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과 유월절

마 26:17-29
유월절은 대대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절기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다.
왜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것인지 대단 궁금했고,

지금 행하고 있는 성찬이 바로 그 대신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성찬이 왜 유월절 대신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눅 22:16)

유월절과 성찬을 연관시키면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많은 문제들이 매듭 풀리듯
풀어졌다.

첫째 문제는 왜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살과 피를 주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의 살과 피로 여기면서 그를 기념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그건 당신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친히 되셨음이고 유월절에 그 양을 먹듯이 우리가
상징적으로 그 분의 몸을 먹게 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처음 성찬을 행하신 날이
유월절이 아닌가.

둘째 문제는 그 뼈가 꺾이우지 아니하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단순히 메시야
를 예언한 부분에서 인용한 성구겠거니 했으나 관련 구절을 찾아 보지 않았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것은 바로 유월절 어린양의 뼈를 꺾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친히 유월절 양이 되시기 위하여는 그 뼈가 꺾이우면
안되는 것이었다. 흠이 없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째 문제는 고전 11:26의 해석문제였다. 이것은 유월절과 연관지어서 해석된 것
은 아니었으나 성찬장면을 읽고 주석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었다. 바로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때까지 전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때의 함께 하게 될 식사를 바라며 이 성찬을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마 26:29) 그런데 현대인의 성경은 이 구절을 그저 전도하라고 번?
?
해서 의아하다. 현대어 성경은 비슷하게 번역된 것 같다.

이것은 작년에 상당히 고민했었던 문제였다. 고전 11:26은 아무리 해도 해석이 안
되는 것이었다. 과연 성찬때마다 전도를 해야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엄청나게 고민했었다. 그러나 ‘덮어놓고 기다림’이 최선이라는 것은 역시 변함없는
사실이다. 모르는 문제는 재껴놓으면 언젠가 해석이 된다. 자주 있는 경우지만
이런 일이 생길때 마다 즐겁다.

또하나, 그렇다면 우리도 성찬을 급히 먹어야 하는가? 라는 아리송한 문제가 생겼
다. 그것은 출애굽기 12장에서 처음 유월절 규례를 규정할때 주신 명령인데 주석을
참고한 결과 허리에 띄 띠우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들고 급히 먹는 것은
유월절 처음 행해졌던 그 때에만 해당하는 명령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
굽에서의 탈출을 예비하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는 것도
처음에만 적용되는 규례였다.

아직까지 이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니..
아무도, 나에게 이것을 설명해 준 사람이 없었다.
다들 아는 사실을 나만 이제 깨달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교회를 15년 넘게 다녔
으면서도..

회전하는 그림자(약1:17)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개역)

1:17 온갖 훌륭한 은혜와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하늘의 빛들?
?만드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변함도 없으시고 우
리를 외면하심으로써 그늘 속에 버려 두시는 일도 없으십니다. (공동)

1:17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인데, 곧 빛들을 ?
痔맒?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는 변하는 것이나 움직이는 그림
자가 없습니다.              (표준)

1:17 온갖 좋은 것과 완전한 것은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
??변함이나 그림자 같은 것이 전혀 없이 영원히 밝은 빛으로 비춰 주십니다.
  (현대어)

99.1.18

1:17 Every good and perfect gift is from above, coming down from the Father of
the heavenly lights, who does not change like shifting shadows. (NIV)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여러 가지 번역에서 서로 다
게 접근하고 있다.

공동변역에서는 “우리를 그늘속에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단순히 “움직이는 그림자” 라고 하였다.
현대어성경에서는 “영원히 밝은 빛으로 비춰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으로 NIV의 번역이 가장 정확하다고 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와 같이 변개함이 없으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을 표현
한 것이 바로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공동번역은 “회전하는”의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으며 문맥상으로도 어울
리지 않는다. 현대어도 마찬가지이다.

도리어 크게 기뻐함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애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
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도리어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
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
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정말 너무너무나 멋있는 말인것 같습니다. 어제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흐뭇하기도 했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나에게 어떤 약함이 있어서 때로는 어떤 육체의 불치의 질병이 있어서 하나님께
기도로 간구하여도 주님께서 들어주시지 않는 기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No라고 대답하셨을 때는 나의 반응이 어땠는가 돌이켜 볼때에
체념과 단념.. 아쉬움.. 포기..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 그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군요. 안타깝습니다.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도리어 크게.. 크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참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No라는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
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약함도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가운데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말씀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그 말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주어지지 않았을때 바울처럼 그 No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도 도리어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
구나 싶었습니다. 참 대단합니다.
 
말씀 한단어 한단어가 보석같은 빛을 뿜어내며 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기도라는 것이 이처럼 놀라운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세번이나 기도했던
바울의 열심.. 어떤 주석가들은 3을 완전수로 보아서 숫자 그대로 3번이 아니라
수없이 기도했다는 뜻으로 보기도 하더군요. 참 놀랍습니다. 그처럼 열심히 기도
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았지만 도리어 하나님의 더 큰 뜻을 알았기에
 
크게 기뻐하였다는 사실말입니다.

독수리타법

일명 독수리 타법으로 알려진 타자방법.
오른손 왼손 검지손가락만을 이용하여 타자를 치는 방법이다.

여러 손가락을 키보드에 올려놓으면 자판이 안보이니 초보자들은 당연 독수리타법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방법도 숙달하기 나름이어서 어떤 사람은 독수리 타법으로 300타 가까운 굉장한 타수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단순한 방법이기에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사람들하고 대화하면 보통 이렇다.

