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이 그림은 너무 많이 봐서 어떻게 보면 지겨운 듯 하지만 생각하며 볼수록 흥미진진한 그림이다.
레오나르도는 이 그림을 굉장히 고심해서 그렸다고 한다. 그는 해부학에 열심이었는데, 사람의 얼굴과 성격의 관계를 열심히 연구했다고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성격이 어떤 사람은 얼굴이 어떻고… 라는 식으로, 그래서 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때 성경에 있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다 분석하고 그들의 성격을 읽어내고 또 그 성격에 맞는 얼굴을 가진 모델들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여기 있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의 그림은 그런 노력들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장면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유원절 전날 제자들을 모아놓고 저녁을 함께 하셨다. 그 때 돌연히 예수님께서 말씀을 꺼내신다.


“너희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느니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주여 저입니까?”


그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 것이다.”


그림 속 장면은..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나를 팔 자가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직후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일단은 그림의 구도이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식탁 한 쪽에만 앉아있다. 원래는 빙 둘러앉아 있거나 그래야 정상인데 그림 가까운 면쪽에는 아무도 앉지 않은 것이다. 화가는 이런 구도로 보는 이들을 만찬에 함께 앉게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이 그림은 식당에 걸기 위한 것이었다고 들은 것 같다.)


가운데 예수님이 앉아 있는데 후광이 없고 다만 원근법의 소실점이 예수님 머리쪽으로 집중하여서 주목을 주고 있다. 예수님의 두 손을 보면 한 손은 위로 다른 한 손은 아래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 물론 입고 있는 옷의 색도 의미가 있다. 붉은 색은 보혈을 의미하는 듯하고, 푸른색은 고귀한 신분을 의미했던가? 아무튼 ‘서양화 읽는 법’이라는 책을 읽으면 옷의 색의 의미도 자세히 나와 있다.


예수님 바로 오른편은 요한, 두 팔을 벌리면서 설마 저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 뒤로 손가락을 위로 치켜든 것은 도마라고 한다. 의심이 많기로 유명한… 열 두 제자가 취하는 표즈는 다 제각각 다르며 인물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성경이 급하고 불같았던 베드로는 예수님 왼쪽 두 번째 에 그려져 있는데 흰 수염을 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등 뒤로 칼을 감추고 있는 것이 보인다. 누군지 알기만 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모습이다.


유다는? 그는 베드로 바로 왼쪽에 얼굴이 약간 검은 모습… 오른손에는 돈주머니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유다임이 확실하다. 조금은 흠칫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는 유다와 예수님의 얼굴을 찾느데 굉장히 고민했다고 한다.


어딘가에서 퍼온 글


”’ 레오나르도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형태에서 추함을 탐구했다. 그는 전쟁 장면과 기괴한 것들을 스케치했고, 꽃과 아름다운 젊은이들 옆에 대홍수 장면을 자주 등장시켰다. 레오나르도는 거리에서 신체 불구자나 외모가 이상한 사람을 보면 하루 종일 그를 따라다니며 세세한 점까지 기록했다. 어떨 땐 그 고장에서 가장 기괴하게 생긴 사람들만 초대해 파티를 벌인 적도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히스테리컬한 웃음을 터트릴 때까지 계속해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파티가 끝나고 나면 파티에 왔던 사람들의 얼굴을 밤을 새워 스케치하기도 했다.


케네스 클라크는 레오나르도가 추함에 호기심을 가졌던 것을 두고 ‘사람들이 고딕식 성당에 괴물 형상의 석누조 조각을 다는 동기’에 에 비유했다. 괴물 형상의 돌 조각은 성자의 상을 보완해주었다. 레오나르도의 기형 인물 스케치는,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완해주는 역할을했다.’ ‘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보면 항상 신비스럽게 대하게 되는데 왜냐면 그가 그린 사람얼굴이나 표정 몸짓 하나하나는 굉장한 연구와 정보수집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는데 굉장히 어려워서 이 그림에서도 미완성인 채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의 전형 다빈치… 이 너무나도 유명한 ‘최후의 만찬’ 알고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그림이다.

