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의 크기

탈무드에 이런 우화가 있다.

어떤 나라의 공주가 큰 병에 걸려서, 왕은 공주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과 결혼시키겠다고 발표한다. 그 때 세 형제가 공주를 찾아와 공주의 병을 고쳐주었는데, 첫째는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마법 망원경을 가지고 있어 공주가 아픈 것을 알아냈고, 둘째는 먼 곳까지 날아갈 수 있는 마법 양탄자가 있어 그 양탄자로 세 형제들을 공주에게 데려왔고, 셋째는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마법 사과가 있어 그 사과를 공주에게 주어 병을 고쳤다. 문제는 세 형제 중 누구와 결혼을 시키느냐인데, 왕은 다음과 같이 결정한다.
‘첫째와 둘째가 가진 보물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셋째는 가진 사과를 공주에게 주어 더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니 셋째가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 옳다’

아들과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를 다시 읽었는데 갑자기 새롭게 다가왔다. 어떤 사람의 선행의 크기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했느냐,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느냐, 얼마나 많은 효용을 창출했느냐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얼마나 많이 줬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빌게이츠나 워렌버핏의 기부금액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평생 폐지를 주워 모은 돈을 기부하신 어떤 할아버지의 기부만큼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성경 말씀 중에도 과부의 두 렙돈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막 12:43-44)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기준은 희생의 크기가 아닐까? 누가 더 많이 드렸는지가 아니라 누가 더 적게 남겼는지의 문제 아닐까?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책을 읽으며 나는 같은 시간이나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이 옳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기준과 별개의 문제 아닐까?

어쩌면 나는 너무 많이 남기려고 하는 것 아닐까?

“희생의 크기”에 대한 한개의 댓글

  1. 오랜만에 들렸어요. 요셉이란 인물 그 자체에 대해 생각중인데, 혹시 형이 정리한 바가 있다면 엿보고 싶었거든요.ㅎㅎ 아쉽게도 그런 글은 적어두신게 없네요.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책이 형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 같네요. 저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었어요. 언제든지(지금 당장이라도) 모든걸
    기부 할 수 있는 상태가 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살아가라. 오늘 하루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면서, 먼 날에 이룰 그 좋은 마음들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요? 우리는 태생이 그럴 수 없는 사람이잖아요.

    이러한 면에서 요셉이라는 인물(큰 그림 말고)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해보려고 하고 있는데, 형도 비슷한 영역에서 멈칫되신것 같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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