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까?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가 6:6-8)

아!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내가 QT를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가 아니구나
성경통독을 일 년에 몇 번 했느냐가 아니구나
기도를 하루에 몇분 하는가가 아니구나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싸매주고

나에게 괴롭게 행한 사람을 용서하여 주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후대하며
외로운 자들에게 찾아가 풍어주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조금 불만이더라도 그 사람을 믿어주는 겸손과 섬김,

비록 작지만
그 작은 것을 위해 큰 것을 버리는 것.
목숨까지도 상대하지 못하는 친구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구나.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꼬박꼬박 QT를 하라 하시지 않았구나.
하나님께서 성경통독을 일년에 몇번 해야한다고 하시지 않으셨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을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말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속으로 묵상하면서

아! 그것이 아니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성경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
다. 오히려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보여진 독생자를 아끼지 않는 하나님의 사
랑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일 4: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앞에 드렸을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네가 네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줄 알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알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항상 이야기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뜨거운 사랑은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돌아봅니다.
아들의 죽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날 안아준 친구

레크레이션 지도라는 수업을 듣는다.
..같이…

그곳에서 만난 한 친구가 있다.

조..라는..신과대 99학번 아이다.
같은 조가 되어서 자주 부대끼고 잘 아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다지 맘에 들이를 않았다. 99학번 이면서
선배들한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말을 툭툭하는가 하면
담배도 피고.. 그냥 신학과라는게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런 아이였다.

한번 길을 가다가 나를 만났는데

야.. 대출 좀 해줘라.. 라고 대뜸 그래서 아주 황당한 일이 있었다.

레크레이션 지도의 수업 과정 중에 캠프를 1박으로 가는 시간이 있다
엊그제 4일-5일에 다녀왔다.

그 아이와 또 같은 조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아이를 아주 따뜻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저녁 시간.. 캠프화이어를 하는 시간에 ‘참회의 시간’이라는 게 있었다.
스티로폼을 하나 가운데 놓고 조가 둘어앉아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준 일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조 인호라는 그 아이,
아주 심각하게 생각하며 하나씩 하나씩 꽂기 시작하는데
사람은 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떤 사람을 용납해 주고 싶어하고 사랑하고 싶어한다면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런 것을 느꼈다. 아주, 순수하고 선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날 저녁 ‘축복의 시간’이라는 시간에 서로 떡을 떼어 먹여주는 시간
이었는데 그 아이에게 가서 떡을 주며
내가 그 때 마음이 어땠다는 이야기를 했고
기도를 해 주었다.

저녁에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그 아이와 3명이서 있게 되었다.
그 아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 1 때 신학에 마음을 두었다고 하고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본 이야기 등등을 들었다.
재수를 했으니 .. 나와 같은 나이인 셈이다.

다음날 캠프를 끝내며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할 때에 그 이야기를 했다.
이 캠프를 와서 내가 사랑하게 된 한 친구가 있다고

처음에 아주 좋지 않게 생각했던 이야기,
다시 그의 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이야기 했다.

나는 책을 통해 배웠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는지,
그래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나도 사람들 앞에서 어떤 한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를 함으로 인해서 그 사람과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나도 한번 써먹고 싶었다. 그래도 불안했다.
왜냐면 나는 그 아이한테서 선배인양 행세하며
그날 저녁 기도해 줄때 후배다루듯이 했던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도 한살 어린 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레크세이션 수업에 들어갔는데
교실 밖에서 날 보자
그 친구가 반갑게 끌어안아 주었다.

별 일 아닌듯 지나쳤지만 마음은 참 기뻤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와의 우정을 드러내는 일은 참 귀하다.

배워만 왔던 그 일들이 생각대로 이루어 져 준 것도 참 감사하다.
많은 걸 배우고 얻었다.

그냥…

별 일 아니었지만…

솔로몬의 영광과 한송이 백합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29)

하나님께 모두 내어 맡긴 들의 핀 한 송이의 백합화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온갖 부귀 영화를 누리던 솔로몬 조차도
그 꽃만큼 아름답게 옷을 입지 못하였으니.

하나님께 모두 내어 맡긴 들의 핀 한송이의 백합화가 말이다.

스피노자와 죽음

스피노자의 “윤리학” IV, 67. 정의 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인간은 죽음에 대해서는 최소한으로만 생각한다. 그의 지혜로움은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한 숙고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에 대해서 되도록 생각하지 않
는 것만이 현명한 일일수 밖에 없겠지만은

우리는 죽음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복되고 영광스럽고 즐거운지요.

죽음 앞에서는 어떤 철학자도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