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 ‘천국에서 가장 큰 사람’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리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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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딕스가 그린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평범하다. 어찌보면 파격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그는 기존의 우아한 예수님의 그림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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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또 이 어린아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품고 있을까.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실망을 했을지도, 어쩌면 반대로 큰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저 표정을 보면 무언가 섭섭한 표정들이다. ‘너정도면 천국에서 큰자다.’ 이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일까.


어린아이의 표정을 보자. 어린아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
내가 보기엔 저 어린아이는 자기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던 작은 자가 되던 별로 관심 없다는 표정인 듯하다.
자기가 왜 여기 서있는지 예수님께서 왜 부르셨는지 잘 모른다.


둘의 마음은 얼마나 대조적인가.

오토 딕스, ‘승리의 입성’


저것이 승리인가. 승리자의 표정인가. 당나귀는 왜 저리 조용히 눈을감고 침묵을 지키고 있나.


군중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고 환영하고 있나. 종려나무 가지는 왜 흔들고 있나.
그들이 외치는 ‘호산나(우리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는 무슨 말인가.


다윗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어서 자기들의 적들을 처부숴 달라는 주문이었겠지.


그러나 그들의 적은 로마도 다른 이방 족속들도 아닌 것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진정한 적. 죄, 율법,
그것으로부터 자유를 주시기 위해 그들 대신 그 저주를 받으신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까닭은 죽기 위하심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기대한 것은 다윗왕 시대의 그 강성하던 이스라엘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전부였을테니.


그래서 저들은 순식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살인마로 돌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오토 딕스, ‘열 처녀의 비유’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13)

오토 딕스, ‘십자가를 지심’


개와 같이 목에 밧줄을 묶었다. 앙상한 발목은 힘이 풀렸다. 예수님은 언덕을 기듯이 올라간다.
채찍을 든 사람은 무자비한 표정을 지녔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호기심으로만 쳐다본다.


그 누가 이 사람이 자신을 위해 올라가는 것을 깨달았나? 그저 호기심어린 눈으로 하나님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선동한, 한 목수의 아들의 죽음으로만 알았을 뿐. 그리스도의 표정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그는 하나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