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스케스,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찾아온 예수’


좋은 내용의 글이어서 여기에 옮겨 실었습니다. 도계성산교회 조덕근 목사님의 글로 홈페이지에서 퍼 온 것임을 밝힙니다. (http://dokyesungsan.net)

마르다는 건장한 팔뚝으로 마늘을 찧고 있다. 마늘을 까서 넣어야 하는데 채 다 까지 못한 마늘이 작은 절구 주위에 널려 있다. 눈을 멀뚱히 뜨고 마르다의 요리를 기다리는 생선들과 막 껍질을 벗겨놓은 계란이 놓여 있다.

  저쪽에 있는 예수님은 의자에 앉아계시고 마리아는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마르다는 앉지도 못하고 서 있다. 약간 앞으로 기운 불안정한 자세다. 오른손은 절구공이를 잡고 왼손은 절구를 완전히 감싸 쥔 것이 아니라 슬쩍 잡고 있다. 절구공이를 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다. 오른손으로는 힘있게 내려치지만 왼손이 절구를 꽉 붙들어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마늘이 튀려고 한다.

  이 그림은 누가복음 10:38-42을 형상화하고 있다.

  저쪽의 마리아는 숄 같은 것으로 윗몸을 감싸고 있는데 마르다는 행주치마로 아랫몸을 감싸고 있다. 마리아는 머리를 풀고 있는 반면에 마르다는 헤어밴드로 머리를 질끈 동여맸다. 일을 하는데 머리털이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마리아는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옷 속에 손을 감추고 있는데 마르다는 팔뚝을 걷어붙이고 있다. 예수님과 마리아가 있는 쪽은 밝고 이쪽은 어둡다. 그런데 생선과 계란은 유난히 빛나고 있다. 마르다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르다 옆에 서서 손가락으로 마르다의 팔뚝을 찌르듯이 하면서 마르다에게 뭔가 말하는 노파가 있다. 저쪽 마리아의 뒤에도 노파인지 젊은 여잔지 분명치 않지만 한 여자가 서 있다. 그녀도 역시 마르다에게로 팔을 뻗치고 있다. 마치 마리아를 뒤에서 안으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두 여자는 무엇일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42절). 마리아는 그 뒤에 있는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마리아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마리아 뒤에 있는 여자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다. 마리아가 이긴 것이고 뒤에 있는 여자가 진 것이다.

  마르다 뒤에 있는 노파는 매우 침착하게 여유만만하게 마르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반면에 마르다는 불안정하다. 마르다의 윗옷 어깨부분과 팔목 부분에 주름이 많이 져있다. 마르다의 불안정한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르다의 표정은 금방 울분을 토할 듯하다. 손으로는 마늘을 찧고 있지만 눈은 절구쪽이 아니라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그렇다고 뒤에 노파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노파의 시선은 정확하게 마르다를 향하고 있다. 마리아는 뒤에 있는 여자에게 이겼지만 마르다는 뒤에 있는 노파에게 졌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40절). 일에 전념하지 못했다. 마르다가 일에 전념했으면 일하기에 바빠서 ‘예수께 나아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절) 라고 말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마르다는 ‘마음이 분주’했다. 마음이 갈래갈래 나뉘어졌다. 마르다는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었다(41절).

  마르다와 마리아의 뒤에 두 여자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두 여자를 그려넣음으로 마리아와 마르다의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을 시각화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 그림을 해석하는 전문가들은 ‘예수의 방문이 거울 속에 비친 이미지로 나타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르다가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본 모습이 마리아가 예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었다는 말인데……?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통로를 제공해준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우리 자신의 두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저렇게 다소곳이 앉아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천상의 말씀을 듣고 싶은 것이 나의 진정한 소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할 일이 산적해 있고 일이 많다보니 손은 재게 놀려지지 않고 절구는 자꾸만 흔들리고 마늘 조각은 튀고 생선은 나를 비웃듯이 멀뚱한 눈으로 입을 비쭉거리고 있다. 다 떨쳐 버리고 저리로 가지도 못한다. 현실은 마르다 뒤의 노파처럼 집요하게 나에게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나는 저쪽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음식을 다 만들고 가기 위해서 음식만드는데 열중하지도 못하고 ‘어쩔까!’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마르다가 있는 쪽과 마리아가 있는 쪽 사이에는 심연처럼 검은 어둠이 놓여 있다. 양쪽으로 왔다갔다하면서 그림을 보다보면 그 중간의 어둠에 눈이 가게 된다. 마르다가 있는 현실과 마리아가 있는 이상 사이의 그 어둠의 어디쯤에서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2000년 8월 29일 조덕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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