‘두 손가락으로 그만 치고 이젠 열손가락으로 차근차근 연습해라, 그래야 늘지’

‘나 해봤는데 아무래도 이게 편해. 타수도 이정도면 되고, 열손가락으로 쳐봐야 너무 느려서 답답해서 못하겠더라고.’

‘그래도 두 손가락은 한계가 있으니깐, 지금이라도 열손가락으로 제대로 치는 거 연습해 그게 평생 도움이 될거다.’

‘어쨌든 난 이게 편하다니깐. 너한텐 그런지 몰라도 난 이걸로도 하나도 안불편하고 다 할 수 있어.’

이런 사람들을 만나서 답답함을 느껴보신 일이 있는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독수리 타법으로 타자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고수하고자 하는 독수리 타법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 변화를 꾀한다는 건 이런 어려움이 따른다. 익숙한 것에 우리는 안주하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의 두려움과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때 주어지는 어려움으로부터 인내하는 과정을 거치면 우리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개구리가 더 멀리 뛰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움츠러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 움추림을 견디지 못한다면 더이상 앞으로 뛰어나갈 수 없다. 멀리뛰기 위해서 움츠려야 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인내와 적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인내와 적응은 미래의 변화된 나, 변화된 공동체를 바라볼 수 있는 비전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 비전은 혼자만의 예상으로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한 사전 연구와 계획,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탈북형제 진주일의 시

혼자 살지 말아라 행복하지 말아라
네가 사는 이 순간도 너희 형제 죽어간다.
왕의 사랑 받으니 외면하지 말아라
이 민족의 아들임을 부디 잊지 말아라
아빠 엄마 다 죽고 너만 살아 뭣하랴
잠잠하지 말아라 외면하지 말아라
네가 외쳐 살아나면 너도 사려니와
침묵하면 살아나도 너는 죽으리라

죽음의 압록강을 넘어 온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그리스도 왕후 너 에스더여
이 민족을 위하여 울부짖으라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걸고 외쳐라
시체된 이 민족 살릴 때까지
나의 왕 그리스도 손댈 때까지

혼자 웃지 말아라 기뻐하지 말아라
네가 웃는 이 순간도 너의 겨레 울고 있다.
왕의 품에 안겼으니 잠들지 말아라
이 민족의 딸임을 부디 잊지 말아라
갈라진 아빠 엄마 백발되너 기다린다
잠잠하지 말아라 잠들지 말아라
네가 외쳐 하나되면 너도 살려니와
침묵하면 통일되도 너는 죽으리라

허리 잘린 겨레 중에 네가 뽑힌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그리스도 왕후 너 에스더여
이 민족을 위하여 울부짖으라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걸고 외쳐라
꺾여진 이 민족 이을 때까지
나의 왕 그리스도 붙들 때까지

혼자 서지 말아라 일어나지 말아라
네가 섰는 이 순간도 너의 동포 엎드렸다
왕궁에 잇으니 안심하지 말아라
이민족의 남아임을 부디 잊지 말아라
동방빛난 예루살렘 언제면 되랴
잠잠하지 말아라 안심하지 말아라
네가 외쳐 우뚝 서면 너도 살려니와
침묵하면 일어서도 너는 죽으리라

하늘나라 왕궁에 들어간 것이
이 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

그리스도 왕후 너 에스더여
이 민족을 위하여 울부짖으라
죽으면 죽으리라 목숨걸고 외쳐라
시체된 이 민족 살릴 때까지
나의 왕 그리스도 손댈 때까지


—————————————–

갈라준 홍해도 잊어버렸나이다
구름기둥 불기둥도 안보고 있나이다
만나도 제것이라 우기고 있나이다
생명의 빛발도 손으로 막나이다

오 주여 참으로 슬프도소이다
이 민족이 인생으로 우상을 섬기니
눈이 없는 이 백성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렇지 못할진대 주님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영영 지워버려 주옵소서

리별이 피엉긴 두만강이 우나이다
실향엄마 백골깊은 한강이 우나이다
평양의 예루살렘 어디로 갔나이까
성전에서 내리몰려 50년이 넘나이다

오 주여 참으로 슬프도소이다
이민족이 아직도 둘이 되어 다투니
패괴한 이 백성 하나로 뭉치소서
그렇지 못할진대 주님 품안에서
나를 영영 내쫓아 주시옵소서

어찌하여 헤어져 죽지 않았나이까
엄마 손에 이끌려 걸음마를 떼우니
금송아지 발아래 엎드리게 하나이다
영웅을 사모하는 꿈을 꾸더니
금송아지 노래를 부르게 하나이다
인생의 바른도리 찾으려 하나
금송아지 만세를 지르게 하나이다
이 민족의 딸임을 외치려 하니
금송아지 딸이라고 나팔불게 하나이다
토막난 저 땅을 바라보려니
금송아지 철조망이 꽁꽁 묶나이다
금송아지 염통을 발가내더니
출애굽의 구세주요 참신이라 하나이다
금송아지 제단을 찍으려하니
무지한 단두대로 끌고 가나이다

생명중에 하필이면 인생이니이까
인생중에 하필이면 태어났나이까
태어나서 하필이면 약자이니이까
약자중에 하필이면 한나라이니이까
한나라중 하필이면 여로보암 발아래며
그 발아래 하필이면 평양이니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