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2장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말씀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나의 못난 점 죄에 빠지기 쉬운 나의 모습을 자랑하겠다는 말씀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나 어제 죄지었다. 나 약하지?” 하며 자랑한다는 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습지만요. 도대체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11장에 들어가며 본격화 됩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사도직분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거짓 교사들을 용납하고 있었지요.(고후 11:19)
바울의 자랑은 그래서 자신의 사도 직분을 변호하기 위함이요. 고린도 교회를 거짓교사로 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거짓교사들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그들을 바르게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단자들을 격하하고 자신을 내세우는 방법을 쓴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리석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11:17)
바울의 자랑하는 순서는 그렇습니다. 먼저 내가 무엇을 자랑하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18절에서 여러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하니 나도 육체를 따라 자랑하겠다고합니다. 그 후로 그가 히브리인이며 아브라함의 씨며 .. 하는 것들을 자랑합니다. 12장에서는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라고 한 뒤에 그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약함을 자랑하리라.. 라고 했다면 그 내용은 그 뒤에 나온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32절 이후의 내용을 보면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관련 구절로 사도행전 9장 24,25절 내용을 보면 같은 내용이 나오지만 상세하지가 못해서 어떤 상황이라고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의 약함이란 사람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도망가야 했던 그 상황에서의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처음 생각했던 그런 것들을 자랑하겠다는 말 같은 데요.. 그 다음 방법으로 약함이라는 단어를 어느 곳에서 사용했는지 찾아보니 바로
윗절에 사용된 예가 있습니다.

11:28-29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
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현대어 성경에는 좀더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니 어찌 내 마음이 슬프지 않겠습니까 넘어진 사람이 있는데 어찌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힌 사람에 대해서 격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29절에서의 두번 사용된 약함이라는 단어는 처음 단어는 잘못을 저지르는 약함이고 두번째 약함은 그 사람으로 인해 염려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 약함과 30절의 약함이 같은 뜻으로 보기보다는 30절의 약함은 두번째의 뜻으로 보는 것이 바울의 입장에서 타당하므로 그가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이 29절과 연관되었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약함이란 그가 교회를 생각하며 염려하는 마음.. 이었다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해석해 본다면 전체적인 문맥으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때의 거짓  교사들은 서로 자기의 겉모습만 자랑하느라고 애썼습니다. 그들의 업적과 그들의 잘난 점들을 늘어놓고 자랑했습니다. 그런 거짓 교사들이 있는 입장에서 바울이 나의 약한 점을 자랑하겠다고 말했다면 차라리 “야.. 너희들은 너네 잘난점만 자랑하느라고 애쓰는 모양인데 나라면 차라리 내 못난점을 이야기 하겠다” 라고 비꼬는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의 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은 잘난 척 하느니 못난 척한다는 .. 그러니까 좀 겸손해 져라.. 이런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비꼬는 말투같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전 장에서요
현대어 성경에는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주께서 하신 일을 자랑하고 자기 자신의 일을 자랑하지 말라” 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냥 의미만으로 볼때는 그의 약함은 아무래도 그의 업적.. 어디서 전도를 몇명을 했다던가.. 어디어디에 교회를 세웠다던가.. 하는 것보다는 그가 약해 있었던 모습, 즉 그가 처했던 위험들.. 고생들.. 이런 것들을 자랑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어렵게 따지고 든 것 같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의 업적들을 자랑했지만 그리스도 때문에 약해질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모습들을 자랑하겠다는 뜻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구원을 통해서 주안에서 자랑하라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연관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참 자랑할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2002.11.10
고린도후서 12장에는 익히 많이 들은 구절이 나온다. 바로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 라는 구절이다. 이번 연구의 목적은 이 구절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그 촛점이 있다. 본문 말씀이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7-10)

1. 바울이 말하는 ‘약함’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는 구절에서 약한 데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본문을 조금만 주의깊게 읽어본다면, 이 구절은,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 라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10장 이후에서 빈번하게 사용한 ‘약함’이라는 단어가 어떤 용례로 쓰였는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약함’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가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약함은 ‘병’보다는 ‘고난’ 이라는 해석이 더 어울리고 적절한 해석이라고 본다. ‘육체의 가시’라는 구절은 물론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리고 성경 안에서 근거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흔히 바울이 가졌을 ‘안질’ 등의 병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육체의 가시’라는 구절보다는, ‘약함’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살펴보는 것이 이 구절을 더 이해하기 쉽겠다고 보았다.
바울은 약함이라는 단어를 먼저 바로 아래 구절인 10절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10절)

‘약한 것’ 이라는 단어 뒤에 나열된 단어들을 보면 거의 동의어임을 알 수 있다. ‘능욕’, ‘궁핍’, ‘핍박’, ‘곤란’ 이라는 단어는 ‘고난’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질 수 있는 단어들이다. ‘약한 것’이라는 단어도 이런 육체적 고난의 범주에서 이해하는 편이 더욱 자연스럽다. 이러한 해석은 11장에서 13장 사이에서 사용된 ‘약함’이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서도 일관성 있는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13장 4절을 보자.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13:4)

여기서 말하는 약하심은 질병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구절에서는 ‘고난받으심’이라는 단어가 훨신 어울린다. 그것은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라는 구절에도 일관성있게 적용된다.

