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청담동 국민은행이었다
그날은 수은주도 한없이 떨던 12월 가장 추운날
다친 발가락은 절뚝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세무서에 갔다가 들른 은행 통장에 입금을 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있었다 내 등을 툭쳤다
조.. 되세요?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하고는
네?
그 때
한 은행을 지키는 늙은 아저씨의 웃는 얼굴이 스크린에 가득 비춰졌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가슴이 녹았다. 아직 날카로운 칼소리 바람소리 자동차 엔진소리 가득한 왕복 8차선 청담동 도로
쌓인눈 얼어붙어 녹을날 기다리던 차가운 갤러리아 백화점 앞
은행밖으로 절뚝거리는 발을 끌고 나왔다.
가슴에는 따뜻한 봄바람이 불었다.
좋은 하루였다.
내 어머니의 오피스텔
바람많이 불던 날 어머니 수선실 가게에 들렀다
내일이 휴가 복귀인데 자주 얼굴도 내밀지 못한것 같아서..
어머니 혼자 일하시는 조그만 수선실은 깨끗하고 따듯했다
어느덧 2년정도 되어가는 가게는 혼자서 일하기에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적당히 재밌게 돌아가고 있었다.
요즘 가게에서 생활하시는 어머니는 온수기를 달아서 씻기도 하시고 밥도 지어서 드신다.
그러면서 오피스텔이 따로 없다고 ^^ 하신다
라디오를 벗삼아 사시다보니 세상돌아가는 것도 너무 잘 아시고
당신이 직접 운영하시는 가게시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신 것 같다
오늘은 홈페이지 보고 찾아온 손님이 옆가게에 간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그런 잡담도 하고 나는 괜히 바깥에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못찾을리가 없는데 하고 갸우뚱 한다
다른 옷을 수선하면서 잘라낸 남는 옷감들을 가지고 손수 만든 옷을 보여주면서 너무 잘만들지 않았냐 하고
흐뭇해하시는데 옷을 입으신 마음이 귀부인이 따로없다.
수선실을 운영하다보니 사람들이 고쳐달라고 맡겨놓고 찾아가지 않은 옷이 가끔 있는데
그런 옷이 생기면 식구들이 입거나 못입는 건 잘 맞을만한 사람들을 주신다고 하신다
물론 팔수도 있지만 교회 식구들 불러서 입어보라고 하고 나눠주곤 하신다
지난번에도 이런 옷 주면 입을까 걱정하면서도
교회 한 여자아이 생각이 나서 이런 옷이 있는데 와서 입어보고 맞으면 가져가라고 해서
가게에 온 아이가 있었다는데 너무 잘 맞아 입이 찢어져라 고마워하고 갔다고 한다.
명품옷들을 수선하는 곳이다 보니 비싼 옷들이 들어오는데 그런것도 가끔은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있다
아니면 고쳐볼까 하고 가져온 옷인데, 고치는 값이 너무 많이 나와 그냥 입으세요 하고 주고 가는 옷도 있다.
어머니가 보여주신 한 밍크코트는 옆에 중고명품점 가게하는 사람이 와서 보고는 한 50만원에 팔아주겠다고
했다는데 어머니는 그저 가지고 계셨다 누구 줄거라면서.
또 그동안 어머니는 수선가게 하시면서 모은 돈으로 교회에 건축헌금도 하셨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신 큰 금액을 하셨는데, 그 얘길 하시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작정하고 기도하고 그러던데 난 그렇게 못하겠더라
그냥 작정은 안했어도 난 할수 있는 만큼 했다. 이 돈은 잘사는 사람들 몇억하고 마찬가지인 돈이야
라고 하셨다
난 그것이 신앙적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오늘 어머니는 지난 여름 자기가 양로원에 옷을 스무벌 만들어서 가져다 주셨다고 하셨는데
여름에 일감이 별로 없을 때이기도 하고 마침 ‘권’목사님이 오셔서 자신이 자주 찾아가는 요양소가 있는데
거기 할머니들이 다 늘어난 옷들을 입고 계셔서 농담처럼 ‘너무 야하신거 아니에요?’ 라고 하시고는
그 모습에 마음이 안좋아 직접 옷감을 구했는데 옷을 만들 고민을 하다가
우리 어머니가 생각나 가게로 가지고 찾아오셨다길래
그 말을 듣고 직접 그 옷감으로 옷을 스무벌이나 만들어 양로원에 보냈다고
거기서 나중에 고맙다고 전화도 왔더란 이야기를 하셨다.
또 가게 한쪽에는 잘라낸 청바지 옷감들이 수십개 이상 모여있었는데
이건 교회 한 집사님이 취미로 퀼트를 하신다고 하셔서 줄라고 모아놓으신 거라고 하셨다.
가끔 일이 없으실 때는 예전 회사 친구들 불어서 같이 일하시기도 하고
가족들이 도와주기도 하는데
그동안 힘들게 오랫동안 직장생활하시던게 생각나
지금은 비록 집안 사정이 많이 안좋기는 해도
그 때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하게 자기 일을 하시는지 감사하고 존경스러웠다
처음부터 굳이 압구정동에 수선실을 하시겠다고 몇달간을 가게자리를 알아보시더니
오픈하고 처음에 옆가게와 싸우기도 하고 발품 팔아서 옷가게들마다 홍보도 하고 아파트에 스티커도 붙이고
그랬었는데 잘 되지 않아 걱정도 하고 하다가
홈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한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는 어느덧 입소문 나는 가게가 되었다.
가게에 가면 어찌나 기술도 좋고 친절하게 하시는지.. 내가 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가져다준 패션잡지들, 옷 라벨들도 모이고,
어머니 친구분들이 가져다준 실타래들, 계속 늘어나 다섯대나 된 미싱들..
