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 ‘산상수훈’


예수님은 마치 산처럼 위대해 보인다. 그 밑에 사람들은.. 가난하고, 애통하고, 핍박받는 자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가난한 자들, 애통하는 자들, 마음이 온유한 자들, 핍박받는 자들에게 복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천국복음의 진수였다. 그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일깨워주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 겸손한 자들의 것이다.

그림의 구도가 특이하다. 예수님을 크고 안정되게 꽉찬 삼각형 구도로 그렸다. 배경에 흐릿한 산들을 그려넣어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하고 있다. 표정은 너무나 평범하면서도 자애롭다.

고흐, ‘영원의 문턱에서’


자기 작품 속에 한 사상을 담는 것이 화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 ‘영원의 문턱에서’에서 나는 밀레가 믿었떤 무엇인가 ‘높은 곳에 있는 것을 표현하려 하였다.

즉 하나님의 존재와 영원이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입증해 보이려고 하였따. 화덕가 모퉁이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작은 노인을 감동 깊게 표현함으로써, 그 노인은 깨닫지 못하겠지만 영원에 가 닿은 것을 분명하게 그려보려 하였다. 동시에 이 그림는 벌레에게는 있을 수 없는 무엇인가 고상하고 위대한 것이 있다…. Uncle Tom’s Cabin 에 보면 불쌍한 노예가 곧 죽을 것을 알면서 마지막으로 아내와 함께 앉아서 회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구절이 있다.

난폭한 대홍수처럼 몰려 오라
슬픔의 폭우여 쏟아져내려라
다만 나는 내 집에 평안히 이르리라
내 하나님, 내 하늘나라, 내 모든 것이여

이것은 참으로 그 어떤 신학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화덕가에 앉아 있는 가난한 벌목공, 아니면 거친 들판의 농부, 아니면 광부마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집에 있다는 느낌, 그곳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영감의 순간이다.

(1882년 11,12월, 헤이그, 고흐의 편지 #248, Letters 1:495)

고흐, 뒤집어진 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흐의 그림이다.

뒤집혀져 있는게

처음 탁 보는 순가 게의 모습이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생각했다.

바둥바둥대는 게의 모습.

조금 지나자 안쓰러워졌다.
웬지 불쌍하고 안되보였다.
도로 뒤집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그럴 수 없으니
그림속에 갇힌 게는 영원히 뒤집혀져 있어야 한다.

고흐는 게를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스스로를 뒤집을 수 없는 게의 모습은 연민과 고독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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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하나님 앞에서의 나의 모습도 이 게와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 뒤집어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나라는 존재일 것이다.

고흐는 신앙의 눈으로 이 게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루오, ‘성안’


정말로 숨이 멎는 그림이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과 경외심이 들도록 만드는 그림이다..


저 큰 눈동자와 굳게 다문 입술로 응시하는 모습이 나에게 무언가 말씀하시는 것만 같다..


성안..


누군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그리스도의 땀을 닦아 주었는데 그 세마포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자 기적이라고 하며 그 얼굴을 성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정말 머라고 표현하기 힘든 대단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