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엠마오의 그리스도’


Supper at Emmaus


렘브란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이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그림. <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그날, 예수를 따르던 이들 중의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11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길을 가면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가까이 가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막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대체 무슨일이 있길래 그다지도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 그러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그들 중에 글로바라는 사람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살면서도 지난 주간에 일어났던 그 끔찍한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예수께서 물으셨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께 있었던 일이오. 그분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놀라운 일들을 베풀어 보인 예언자요, 권능 있는 선생으로 높이 존경을 받는 분이었소.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붙들어 로마 정부에 넘겨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였소.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이 난국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생각해 왔소. 이런 일이 있은 것은 사흘 전이었지요.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오.
그분을 따르던 우리 동료들 가운데 여자들 몇이 오늘 새벽에 그분의 무덤에 갔다가 그분의 시신은 보이지 않고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천사들만 보았다는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소.
그래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달려가 보니 말한 대로였고 예수님을 보지 못했다는거요.”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그렇게도 미련한 자들이냐! 너희는 예언자들이 성경에 기록한 모든 것이 그렇게도 믿어지지가 않느냐!
그리스도가 영광스런 자리에 앉기 전에 이 모든 고난을 당해야 한다고 예언자들이 명백하게 예언해 두지 않았느냐?”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모세의 글부터 시작하여 예언자들이 기록해 놓은 구절들을 일일이 인용해 가면서
그 구절들이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목적지인 엠마오에 거의 다다랐으나 예수께서는 더 멀리 가시려는 듯이 보였다.
그래서 그들은 날이 저물었으니 그 밤을 자기들과 함께 묵어 가시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들이 식탁에 앉자 예수께서 떡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 때에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 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예수는 그들 앞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현대어 성경 눅 24장 13-31절)


이 그림은 저녁식사를 막 시작하는 찰나를 그리고 있다. 예수님의 손에 있는 것은 빵으로 보인다. 성경에는 빵을 떼어서 그들에게 줄 때에 그들이 눈이 열려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고 나온다. 다음은 윌터 엘 나란의 해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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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란의 렘브란트(1606-1669)처럼 철저하게 자기의 그림을 성경 중심으로 그린 화가는 없다.
그의 수많은 그림과 조각은 신구약의 장면과 인물을 취급한 것이다. 성경은 그의 주요한 영감이요,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기 위한 도전이었다.
당시의 신학적 논쟁에 별로 관심이 없는 렘브란트는 구세주 자신 위에 자기의 신앙을 두었다.
그는 예수를, 낮은 자들 사이로 겸손히 다니시며,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시고,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사랑으로써 죄인에게서 죄의 짐을 벗겨 주시는 인자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가장 감명 깊은 걸작중의 하나인 엠마오의 저녁에서 보여 주는 예수이다.
이 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들은 존경하는 선생님의 비참한 죽음과 빈 무덤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그가 주님이신 줄 몰랐으나 그는 그들을 만나 그의 죽음과 부활의 뜻을 설명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의문을 풀어주셨다.


저녁 때 엠마오에 도착하자 그들은 예수에게 머물러 식사를 같이 하시자고 청하였다.
그가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실 때 그들은 눈이 열려 그가 누구이신 줄 알게 되었다.


그의 축사하시는 음성이 이 길쭉하고 침침한 방에 아직도 울리고 있다.
마치 그 자리에 얼어붙은 사람 모양으로 제자들은 좋은 주님을 바라다본다. 그의 온유하신 몸 전체가, 흑암의 심연을 꿰뚫는 것 같은 내부적 빛으로 빛난다.
이처럼 그들과 마주앉아 성만찬의 떡을 떼시며 무한한 위로를 주시는 그를 그들이 얼마나 사랑하였을까!


오늘도, 어디서나,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는 교제를 통해서 가까이 계시고 위로하신다.
부활절의 교훈의 중심은, 즉 살아 계시사 언제나 함께 하시는 그의 은혜를 통해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그의 말씀의 진리를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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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9년의 이 그림<아래>은 더 극적이다. 예수님의 얼굴 근처에서 빛이 감돌고, 예수님을 알아보는 찰나의 순간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놀라는 사람의 표정
그리고 여기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러나 약 20년 후에 그린 위의 그림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빛과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묘사에서 훨씬 위대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고흐, 성서가 있는 정물


고흐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고흐는 아버지의 죽음을 추도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
꺼진 촛불을 죽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이사야를 펼시고 있다.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옆에 있는 책은 에밀졸라의 삶의 기쁨.. 아버지에 대한 저항의식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이 그림에 고흐 자신의 기독교와의 단절을 결심한 의도가 있다고 한다.

그의 내면의 알지 못하는 고독감은 하나님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일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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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내가 고흐라는 사람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을 때 한 감상이다.

어떤 책은 이 그림을 이렇게 말한다.

이 그림은 고흐가 성서를 존중하고 있음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이사야 53장 고난받는 종의 노래가 펼쳐있고, 그 옆에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이 놓여있다. 얼른 보아도 고난 가운데 내재한 삶의 기쁨을 그린 것이 분명하다.

