab장조
앞의 합창 “주여, 저는 아니겠지요?”에 대해 “그건 접니다. 저야말로 참회해야 합니다.”(Ich bins, ich sollte bussen)하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이 코랄의 선율은 하인리히 이자크(Heinrich Isaac, 1450년∼1517년경)의 유명한 가곡 「인스부르크여, 안녕」이 원곡이다.
제17곡 레치타티보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는 성찬식이 펼쳐진다. 이 장면에서는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길다랗게 늘어진 현반주를 거느리고 예수의 레치타티보가 주역을 맡는다. 특히 “이것은 내 몸이다. 집어서 먹어라.”(Nehmet, esset, das ist mein Leib)부터는 레치타티보라기보다는 높은 목소리의 아리오소로 바뀐다. 현 반주도 독립된 움직임을 보이며 목소리와 아울러 아름다운 윤곽을 그려 나간다.
제18곡 레치타티보(소프라노) G장조
달콤한 음향을 지닌 오보에 다 모레 두 개의 파상(波狀)반주를 동반하며, 소프라노가 예수와의 이별을 애절하게 호소한다. 그러나 차츰 주의 피와 살이라는 고귀한 선물에 대한 감사와 찬미로 바뀌어 이윽고 기쁨의 아리아로 옮겨 간다.
제19곡 아리아(소프라노) G장조
기쁨으로 넘치는 오보에의 가락으로 시작하는 이 소프라노 아리아는 성찬을 받는 신자의 진정으로 고마운 보답을 노래한 것이다. 주에 대한 열렬한 사념(思念)이 뿜어나오는 이 곡은 《마태 수난곡》 중 유일한 기쁨의 아리아라고 할 수 있다.
Ⅴ. 올리브 산 위(제20곡∼제23곡)
제자들과 함께 예수는 올리브 산에 올라가, 앞으로 머지않아 제자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며 베드로는 자기를 모른다고 부인(否認)하게 된다고 예언한다.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모두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애써 변명한다.
제20곡 레치타티보
이 레치타티보에서는 음화적인 수법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서두의 1절을 부른 뒤에 나타나는 통주 저음에 의한 상승 음계는 산에 오르는 예수 일행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 예수의 말 “내가 양치기를 때리면”(Ich werd den Hirten schlagen)부터는 뒤이은 “양떼를 멀리 흩어져 버리리라”(und die Schafe der Herde werden sich zerstreuen)는 가사를 돋보이기 위해 현의 스타카토가 조각 조각 흩어지는 듯한 음형을 연주한다.
제21곡 코랄 E장조
원곡은 한스 레오 히쓸러(Hans Leo Hassler, 1564∼1612)가 작곡한 세속 가곡 「내 마음은 어지러이 흩어져」(Mein Gemut ist verwirret)이다. 이 곡은 후에 코랄로 전용되어 “오, 피 흘리는 머리여”(O, Haupt voll Blut und Wunden)라는 가사의 수난 코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바흐는 이 코랄을 《마태 수난곡》 속에서 5회나 쓰고 있다. 제21곡의 코랄은 앞의 레치타티보에서의 예수의 말 “나는 다시 일어나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Wenn ich aber auferstehe, will ich vor euch hingehen in Galilaam)를 받아, 모든 기쁨의 원천인 주 예수를 칭송하는 확신에 찬 곡이다.
제22곡 레치타티보
베드로는 드높은 목소리로 예수를 향해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 때문에 굴본한다 하더라도 저는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Wenn auch alle sich an dir argerten, so will ich doch mich nimmermehr argern)하고 자랑스럽게 장담하지만, 예수는 조용히 ‘베드로의 부인(否認)을 예언한다.
제23곡 코랄
Ⅵ. 겟세마네 동산(제24곡∼제31곡)
예수는 이제 앞으로 일어날 수난을 알고 아버지인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린다. 기도 속에서 예수는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으로부터 동떨어져 초연한 척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으로서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있다. ‘겟세마네 동산’ 장면은 《마태 수난곡》 중에서도 특히 깊은 슬픔과 괴로움으로 가득 찬, 내성적(內省的)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제24곡 레치타티보
비통한 말투로 현 반주의 부축을 받으며 “슬픈 나머지 죽을 정도로”라는 예수의 마음이 나타나 있다.
