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기도제목들을 보면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영광에 촛점이 있었고, 인간을 위해서는 용서받는 것과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유독 먹을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부분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구절이 있다. ‘일용할 양식’. 이 말씀의 뜻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일용할’이라는 단어는 ‘오늘 하루치’ 라는 뜻이다.
그리고 일용할 양식의 대상은 ‘우리에게’ 이다.
개인적인 필요에 의한 기도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기도다.
부자되게 해달라고 예수님은 기도할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몇 일 전에도 아주 신앙이 좋다는 사람이 ‘내가 십일조를 얼마큼 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 일에 쓰이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기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경에서 기도를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 적이 있었던가.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후에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희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구하는 기도는 이런 것과 전혀 의미가 다르다고 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다. 이것은 굶주린 이웃을 위한 기도다.
그리고 이러한 기도를 하는 자는 자신의 것을 달라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것을 굶주린 자들에게 나누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이것은 자신에게 더 달라고 하는 기도가 결코 아니다.
둘째로, 이 기도는 하루치 양식을 위한 기도다. 마치 그날그날 하루 먹을 만큼의 만나가 하늘에서 내렸던 것처럼, 오늘 하루 먹을만큼의 음식을 주옵소서라고 말하는 매우 겸손한 기도다. 오늘하루 먹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오늘 먹을게 있으면 내일도 모레도 실컷 먹게, 더 맛난 것을 먹도록, 더 비싼 음식을 더 큰집을, 더 좋은 생활환경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전혀 이 기도의 의미와 다르다.
이 기도는 겨우 하루 먹을 음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 먹을 것이 있다면 왜 먹을 것을 위해 구하는가.
오히려 기도는 감사기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주여 일용할 음식으로 족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 기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나에게 하루치 음식이 주어지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이틀치 음식을 먹을 것이 있다면 하루치 음식이 없는 이웃과 나눌 것이다.
그러한 삶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와 삶이 아닐런지..
우리의 기도는 너무 나 자신에게만, 혹은 우리들의 욕심에만 치우쳐 있지는 않은 것인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인지!
갑자기 솔로몬의 기도가 생각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너한테 달라는 것 줄께 한번 구해봐라 라고 하시자
돈도 명예도 아닌 백성들을 판결할 지혜를 달라고 구했다.
그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무지하게 칭찬하고 매우 기뻐하셨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주시겠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것들보다 우선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구한다면 먹을 것, 입을 것은 알아서 다 챙겨주신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