미술평론가들은 최근까지도 이 그림에 대하여 고흐의 아버지가 죽은 뒤 고흐는 성서와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을 분명히 대조시킴으로써 아버지를 자유로이 비판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오히려 고흐가 가졌던 전통적 과거 신앙(성서)와 현재 자기의 관심사인 근대 문학(에밀 졸라)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둘을 종합하려 한 것을 상징하고 있다. 근대 문학이 성서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를 근대문학으로 보충하려는 것이다. 만일 성서를 졸라로 대치하려 했다면 닫힌 성서를 작게 그리고, 열려있는 삶의 기쁨을 성서보다 더 크게 그렸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흐는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과 에밀 졸라의 삶의 기쁨에 나오는 주인공 폴링을 연결시키고자 하였다. 일찍이 고흐가 탄광촌의 광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과 ‘슬픔의 사람’이요, 모든 고되고 힘든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고 설교하던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화가가 된 뒤에도 여전히 숭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884년10월 고흐는 예수를 가리켜, ‘어느 누구도 아닌 화가로서… 산 몸 안에서 일하는 최고의 미술가’라고 하였다. 특히 고흐는 화가인 에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생 레미 요양원 시절에 그린 삐에따에 나오는 예수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그려 넣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성서에 이끌리고 있는지 넌 아마 잘 모를 것이다. 나는 매일 성서를 읽는다. 성서말씀을 내 마음 속에 새기고,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는 말씀에 비추어 내 삶을 이해하려 한다.’ – 1877년,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The Parable of the Blind Leading the Blind, 1568, tempera on canvas, Galleria Nazionale at Naples


– 미술평론가 노성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 무슨 일일까? 한 무리 거지 떼가 겨울 스산한 들녘을 가로지른다. 모두 앞 못보는 소경들이다. 전부 여섯. 이 세상의 노동과 수고를 요구하는 날수와 같다. 이들은 마을을 뒤로하고 떠난다. 따뜻한 밥이라도 한 술 얻어먹었을까?
날을 도와 이웃 마을로 옮겨가는 길이다. 버젓한 큰길은 갈 수 없는 신세다. 마을 사람들 눈에 띄었다간 재수 옴 붙었다고 돌팔매를 맞을 테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는 불구자들이 천대를 면치 못하던 시대였다. 발길 드문 뒷길이 오히려 속 편하다. 그러나 뒷길이 노상 그렇듯이 눈 밝은 사람도 마달 위험이 도사렸다. 좁기도 좁지만 가파른 둑방길 좌우로 얼음처럼 차가운 도랑이 흐른다. 자칫 헛발질하는 날엔 영락없이 서리 맞은 배추꼴이 되고 만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속담을 좋아했다. 지금도 세상에서 속담이 제일 흔한 나라다. 브뤼겔은 속담을 붓끝에다 묻혀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다. 글과 그림의 구별이 따로 없던 때였다. 브뤼겔은 붓으로 어처구니없는 세태를 비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사상을 말했다. 섭정 시대 네덜란드 사회는 자못 으스스한 분위기였다. 솔직하게 속을 터놓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말 한마디에 진실이 뒤집히고 이웃이 원수가 되기도 했다. 이럴 때 속담 한 마디는 한 잔 술처럼 아픈 생채기를 아물리는 처세였다. 속담은 아킬레스의 창날처럼 상처를 내기도 하고 아물게도 하는 힘이 있었다. 따끔한 교훈과 따뜻한 격려를 한꺼번에 담는 재치가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은 앓듯이 내뱉는 속담 한 마디에 부끄러운 역사와 말 못할 진실을 담았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는 없다. 주린 이가 주린 이를 채우거나, 병든 이가 병든 이를 낫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불의가 정의를 일으키지 못하고, 거짓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미움이 사랑을 피워내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다.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건 그림에나 있는 일이다. 전도된 세상, 바보 배를 타고 가는 바보 세상에나 있는 일이다.


마태복음 15장을 보자. 눈먼 길잡이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을 알고 이렇게 비유를 던진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에 빠진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다.”