제25곡 레치타티보(테너)와 합창 g단조
오보에의 긴 전주를 받으면서, 주 예수와 함께 깨어나 있어야 한다는, 제자의 심정을 노래한다. 솔로의 1절이 끝나면 합창이 “우리의 죄는 잠들리라.”(So schlafen unsre Sunden ein)라고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노래한다. 이후 당초(唐草) 무늬 같은 솔로와 호모포닉의 합창이 교대로 곡상을 전개시켜 나간다.
제27곡 레치타티보
제28곡 레치타티보(베이스) d단조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쓴 잔을 마시겠다고 결심한 예수의 심정을 노래로 표현한다.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꿇어앉아 기도하는 예수를 그리듯이 현 반주는 시종 하강의 분산 화음을 연주한다.
제29곡 아리아(베이스)
제30곡 레치타티보
제31곡 코랄 D장조
하느님의 마음을 믿는 자의 평안과 신뢰로 가득 찬 코랄이다.
Ⅶ. 예수의 포박(捕縛)(제32곡∼제35곡)
‘겟세마네 동산’의 마지막 레치타티보는 그대로 ‘예수의 포박’장면으로 들어간다. 예수가 유다의 인도로 체포된 뒤에 부르는 제33곡의 합창 부(付) 아리아는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격렬함을 지닌다. 이 아리아가 《마태 수난곡》 제1부의 커다란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 포박 장면 이전의 ‘올리브 산’과 ‘겟세마네 동산’ 등의 정경이 조용하고 내성적인 것이었던 만큼, 한층 더 강한 성격이 두드러진다.
제32곡 레치타티보
제33곡 합창 부 2중창 e단조
소프라노와 알토가 “지금 예수는 체포되었다.”고 슬프게 노래하기 시작하면, 합창은 날카로운 투로 “놓아주어요. 기다려요. 묶으면 안됩니다.”하고 외친다. 2중창의 구성진 선율과 이와는 대조적인 합창의 외침을 교대한 뒤, 곡은 갑자기 바뀌어서 비바체가 되어 합창이 “번개도 우레도 모습을 감추었는가! 지옥이여, 불길의 나락을 열라. 배반자를 쳐부숴라.” 하고 처절한 분노를 폭발시킨다.
제34곡 레치타티보
제35곡 코랄 E장조
제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합창에서는 먼저 전 악기의 장려(壯麗)한 서주가 있은 뒤에 전 합창의 코랄 “오, 사람들이여, 너희 죄가 엄청남을 뉘우치며 울라.”가 도입된다. 이 코랄은 오케스트라의 간주를 사이에 두고 펼쳐진다. 곡 전체는 웅대한 코랄 환상곡을 이루고 있다.
제2부
제36곡 도입곡 합창 부(付) 아리아(알토) b단조
예수의 행방을 염려하며 찾아다니는 시온의 딸의 슬픈 솔로와 그런 모습을 보고 묻는 합창과의 대화이다. 아리아를 반주하는 플루트와 오보에의 유니즌 음은 애처롭게 비틀거리는 듯한 불규칙적인 리듬을 새기면서 잡혀간 예수를 애타게 찾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Ⅷ. 카야바의 재판”(제37곡∼제44곡)
잡혀간 예수는 대사제 카야바 앞에 끌려나가 심문을 받는다. 이 장면에서 유대인 군중의 합창이 비로소 등장한다. 격렬한 합창은 다음의 ‘빌라도의 재판’ 장면에서 그 극치를 이룬다.
제37곡 레치타티보
제38곡 코랄
제39곡 레치타티보
제40곡 레치타티보(테너) a단조
오보에 두 개와 비올라 다 감바가 연주하는 조용한 화음이 배경에 규칙적으로 흐르고, 테너가 “예수는 침묵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셨다.”고 노래한다.