렘브란트, ‘엠마오의 그리스도’


Supper at Emmaus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이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그림. <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날, 예수를 따르던 이들 중의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11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길을 가면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가까이 가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대체 무슨일이 있길래 그다지도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그들 중에 글로바라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살면서도 지난 주간에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예수께서 물으셨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께 있었던 일이오.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놀라운 일들을 베풀어 보인 예언자요, 권능 있는 선생으로 높이 존경을 받는 분이었소.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붙들어 로마 정부에 넘겨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였소.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이 난국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생각해 왔소. 이런 일이 있은 것은 사흘 전이었지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오.
그분을 따르던 우리 동료들 가운데 여자들 몇이 오늘 새벽에 그분의 무덤에 갔다가 그분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들만 보았다는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소.
그래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달려가 보니 말한 대로였고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거요.”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그렇게도 미련한 자들이냐! 너희는 예언자들이 성경에 기록한 모든 것이 그렇게도 믿어지지가 않느냐!
그리스도가 영광스런 자리에 앉기 전에 이 모든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예언자들이 명백하게 예언해 두지 않았느냐?”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글부터 시작하여 예언자들이 기록해 놓은 구절들을 일일이 인용해 가면서
그 구절들이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목적지인 엠마오에 거의 다다랐으나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날이 저물었으니 그 밤을 자기들과 함께 묵어 가시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들이 식탁에 앉자 예수께서 떡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 때에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예수는 그들 앞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현대어 성경 눅 24장 13-31절)


이 그림은 저녁식사를 막 시작하는 찰나를 그리고 있다. 예수님의 손에 있는 것은 빵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빵을 떼어서 그들에게 줄 때에 그들이 눈이 열려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고 나온다. 다음은 윌터 엘 나란의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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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의 렘브란트(1606-1669)처럼 철저하게 자기의 그림을 성경 중심으로 그린 화가는 없다.
그의 수많은 그림과 조각은 신구약의 장면과 인물을 취급한 것이다. 성경은 그의 주요한 영감이요,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기 위한 도전이었다.
당시의 신학적 논쟁에 별로 관심이 없는 렘브란트는 구세주 자신 위에 자기의 신앙을 두었다.
그는 예수를, 낮은 자들 사이로 겸손히 다니시며,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시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사랑으로써 죄인에게서 죄의 짐을 벗겨 주시는 인자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가장 감명 깊은 걸작중의 하나인 엠마오의 저녁에서 보여 주는 예수이다.
이 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들은 존경하는 선생님의 비참한 죽음과 빈 무덤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그가 주님이신 줄 몰랐으나 그는 그들을 만나 그의 죽음과 부활의 뜻을 설명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셨다.


저녁 때 엠마오에 도착하자 그들은 예수에게 머물러 식사를 같이 하시자고 청하였다.
그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실 때 그들은 눈이 열려 그가 누구이신 줄 알게 되었다.


그의 축사하시는 음성이 이 길쭉하고 침침한 방에 아직도 울리고 있다.
마치 그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 모양으로 제자들은 좋은 주님을 바라다본다. 그의 온유하신 몸 전체가, 흑암의 심연을 꿰뚫는 것 같은 내부적 빛으로 빛난다.
이처럼 그들과 마주앉아 성만찬의 떡을 떼시며 무한한 위로를 주시는 그를 그들이 얼마나 사랑하였을까!


오늘도, 어디서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는 교제를 통해서 가까이 계시고 위로하신다.
부활절의 교훈의 중심은, 즉 살아 계시사 언제나 함께 하시는 그의 은혜를 통해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그의 말씀의 진리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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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의 이 그림<아래>은 더 극적이다. 예수님의 얼굴 근처에서 빛이 감돌고, 예수님을 알아보는 찰나의 순간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놀라는 사람의 표정
그리고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러나 약 20년 후에 그린 위의 그림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빛과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묘사에서 훨씬 위대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렘브란트, ‘유대인 신부’


The Jewish Bride, 1665-67, Rijksmuseum, Amsterdam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감동적으로 그려낸 렘브란트의 그림. 어떤 책에선가 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읽었는데, 그 사람은 이 그림에 대해서 대단한 호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남녀의 엄숙하면서 진지하고 따뜻한 얼굴 표정과 시선, 여인을 반쯤 감싸 안은 듯한 자세와 손길.

