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요구가 있습니다.
판매자 : 나는 물건을 팔고 싶은데 한군데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팔고 싶다
구매자 : 나는 물건을 사고 싶은데 한 곳에서 여러가지 물건을 사고 싶다
이렇게 해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생깁니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춥거나 하면 팔기도 사기도 힘드니까 건물을 짓고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거래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건물을 관리하는 업종이 생겨납니다.
세월이 흐르니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이 엄청나게 많이 생깁니다. 문구류도 있고, 식품도 있고, 가전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신발도 있고 수많은 물건들을 한 곳에서 다 팔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시장이 생깁니다. 음식만 파는 곳, 신발만 파는 곳, 가전만 파는 곳 등등이 생겨납니다. 그러다보니 고가제품만 파는 곳, 저가제품만 파는 곳, 재고만 파는 곳 이런 식으로도 생깁니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이 서로 욕구를 맞춰주면 더 효율적이고 편하게 사고 팔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온갖제품을 다 팔기 위해서 생겨난 백화점은 도시에 사람이 제일 많이 다니는 곳에 생깁니다. 그런데 한 건물에 수많은 제품을 다 팔 수 없으니 선별해서 팔아야 하는데 비싸고 한정된 건물 내에서 팔려고 하다보니 마진이 많이 남는 제품을 파는 곳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백화점이 자연스럽게 고마진 제품을 파는 곳이 됩니다.
같은 제품을 팔고도 마진을 많이 남겨야 하다보니 백화점에는 물건을 만드는 원가보다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갖는무형의 이미지 즉 브랜드를 중요시 하는 제품들이 차게 됩니다. 브랜드의 가치는 그 브랜드가 고가이면서 드문 것일수록 강해집니다. 또한 따라서 백화점은 건물을 휘황찬란하게 꾸미면서 건물과 장소 자체를 브랜드화합니다. 브랜드가 필요한 곳은 사람들을 만날 때 저절로 과시할 수 있는 옷, 패션, 화장품 같은 것들이 주류가 됩니다. 아파트, 자동차도 필요하지만, 크기가 문제가 됩니다.
백화점이 파는 것은 브랜드이고 그 브랜드 가격을 소비자와 제조업체로부터 나눠서 받습니다. 백화점 밖에서 팔면 9만원에 사고 팔 제품을 백화점 안에서는 7만원에 받아서 10만원에 팝니다. 백화점의 수수료 3만원을 구성하는 것은 판매와 구매의 편의성 제공의 대가, 따뜻한 건물 제공의 대가, 주차장과 엘레베이터 사용료, 쇼핑을 한다는 즐거움 제공의 대가, 광고 대행의 대가, 그리고 브랜드 제공의 대가입니다.
몇개 도시에 따로따로 있던 백화점이 한 업체로 연결이 되면 관리하기가 용이해집니다. 백화점들이 모여서 기업을 이룹니다. 그러면, 여러 차원에서 규모경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교섭력이 강해집니다. 각각 따로따로있다면 제조업체가 한곳에 매장 못열면 다른 데서 열면 됩니다. 하지만 모든 백화점이 한 기업이라면 무조건 그 속에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수수료를 더 주고 매장을 오픈해야 합니다. 백화점은 힘이 세집니다. 그래서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하고 원가이하에 납품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제조업체는 적자를 내도 입점을 합니다. 백화점 입점 자체가 브랜드가 되어 백화점 밖에서 파는 물건 가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돈내고 TV에 광고하는 거랑 이유는 비슷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백화점에서 팔아야 백화점 바깥에서 브랜드 가치로 좀 더 비싸게 팔아서 만회할 수 있습니다. 둘을 비교해서 손해보다 이익이 크면 제조업체는 원가 이하에도 백화점에 입점합니다. 백화점은 건물 바깥에 입점업체의 브랜드를 걸어줍니다. 백화점은 거대한 광고판이 됩니다. 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물건을 광고하는 곳이 되고 제조업체들로부터 광고비를 받는 광고회사가 됩니다.
한정된 공간에 한정된 업체가 경쟁적으로 입점해야 합니다. 경쟁강도가 세질 수록 백화점은 돈을 법니다. 백화점은 문제가 없는 브랜드를 선별해서 입점시켜야 합니다. 또 건물을 엄청나게 꾸며대야 합니다. 백화점 자체의 이미지 관리를 잘 해야 그 이미지를 팔 수 있습니다. 고객의 시선 동선 트렌드 온갖 것을 분석해서 완벽하게 배치하고 사원을 교육하고 A/S관리 매장 배치를 잘해야 브랜드와 경쟁력이 생깁니다. 입점브랜드도 관리를 잘해야합니다.
