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4:3-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 4:3-4)

우리가 율법 아래 있었으나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명분을 얻게 된 것일까요?

말씀에 보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사 율법 아래 나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아들이셨는데 율법아래 스스로 처하심으로서
우리는 반대로 율법아래서 하나님의 아들로 된 것이라고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 율법의 종

반대로 우리는
율법의 종-> 하나님의 아들

이렇게 바꿔치기 당함으로서 우리의 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게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 아들삼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주시는 방식을 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속량하신 방법이 너무나도 놀랍고도 오묘했습니다

충고와 욕

충고와 욕은 종이한장 차이다.
어떤 내용을 기분 좋게 얘기해주면 그것은 충고이고
그것과 똑같은 내용은 기분나쁘게 얘기하면 그것은 욕이다.

그래서 어떤 욕을 듣더라도 충고로 바꿔들을 수 있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다.

고후 12장

내가 부득불 자랑할찐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말씀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나의 못난 점 죄에 빠지기 쉬운 나의 모습을 자랑하겠다는 말씀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나 어제 죄지었다. 나 약하지?” 하며 자랑한다는 말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우습지만요. 도대체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더 보기 “고후 12장”

사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이사야서 34장 16절 말씀으로서 성경의 충족성을 이야기 할때 자주 거론되는 말씀
입니다. 그러나 본의는 다릅니다. 이 구절에서 과연 ‘이것들’이라는 말씀이 과연 여호와의 책을 말하는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17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더 보기 “사 34:16”

수건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나자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그 빛이 없어졌을 때도 수건으로 얼굴을 계속 가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얼굴에 더이상 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우고 싶었던 것이다. 내 수건도 겹겹이다.

98.12.24
모세가 쓴 수건에 대한 저의 글은 저의 상상속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니, 어느 책에서 읽은 듯한 내용이 생각났고 그저 저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기에 그런 글을 쓰게 되었죠.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더 보기 “수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