특히 반쯤 남자의 손을 덮은 여인의 손은 굉장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저 손이 내려가서 자기 두 손을 마주 잡은 모습으로 그렸다면 이 그림의 느낌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반쯤 포갠 부부의 저 두 손이 이 그림에서 굉장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한스 로크마커는 ‘ART – need no justification(기독교와 현대예술 – IVP)’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예술은, 주어진 삶의 위대성에 대한 경탄과 함께 성령의 적극적인 심성으로 나태는 등 실로 깊은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 주제가 ‘기독교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그의 수난곡 못지 않게 기독교적이며,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역시 그의 종교적 주제의 그림 못지 않게 기독교적인 것이다. 참으로 예술가에게 복음 전도자가 되라고 요규하는 것은 그가 예술의 의미,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다른 활동의 의미에 대해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는 자든지, 먹든지, 혹은 열심히 일하든지 항상 그리스도인이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다. 우리 기독교는 경건한 순간들, 종교적 행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목적도 복음 전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목적인 것이다.

렘브란트, ‘십자가에서 내림’


The Descent from the Cross, 1633, oil on wood, Pinakothek at Munich

예수님의 시체를 내리는 장면을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 십자가는 T 형 십자가로 그려져 있다.
빛이 쏘는 곳은 예수님의 전신. 이 그림이 특이한 것이 있다면… 예수님의 하체가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그림을 보면 하체에 하나 걸치고 있는데. 그것은 화가가 어쩔 수 없이 그린 것일 뿐. 본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으셨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뽑아 나눠가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군중들 앞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으시고 십자기에 오르셨다. 최고의 치욕이었다.

그분은 침을 맞았다. 어쩌면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수모가 더 견디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우리 나라 여인들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끊었던 것을 보면 못숨보다도 정절, 혹은 자존심, 자기 정체성은 인간에게 더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잃는 것은 육체적으로 고통당하는 것보다 더 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수욕도 참아내셨다. 히브리서에 보면 그 분은 그래서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신다. 머리가 아니라 동일한 감정으로.

십자가에 핏자국이 너무나 선명하다. 왼손, 오른손, 그리고 기둥에, 예수님께서는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

이 그림에 나오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또다른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용균형의 글로 알게된 것이다. 형의 글을 여기 실어본다.

‘렘브란트의 그림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을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 팔을 붙잡고 있는 파란 옷의 사나이였습니다.

그림이 작아서 표정이 잘 안드러나지만 그래도 이 사람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좋겠습니다.
책에 이 사람에 대해 쓰여 있는 표현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몸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파란옷의 이 사람은
 뉘우치는 그리고 고통으로 동요된 모습으로 슬퍼하고 있다.’
그 얼굴을 다시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책에 실린 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수님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이 파란옷의 사나이의 표정을 좀더 잘 볼 수 있습니다.
(파란옷의 사내는 그림의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더 슬픈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 느끼는 그 마음이 이 사람 얼굴과 동작에서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얼굴과 이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봅시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길래…
이 사람은 렘브란트의 또다른 그림에 등장합니다.
십자가를 세우는 것을 그린 그림에서 못박힌 예수님의 발 옆에서 울고 있는 군인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요한도, 베드로도, 그 밖의 사도도 아니고, 실제 군인도 아닙니다.

바로 화가 자신입니다. 십자가 옆에서 울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찬송가가 생각났습니다.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주가 그 십자가에 달릴 때…”

주님의 고난을 함께 하고자 했던 렘브란트…
오죽 했으면 이전에 어느 화가도 시도하지 않았던 그림…자신을 그 현장에 그려넣었을까요.
그는 정말로 믿음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감정에 치우칠 수도 있겠죠.
허나 그처럼 십자가를 바라보며 회개하고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고 싶군요.
날마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예수님 왼편에 저 팔을 끌어안고 있는 사나이가.. 바로 램브란트 자신이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 그는 비통했을까?
바울이 그랬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하는 이유는 그의 생명(부활)에 참예하기 위함이라고. 우리가 그의 죽음에 동참하면 우리 육신은 죽은바 되고, 우리 영은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그러나 목격하는 것이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다는 것은 자신의 육신과 행위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율법에 의한 죽음이었다. 우리도 그분과 똑같이 십자가 위에서 죽는다. 그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 육신이 죽는 것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우리는 죽는다. 그리고 예수님과 똑같이 우리는 부활한다. 그것은 영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거듭남의 비밀이 아닐까? 우리가 부활하면 율법은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니고 우리는 더 이상 그에게 구속될 필요가 없다.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감격이 넘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십자가 앞에서서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도 못박히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예수님의 말씀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이건 십자가를 등에 지고 따라가는 것이지 못박히는 것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된다. 율법에 대해 죽으라는 의미이다. 율법에 대해 죽으면 우리의 육신은 죄로 말미암아 죽고,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산다. 이것이 놀라운 신비이다. 영원한 자유함을 누리는 비결이다.