2.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구절은 무슨 뜻인가?
바울은 9절에서 그러므로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 라고 말한다. 이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구절은 매우 빈번히 사용되었다. 여기서 약한 것을 ‘병’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으며, ‘고난 당한 것’이라고 해석하면 전체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11장 23절-30절 사이에 그가 그리스도를 인하여 고난받은 이야기들을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11장에서 바울은 여러 사람이 육체를 따라 자랑한다고 했으며, 자신은 차라리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한다.(30절) 이것은 그가 육체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이해해야 하며, 그것은 그의 육체적 고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석한다면 12장의 내용과 자연스러운 연결 또한 가능하다.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육체의 고난을 말하며,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상대하였다. 그는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사단의 일꾼(11:15)으로 빗대어 말하였으며, 바로 12장 에 나오는 ‘사단의 사자’라는 말은 그런 면을 암시하는 단어로 볼 수도 있다.

3.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말의 의미?
7절말씀을 지금까지 이해한대로 해석해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육체적인 고난이 있는 곳에 온전해지기 때문에 나의 은혜는 너에게 충분하다(sufficient) 라는 뜻이 된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충분하다는 구절은 ‘더이상 너에게 줄 것이 없이 나는 이미 너에게 최상의 조건을 주었다.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완벽한 충족상태’를 가리킨다.
약한 데서 능력이 온전해지는 것은 13장 3-4절 구절과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다. 두구절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리스도께서는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심을 받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기쁨을 가리키는 것일수도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참예하면 그와 함께 부활에 참예한다는 신앙은 바울서신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단어는 부활을 주시는 능력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또 다른 해석도 줄 수 있다. 바울은 이 고난의 주는 능력에 대해서 이미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의 변증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고난받은 점은 다른 거짓 사도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는 그의 약한 점들(고난들)을 자랑함(내세움)으로서 그와 다른 사도들과의 차별성을 말하고 있으며 그의 약한점(고난)은 그의 권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4. 마지막 본문 해석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본문을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그의 사도권에 도전을 받았고, 그와 비교되는 거짓사도들을 주로 육체적인 출신과 배경을 자랑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도 그런면에 대해서 그들에 비해 꿀리는 점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그들과 차별되는 점으로서 그가 사도로서 받은 고난에 대해서 강조한다. (11장) 그는 하나님에게서 지극히 큰 계시를 받은 사도임을 말하며, 이러한 계시를 받은 사실로 교만해지지 못하도록, 그에게 많은 고난을 주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고난들이 힘들어 주님께 기도하였으나 오히려 그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도리어 자신이 그러한 고난 받은 사실을 자랑하려 한다.

결론
1.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는 구절은 ‘출신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진다’고 해석할 수 없다. 흔히 약한데서 온전해진다는 말을 출신이 부족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약한 것들을 통해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라는 고린도전서 1장 말씀과 그 의미를 혼동한 것이며 두 구절의 의미는 분명히 다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본문의 의미와 다르다는 것이지 그 말 자체가 틀린 말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천한 것들을 택하셔서 높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러나 위의 구절이 그런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2.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것은 ‘신앙적인 연약한 모습을 자랑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없다. 흔히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말을 자신의 신앙의 연약한 모습도 솔직히 드러낸다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적용은 본문을 바르게 적용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3. 약한 데서 온전해 진다는 말은 ”병’이나 신앙적인 이유없이 주어지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 라는 말로 보기 어렵다. 이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적절히 사용하셔서 인간을 단련하신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분명한 성경적인 가르침이기에 그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위의 구절이 그런 의미로 이해되는 것은 곤란하다. 본문 구절은 겉보기보다 더욱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4.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고난, 그 고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는다. 이것이 본문이 의미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부활의 능력일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영적인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을 때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안에서 온전해진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들, 그 어려움들을 겪어가며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얻게 되는데 그 능력은 그 어려움들이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은 그 고난과 어려움을 받고 있는 그 상황 가운데에 존재하는 것이며, 이점을 온전히 이해할 때 우리는 고난에 임하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된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그 대답을 듣고 오히려 크게 기뻐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쁨은 고난을 받음으로 부활의 참예하는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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