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0~45%의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가끔 무조건 할인해서 팔라고 요구하고 안하면 내보내겠다고 합니다. 할인해서 많이 팔면 매출액과 비례해서 더 많은 수수료를 챙깁니다. 백화점끼리 경쟁을 하다보면 우리백화점에 들어오려면 다른 백화점에 들어가지 마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백화점 수가 많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데 다 들어가느니 그곳에 들어가는게 더 크다면… 그러면 개개 백화점은 영업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면 개별 백화점은 기업에 피인수됩니다.
루이비통이 들어온다고 하면 공짜로 와달라고 합니다. 학원사업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전교1등이 온다고 하면 수업료 안내고 오라고 합니다. (대학도 그렇죠) 장학금을 줘서라도 오라고 합니다. 그래야 다른 학생이 돈내고 배우러 오니까요. 루이비통의 브랜드는 백화점의 브랜드가 되고 그 브랜드는 다른 입점 업체의 브랜드에 영향을 미칩니다. 루이비통은 그 브랜드를 백화점에 파는 것이고 백화점은 그걸 사서 다른 브랜드 약한 업체에게 파는 브랜드 유통을 합니다. 기술력이 강한 업체가 기술력 모자란 업체에게 로열티를 받고 기술을 주듯이 브랜드를 서로 사고팔 수 있는 곳이 백화점입니다.
수수료를 계속 올리면 어떻게 될까요? 입점업체는 수수료로 인한 비용이 브랜드 가치 상승분과 비교해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따져볼 것입니다. 수수료가 너무 낮으면 더 높은 수수료를 주고 들어오려는 업체가 생길 겁니다. 따라서, 수수료는 시장원리에 따라 정해질 겁니다. 그 시장원리는 백화점이 점점 소수 업체들로 과점화될수록 더 백화점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겁니다. 또하나 브랜드에 목숨거는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업체들은 브랜드에 따라 소비자에게 가격을 전가하기가 유리해지며, 그만큼 수수료를 더 지불할 동인이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브랜드에 목숨거는 소비자의 증대는 백화점 수수료의 증가로 이어질 겁니다. 그건,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그렇게 될 겁니다.
결국 최근의 백화점들의 사업의 특성을 단기적으로 본다면 (공정위의 과징금부과가 없다는 전제 하에) 소득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소비자가 브랜드에 거는 가치가 상승하며 백화점 수수료도 변한다 – 이런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수료는 위와 같은 원리대로라면 오를 수도 있고 소비패턴 변화에 따라 내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백화점이 수수료율이 40%라고 해도 물건이 안팔리면 꽝입니다. 백화점에 오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백화점에서 물건이 팔려야 돈을 법니다.
한국의 대형백화점 업체 21세기 돈 잘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언제까지나 그럴 수 있을까요
독일의 카르슈타트-쿠벨레 그룹 1881년 설립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백화점 업체였으나 1990년대 몰락의 길을 갑니다. 2004년 엄청난 구조조정을 단행합니다. 오스트리아 의 100년 전통 헤르츠만스키도 1997년에 파산합니다. 이유는? 소비자패턴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문화된 매장이 막 생기면서, 유럽 소비자는 전문매장을 더 많이 찾았습니다.
애매한 가격대 물건을 이것저것 모아놓고 팔던 방식으로 소비 패턴을 못따라간 겁니다. 다행히 한국 백화점들은 인수합병 및 명품 집착, 과도한 출혈경쟁 자체 등으로 아직까지 제 갈길을 가고 있습니다.
길게 보면 소비트렌드는 계속 변합니다. 유행하는 노래가 바뀌듯이 소비자가 찾는 방식 구매하는 스타일은 시대가 변하고 경기가 변할 때 마다 바뀝니다. 소득수준에 따라, 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느린듯하지만 빠르게 바뀝니다. 명품명품하지만 10년 20년 전에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10년전 용산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100년 넘은 유럽의 백화점도 미국의 백화점도 일본의 백화점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경우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백화점 업종에 투자하려면, 현재 명품에 집착하는 구조상, 소비양극화 추세를 단기적으로 트래킹하고, 수수료율에 신경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수수료율은 계속 올려왔지만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트렌드를 봐야 합니다. 점점 입점업체의 원성이 커져가고 있고 정부도 호시탐탐 보고 있습니다. 세수가 부족한 정부는 과징금으로 부족한 세수를 메우려는 건지 여기저기 공정위가 쳐다보고 있습니다. 10년 20년 내다볼 수 있는 투자? 이걸 장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백화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변화하는 트렌드가 타 산업에 비해 더 느린 것은 확실합니다. 인터넷이나 엔터테인먼트 패션에 비해서 백화점 사업에 영향을 미칠만한 소비패턴의 변화 같은 것은 좀 더 여유있게 반영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