한스 홀바인,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한스 홀바인 –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글 : 이주헌 미술 평론가

한때 바젤에서 활동했던 홀바인의 대표작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 홀바인은 썩어들어가고 있는 앙상하고 싸늘한 주검을 통해 16세기 당시 부패한 카톨릭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닫힌 공간. 세상과 절연된 곳. 그 곳에 썩어져가는 육신이 외롭게 누워 있다. 마른 명태처럼, 꺾인 나무가지처럼 그렇게 버려진 육체. 시신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는 인간 형상이라는 점에서 가장 쓸쓸한 이미지다.

돌을 깎아 만든 인간 형상 앞에서는 경배도 드리는데, 청동으로 주물을 떠 만든 인간 형상 앞에서는 아름답다고 연신 탄성을 울리는데, 주검 앞에서는 그 누구도 그런 따뜻한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얼음 같은 외면과 절벽 같은 이별만이 있을 뿐이다.

한 때 스위스 바젤에서 활동했던 화가 홀바인(1497~1543)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1521년)은 그 단절의 깊은 골을 죽은 예수를 통해 조망해 보는 작품이다.

파랗게 변색된 얼굴과 손발, 그리고 극심한 고통으로 뒤틀린 몸뚱아리. 과연 이렇게 비틀리고 짓이겨진, 썩어져가는 육체가 부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눈 앞의 이 냉엄한 현실을 너무나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홀바인이 진정으로 그리고자 한 것은 지금 이 그림 안에 없다. 홀바인은 무엇보다 예수의 영혼을 그리고 싶었다.

주어진 소명과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세상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깊이 자각했던 한 영혼. 그것들을 위해 그 어떤 고통도,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던 한 영혼. 그렇게 순수한 영혼이었기에 오히려 그의 육신은 이리도 망가지고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홀바인은 그 망가진 육신을 통해 절묘한 반어법적 표현으로 예수의 영혼을 생생히 드러내놓고 있는 것이다.

홀바인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유럽은 바야흐로 종교개혁의 열기에 휩싸여들었다.

역사가들이 당시 교황들에게 ‘패륜아’니 ‘탕아’니 하는 수식어를 붙인 것을 보면 당시 가톨릭 교회가 상당한 정신적 위기에 봉착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루터와 맞섰던 교황 레오 10세에 대해 한 카톨릭 역사가는 “사도 시대에 살았더라면 교회당의 문지기로도 적합하지 않았을 인물”이라고 평했다.

이렇듯 세속화되고 권력과 돈에만 혈안이 돼 있던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에 대해 프로테스탄트들 뿐 아니라 에라스무스같은 온건한 인문주의자들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에라스무스는 교황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도록 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 그들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홀바인이 이렇게 남루하고 비참한 그리스도를 그린 데는 바로 화려한 보물과 예술, 기름진 음식에 취해 있는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의 의도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또한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에라스무스의 제자였던 것이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난 홀바인은 스위스 바젤로 이주해오면서 미코니우스라는 한 인문주의자로부터 형과 함께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을 배웠다.

작가로서의 명성이 쌓이면서는 당시 바젤에 와서 살던 에라스무스와 직접 교분을 쌓는 한편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의 예술에서 늘 꼿꼿한 인문주의자의 격조가 느껴지는 이유이다.

홀바인의 ‘무덤 속 그리스도의 주검’은 그러나 에라스무스나 홀바인이 기대한 세상을 그 당대에는 만나보지 못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갈등은 끝내 유혈충돌로 이어졌고 양측의 불관용은 16세기 중반 이후 한 세기 동안 피비린내나는 폭력과 종교전쟁을 야기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온건한 인문주의자는 양자 모두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왕이나 제후의 절대권력 아래 있지 않고 독립적이었던 스위스의 도시들에서는 특히 급진주의가 세를 얻었다.

바젤도 폭력적 상황을 겪었고 이를 피해 프라이부르크로 피신한 에라스무스는 당시 홀바인이 그린 그의 초상화에도 나타나듯 매우 지쳐 있었다.

예수는 이 시기의 유럽을 위해 아마도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지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