제41곡 아리아(테너)
제42곡 레치타티보
“머지 않은 훗날, 사람의 아들이 힘있는 자의 오른쪽에 앉게 되고…”라는 예수의 말은 흐르는 듯한 현 반주의 뒷받침을 받으며 당당하게 확신으로 차있다. 이어 군중의 합창(G장조)이 나타난다. 유대인의 증오의 목소리가 2중 합창의 수법으로 커다란 박력을 지니고 다가든다.
제43곡 레치타티보와 합창
제44곡 코랄 F장조
군중에게 매맞고 걷어채는 예수의 모습에 대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분노어린 슬픈 기분을 표현한다.
Ⅸ. 베드로의 부인(否認)(제45곡∼제48곡)
올리브 산 위에서 예수가 예언한 말(베드로의 부인)은 이 장면에 이르러 그래도 적중한다. 붙잡힌 예수의 뒤를 살며시 뒤따르던 베드로는 주위 사람들의 질문에 세 번 예수를 부인하고 만다. 그 후 베드로의 격심한 슬픔은 제47곡의 유명한 아리아에 응집되어 있다.
제45곡 레치타티보와 군중의 합창 D장조
베드로의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그의 사투리에 의심을 품고 “당신도 한패지?”하고 다가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정체를 폭로한 “말투”(Sprache)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만이 길게 장식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제46곡 레치타티보
제47곡 아리아(알토) b단조
그지없이 아름다운 슬픔의 아리아이다. 바이올린의 오블리가토를 동반하고 알토가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에게 용서를 빈다. 테마의 선율은 앞의 베드로의 레치타티보 “그런 사람은 모른다.”(Ich kenne des Menschen nicht)에서 비롯되고 있다.
제48곡 코랄
Ⅹ. 유다의 최후 [제49곡부터 제53곡까지]
?. 빌라도의 재판(제54곡∼제63곡)
‘군중’이 등장 인물 중 큰 몫을 한다. 바흐는 이들 군중의 횡포와 격렬함을 나타내기 위해 2중 합창의 수법을 쓰고 있다. 또 이와 동시에 자유시의 레치타티보나 아리아도 삽입하여 길고 긴 재판장면에 다양한 변화를 주고 있다.
제54곡 레치타티보와 군중의 합창 “바라바를!”
빌라도가 죄수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용서해 주기를 바라는가 하고 군중에게 묻자, 그들은 “바라바를!”하고 외친다. 이 합창은 불과 한 소절이지만 2개의 합창과 8성부가 일제히 “바라바를!”하고 을씨년스러운 음향을 내뿜는다.
군중의 합창 “십자가에 매달라!” a단조
차츰 더 거칠어진 군중은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친다. “십자가에”(Kreuzigen)라는 말이 모방풍의 수법으로 압도적인 힘을 내뿜으며 다가든다.
제55곡 코랄
제56곡 레치타티보
제57곡 레치타티보(소프라노) e단조
계속 3도 음정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두 개의 오보에 다 카치아를 반주로 하여, 소프라노가 예수의 갖가지 선행을 이야기한다.
제58곡 아리아(소프라노) a단조
《마태 수난곡》 전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곡의 하나로 꼽히는 감동적인 비가이다. 플루트의 서정적인 오블리가토를 동반한 채 “사랑의 마음으로 죽어 가시는 예수”를 애도하는 소프라노의 선율이 가슴 아프게 흐느낀다.
제59곡 레치타티보와 군중의 합창 “십자가에 매달라!” b단조
전체적으로 한 음 높아진 점을 제외하면 제54곡과 꼭 같다. 그러나 한 음 올림으로써 더욱 흥분한 들뜬 군중의 미친 듯한 외침소리를 부각한다.
제60곡 레치타티보(알토) C장조
부점(付点) 리듬의 현 반주가 채찍질을 묘사한다. 그 일관된 리듬을 배경으로 하여 죄 없이 괴로움을 당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고 “채찍질을 그쳐라.”하고 외치는 비통한 노래를 펼친다.
제61곡 아리아(알토)
제62곡 레치타티보와 병사들의 합창 d단조
두 합창대가 교대로 조소의 말 “우리는 너를 반긴다.”(Gegrusset seist du)를 노래하고, 끝에 이르면 “유대의 임금님”(Judenkonig)이라고 야유를 퍼붓는다.