따뜻한 난로, 온수기, 밥통까지 들어차..
그렇게 아기자기하게 돌아가는 수선실을 보면서
한쪽에서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던 난로불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지금 형편좀 어려워도
좋은것만 생각하고 살자고
이정도면 행복한거 아니냐고.
내년 벚꽃 필때쯤에는
우리 가정도 추운 겨울이 끝나고 어서 봄이 왔으면..
거리에서
지하철 창구에 다다른 나..
이 아저씨는 오늘 하루종일 전철 표를 팔았어..
길거리에서 지금도 정신없이 조그만 김밥을 마는 이 분은
오늘 하루종일 김밥을 말았어..
이 딸은 부모님 도와드린다고 여기 와서 김밥을 같이 말고 자르고 해서 담아주고 있어..
리어카에 수제노트라고 써있는 노트들을 전시해 놓고 한쪽에서 노트를 만들고 있는 이 아저씨는 하루종일 길거리에서 책을 팔았네..
피곤하겠다..
집 앞에서 만난 이 할머니는 어제 나한테 길에서 요구르트를 사달라고 했던 분이네
이 할머니 어렸을 적엔 어떻게 사셨을까?
어제 어머니 가게에 한 사람이 정장을 찾아가려고 왔다.. 700만원 되는 거라고 잘됬는지 꼼꼼하게 찾아보면서.. 돈많고 예의도 꽤나 바르게 보이던데 사람이 풍족해서 여유있어보이는 걸까.. 저런사람들끼리 모이는 곳에 살아가는 건 대단히 다를거라고 처음엔 생각했지만.. 나자신도 다른 어려운 나라의 빈곤한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그정도의 차이만 존재하는 거야.
저 버스 운전하시는 분은 오늘 하루종일 버스만 운전했네
한 두어시간 운전하시면 얼마나 쉬실까.. 피곤하시겠다
집에가면 어떤 아이들이 있을까..
저 음식점에는 또 하루종일 음식만 만들고 설거지만 하시는 주인이 있다.. 하루하루 매일 똑같이 하면서 장사가 잘되고 못되고 민감하게 그렇게 사는 거겠지..
매일 밖에 나가면 이쁘고 깔끔하고 사람 붐비는 새건물에 지어진 음식점을 찾고싶어하지만 가끔 구석진데 허름하고 장사안되고 손님 없는 집에서 식사하는 것도 좋은 일일거야..
그런 거리에는 오늘은 어디에 돈을 쓸까 하고 돌아다니는 또 한부류의 젊은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같은 일을 몇년동안 마음졸이며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돈버는 기계같은 어른들의 가게들과 그 가게들 앞을 팔짱을 끼고 연인과 친구들과 다정하게 걸어다니며 잘 노는 것이 멋있고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젊은 부류의 사람들이 거리에 공존하고 있었어.. 사회는 이렇게 돈이 도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약속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럴듯한 까페에서 빙수를 시켜먹고는 저 젊은 부류의 청년들의 한사람이 되어 있었어..
집에 돌아오면서
잘노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생각에 나는 빠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세상에서 돈이 지배하는 모습을 찾기는 이렇게 쉬운데, 하나님이 지배하는 모습은 참 찾기 어렵구나..
누구나 거리를 혼자 걷다보면 이런 생각한번씩 하겠지?
누구나 힘들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힘들다
걱정한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걱정이 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어렵다
그러나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힘들지 않다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이길 수 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행복하다
——–
99년 ivf 여름수련회 때 같은 조에서 만났던 K란 아이가 있었는데
9년전에 부모님 중 한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고
남은 한분도 암으로 투병중이시라는 거야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누가 써놓은 거였어
엊그제 그 이야기를 봤거든
예전 수련회 때 생각도 나고그 아이 홈피에 한번 찾아들어가봤어
얼마나 힘들까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전혀 아닌거 같더라
K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2주 남았다
2주후면 집에간다..
마지막 작은음악회.. 한 쿠르드 우정의 밤.. 큰 행사들을 끝내는날
참 아쉬움도 많았지만 이제 정말 집에가는거 같더라
이사야서 공부를 마치고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을 내내 공부했는데
이제 요한계시록을 보는 눈이 좀 생긴 것 같아.
다니엘 공부는 새로운 것을 많이 얻지는 못했어도
세친구의 믿음과 그 풀무불 안에 있던 네번째 사람을 볼 때
내 가슴이 화들짝 놀랐어.. 그날따라 그 모습이 너무 쇼킹하게 다가왔거든
아직 새하늘새땅 개념은 내세적인 건지 현세적인 건지 개념이 안서고 부활과 심판의 구체적인 모습과 논리적 순서가 그려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개념만큼은 다 정리가 되었어.
예수그리스도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와서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멸하는 순간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라..
계시록이 심판과 재앙의 책의 의미지가 강했는데 완전히 위로와 소망의 책이 되었어.. 심판과 재앙은 인쳐진 자들의 몫은 아니니까.. 환난은 후의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로마서의 말씀을 요한은 그림으로 그려주는거야..
마지막 행사를 끝내고 파병기간이 마무리 되려고 하니깐..
6개월 기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느껴지더라..
시간이 참 빠르고 시편에 나오는 모세의 기도처럼 내 날수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에대해서 또 묵상하게 되었어.. 그 말씀을 읽는 순간 내 생애가 어찌나 짧게 느껴지던지..
또 바울이 이 자신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임종직전의 고백처럼 나도 죽기전에 내가 걸어오지 않고 달려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
달음박질 하는 자는 많아도 상얻는 자가 오직 하나인 것처럼 그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달음박질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바울과 조나단 에드워즈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너무나 위대해 보여
이제 집에 간다..
에벤에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