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심리학적 이론들을 하나하나 접하면서, 또 곱씹어보다가
갑자기 내 자신이 심리학적 규정들 속에 아주 극도로 심하게 옭아매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스스로 자신들이 규정해서 자신을 옭아매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옭아매져 있다는 것을 몰랐다가 단순히 발견한 것일까
아니면 이도저도 모두 허깨비같은 것일까
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인간이 만든 규정들 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인가 라는 생각으로
나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나는 오늘 오전 외출을 하기 위해 다림질을 했다
나는 다림질을 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너무나 한심해보였다 내가 왜 이짓을 하지?
나는 왜 다림질을 하도록 규정되어진 것일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다림질을 하지 않고 다닌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편할텐데
나는 왜 사회적인 잣대에 순응하며 사는 것일까 나는 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일까
나는 혼자 있을 때도 왜 숫가락으로 밥을 먹을까 왜 설겆이는 세제로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샴푸를 하고 스킨을 바르고 왜 조금만 길어져도 머리를 깎을까

떠나고 싶다 자유로운 곳으로 훌쩍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나는 철학적인 이유에서 자살충동을 느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철학적인 이유로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나님 없는 세상이 무의미를 유의미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나는 신앙적인 사고를 잊고 가끔 혹은 자주 현실주의적인 사고를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지럼증을 느낀다 오늘은 특히 심하다

요새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
대부분 혼자 주어진 일만 하면서
가끔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책방에 간다 그래서 대여섯시간은 서서 책을 읽고 다음날은 늘어진다
사람들을 만나도 할말이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화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왜 내가 할말을 고민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나쁘다
누군가를 만나서 아무말 없이 그냥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편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무슨 말을 하도록 강요받는 느낌이 싫다

내 생각이 내 생각이 아닐 수 있다는 복잡한 생각을 한다
어떤 결론으로도 귀결되지 못하는 혼란으로 가득한 생각이다
내가 이런 글을 적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는 누군과와 소통을 아직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왜 누군가 이 글을 보기 바랄까
심리학자들은 욕구이론이나 기타 행위론으로 이러한 행동의 심리적 기저를 분석하였을 것이다
인간의 심리를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심리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석이야 말로 과학적 방법론으로서 예측이나 조작을 위한 전단계이다
심리는 분석되고, 자연스럽게 예측되고, 그 이후에는 조작된다.
내 심리는 조작되어져있고 내 사상은 누군가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있다
내 입맛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졌고, 내 사고는 한국어 구조에 맞춰졌다
내 자아는 어디로갔지 나는 나일까
나는 왜 2006년 서울 여기에 있는 걸까

무언가 그토록 바라던 것을 얻었을 때 그 감흥이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것을 무의미로 규정짓고 현실에 대한 만족만이 삶의 자세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연히 욕심없는 삶의 자세를 택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또 묘한 저항심을 느낀다
나는 왜 무한히 채워지지 않는 독에 물을 붓고자 하는 욕망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가

현대인과 종교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종교는 다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종교의 의미가 어떤 것이냐라고 하면 그 답은 달라지겠지만, 그것이 세계관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정의한다면
누구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즉,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어떤 사람에게 물었을 때, 빅뱅으로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에게는 과학이 종교라 말할 수 있다.
존재의 이유에 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없는 것일까? 일견 그렇게 보일수도 있지만
그러한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세상은 신이 창조했다’라는 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소한 그런 사람들은 ‘세상은 신이 창조했는지 알 수 없다’ 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듯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수용하지 못하는 불가지론자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의 세계관이야말로 가장 무의미하고 때론 파괴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
윤리적 현상도 설명하지 못하고, 과학적, 사회적 현상도 설명하지 못하고, 종교도 설명하지 못한다.

또 한편으로, 개인적인 생각에서 현대인은 돈과 관련된 종교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아첨하고 돈을 위해 손을 벌리고 돈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한다. 돈은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잣대이다. 돈이 윤리가 되고, 경제적 효율성이 가치판단의 최종잣대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놀랍도록 돈과 연관되어 있다. 돈은 인간의 사고와 가치를 최종적으로 지배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버는 것과 관련하여 성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현대인들을 나는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진정 인생의 가치를 무엇과 연관지어 살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전도서 3:11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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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현실적이면서
아주 감각적이면서
통렬하면서
핵심적이면서
매우 중요하면서
오묘하면서
깊은 구절

인공환경

24시간 세계에서 몇번째 손가락으로 꼽는 큰 도시안에서 생활하는 나는
24시간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환경과 부대끼고 있다.

오늘아침에도 닭울음소리가 아닌, 핸드폰의
64poly 음이 나를 깨웠다.

아침을 먹기 위해 나는 계란은 후라이팬에 얺고 가스불을 켰다. 냉장고에서는
인공바람이 흘러나온다.
세면하기 위해 움켜쥔 수도꼭지에서는 인위적인 방향으로 물의 흐름이 조절된다.
나는 인공의 냄새를 풍기는 스킨을 얼굴에 바른다.
거대했던 동물의 모습은 잃어버린 인공의 구두와 인공의 대리석이 부딪히며 내는 인공의 소리를 들으며
인공의 평평한 바닥을 걸어 나는 거대한 운송수단에 오른다.
에스컬레이터는 인간의 크기에 맞게 디자인된다.

인간은 이 모든 도시 구조물을 만들었다
어떤 것도 자연그대로는 없다.
심지어는, 나무의 배치와 크기, 풀이 자란 방향
강물의 흐름, 하늘의 색.
내가 초등학교 때는 압구정동에 잠자리가 날고 올챙이가 살았다.
봄에는 신촌에 제비가 낮게 날았다.

그런데 2006년 여름,
나는 아직 생존력 강한 모기 외에는 잠자리도 매미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만 내 귓속에서는 아직
군대에서의 K-2 80발 환청만이 매미소리처럼 들린다.)

내 주변에는 인공물 뿐이다. 난 하루의 일부를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지낸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외에는 모두 인공물이다.
난 잠자리나는 모습이 그립고, 들꽃이 그립고, 하늘의 별자리, 은하수, 매미소리가 그립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더럽다고 미워하지만
난 도시에서 누구하나 돌봐주지 않아도 사람을 벗하여 살아가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마움을 느낀다. 난 비둘기를 사랑한다.
비둘기들이 몇년 더 우리의 곁에서 이 도시에 남아줄까.

서울의 24시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사람 외에는 어떤 자연물도 없다. 모든 자연은 사람이 손대 놓았다.
그들의 방식과 가치관, 그들의 세계관대로 그들이 살 환경과 자연을 만들었다.
그들은 도시의 신이 되었다. 인간만이 인간만이 존재하는 세상, 거대한 도시
난 오늘따라 이 감옥같은 인공환경이 싫다.
인간은 모든 신의 흔적을 인간의 흔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제 신의 숨결을 느낄 공간은 이 도시에 없다.

우리집에도 거미가 살고, 제비가 둥지트고, 밖에서 새소리 울었으면 좋겠다.
구더기가 나와도 좋다. 이 사람의 스킨 냄새만이 가득한 세상이 갑갑하다.
지평선을 보면서 갑갑한 도시 벗고 싶다.
별의 노래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