제63곡 코랄 d단조
유명한 수난 코랄이다. “피 흘리며 상처 입은 머리여”하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화성 진행 속에도 끝없는 슬픔이 간직되어 있다.
제64곡 레치타티보
?. 십자가의 처형(제64곡∼제70곡)
드디어 예수는 두 명의 도둑과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보고 군중은 조소하며 모욕을 가한다. 바흐는 이 장면에서 자유시에 의한 각기 두 곡씩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삽입하여 다음의 “예수의 죽음”과 함께 그 중요성을 강조하려 했다.
제65곡 레치타티보(베이스)
제66곡 아리아(베이스)
제67곡 레치타티보와 군중의 합창 b단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쳐다보는 군중의 조소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Steig’ herab kreuz)라는 가사를 음화적으로 다루며 하강 음형으로 세 번 반복한다.
제68곡 레치타티보
제69곡 레치타티보(알토) c단조
바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비범한 기악 반주가 붙은 레치타티보이다. 두 개의 오보에 다 카치아의 뒷받침을 받은 알토가 “아 골고다”, “저주받은 골고다”하고 슬픔에 흐느끼는 레치타티보를 노래한다.
제70곡 아리아 합창
?. 예수의 죽음(제71곡∼제73곡 전반)
수난곡 중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며 예수의 레치타티보가 다른 장면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 매우 인상적이다.
제71곡 레치타티보
예수는 고통과 슬픔의 외침 소리 “엘리, 엘리, 라마, 라마 사박타니!”(Eli, Eli, lama, lame sabathani!)를 아다지오로 부른다. 이 레치타티보에서는 언제나 원광의 상징으로 울려 퍼지던 현 반주가 갑자기 뚝 그치고 예수의 말만 메아리친다.
군중의 합창 “저 분은 엘리야를” Bb장조
“예수가 엘리야를 부르고 있다.”라는 합창은 군중 속에 섞여 있던 예수 편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때문에 바흐는 제1합창대를 기용하고 있다.
군중의 합창 “잠깐, 엘리야가” g단조
제2합창대가 노래하는 이 곡은 앞의 합창과는 반대로 예수를 미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제72곡 코랄 a단조
제73곡 레치타티보
예수가 죽은 뒤에 일어난 갖가지 불가사의한 기적을 통주 저음의 음화적인 용법의 도움을 얻어 싱싱하게 그려낸다.
?Ⅴ. 매장(埋葬)(제73곡 후반∼제78곡)
고통과 슬픔의 시간은 지나가고 둘레에는 저녁 안개가 자욱히 들어선다. 이제 예수는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고 평화와 고요로 가득찬 기도와도 같은 노래가 이어진다.
제75곡 아리아(베이스)
제76곡 레치타티보와 합창
제77곡 합창 부(付) 레치타티보 Bb장조
베이스, 테너, 알토, 소프라노의 순으로 영원한 잠에 드신 예수에게 작별을 고하는 말이 되풀이된다. 합창이 그 사이를 누비듯이 “나의 예수여, 안녕히 가십시오”(Mein Jesu, gute Nacht)하고 조용히 말한다.
제78곡 종곡(終曲) 전합창 c단조
전 악기의 서주에 이어 두 합창대가 “여기 당신의 무덤 앞에 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젖어 당신을 부릅니다.”하고 노래하기 시작한다. 곡 전체는 커다랗게 활 모양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세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엄한 음향 속에는 정갈한 슬픔과 평안이 깃들어 있다.
여긴 네팔입니다.^^
사순절기간에 마태수난곡으류듣고 있습니다.
오늘로 일곱번째 듣고 있다가 자세한 해석을 찾다가 방문했군요. 감사합니다. 혹 독일어로 된 가사가 있는지요?
http://www.greatjsbach.net/WorkDetail.php3?detail=BWV244
http://www.bach-cantatas.com/Vocal/BWV244.htm
https://webdocs.cs.ualberta.ca/~wfb/cantatas/244.html
안녕하세요~ 이 정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