브뤼겔의 그림은 성서 이야기를 베꼈다. 교회 뾰족탑이 그림 복판에 솟아 있다. 성서의 관점에서 소경은 죄인이다. 세상 살아가는 데 필요한 으뜸 덕목이 밝은 눈을 가진 ‘슬기’(prudentia)라면, 그 반대말 ‘맹목’은 어리석음(imprudentia)의 표본이다. 소경을 믿고 따르다가는 필경 구렁에 빠지고 만다. 그러니 ‘하나님말고는 아무도 믿지 말아라’는 교훈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속담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거짓 교사를 겨냥한 비난에서 나왔다. 예수는 또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통해서 눈먼 세상을 일깨운 일이 있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눈을 뜨게 하신 예수의 기적 이야기를 육탐에 눈멀어 영혼의 눈을 앗긴 ‘눈뜬 소경’에 대한 비유로 바꾸어 읽었다. <이코놀로지아>를 쓴 체사레 리파도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수의 기적 이야기는 이 세상 눈뜬 소경들을 인도하는 등불로 해석했다. “내 아버지가 심지 않으신 것은 모두 뽑힐 것이다”라는 예언은 실명의 저주로 읽었다. 소경의 실족은 교회의 등불을 외면하는 이교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브뤼겔의 그림에는 소경 여섯이 나온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세상 무대를 건넌다. 첫째 소경이 먼저 웅덩이에 빠졌다. 그가 끼고 다니던 악기도 박살났다. 둘째도 덩달아 비틀거린다. 눈두덩이 움푹하다. 누군가 그의 눈을 후벼팠다. 셋째도 걸음을 가누지 못한다. 눈이 흰자위를 뒤집었다. 흑내장이다. 넷째는 각막백반. 소경 가운데는 나면서부터 신의 은총을 여읜 사람도 있지만, 제가 지은 죄값으로 눈알을 뽑힌 사람도 있다. 셋째 소경은 멈칫하는 순간 교회를 올려다본다. 저 멀리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교회는 첨탑을 뽐내며 어리석음의 구렁에 실족한 죽음의 행렬을 내려다본다. 넷째 소경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곧 닥칠 일을 보지 못하는 건 눈뜬 사람도 마찬가지다. 소경들은 하나같이 엉터리 예언자처럼 지팡이를 들었다. 무지와 거짓은 둘 다 지옥으로 직행하는 무거운 죄악이다. 길 잃은 인도자를 따라서 여섯 소경 모두 끈 떨어진 염주처럼 줄줄이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이다. 구렁텅이에는 일곱 가지 악덕이 우글댄다.


브뤼겔은 소경 여섯을 길게 펼쳐진 넓은 가로 무대에 배치했다. 지평선은 높이 끌어올렸다. 이들은 걸인, 순례자, 나그네 차림이다. 세상의 무대를 지나가는 이들의 행렬은 해골들이 서로의 뼈를 맞잡고 추는 죽음의 무도를 닮았다. 소경들의 머리를 사슬로 묶어 보면 왼쪽 지평선 부근부터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해서 차츰 오른쪽 화면 모서리로 곤두박질친다. 지평선과 소경들의 행렬은 다른 방향이다. 그림 속의 큰 동선을 두 개 끄집어낸다면 지평선과 사선이다. 이 둘은 그림 왼쪽 귀퉁이에서 시작해서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브뤼겔의 그림이 대개 그렇듯이 하늘 꼭지에 눈을 두고 내려다보면, 그림 속 등장인물들은 자기도 모르는 커다란 운명의 수레바퀴에 실려서 서서히 회전한다. 그렇다면 소경들의 비극은 단지 그들의 불행이 아니라 눈뜬 소경들이 타고 있는 바보 배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아니면 섭정기 네덜란드의 암담한 운명에다 성서의 비유를 씌웠는지도 모른다.


그림 왼쪽 아래 귀퉁이에는 마른 관목 한 그루가 을씨년스럽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는 ‘플루토의 나무’ 또는 기독 도상에서 자주 나오는 ‘사망의 나무’다. 반대편 오른쪽 귀퉁이 여울가에는 풀꽃이 한 송이 피었다. 붓꽃이다. 기독 미술은 꽃잎이 칼날처럼 생긴 붓꽃을 덕목의 꽃말로 읽었다. 웅덩이에 빠진 첫째 소경은 팔을 들어 붓꽃을 더듬는다. 사망의 계곡에서 구원의 향기를 맡았다.


그림 밖을 내다보는 이가 있다. 흰 고깔을 쓴 둘째 소경이다. 그는 우리와 눈길을 맞추면서 외친다. 실명의 눈짓으로 삶의 헛된 가치를 증언하고 죽음의 행렬에 따라 붙으라고 초대한다. 브뤼겔은 빛과 그림자를 움푹하게 패인 눈두덩에 고루 발라 두었다. 부재가 존재에 대해 이처럼 사무치는 견인력을 가졌던 적은 드물었다. 성서를 설교하는 그림 속의 안내자가 이처럼 공허한 눈빛을 소유했던 적도 없었다

벤베누토 첼리니, ‘그리스도’

사용자 삽입 이미지


1556-62년경.
대리석, 높이 143.5cm. 스페인. 에스코리알.
산 로렌초 엘 레알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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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계로 와서 또 하나의 즐거운 일은 도계도서관을 찾는 일이다. 그곳에 가면 값이 비싼 커다란 화집이 꽂혀 있다. 나는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빌려다가 읽고 또 본다. 바쁠 것도 없으므로 반납기간을 한 주간 더 연장해가면서 곁에  두고 내 책인 것 처럼 읽고는 다시 도서관에 보관해놓는다―마치 내 책인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림 읽기에 관한 책들도 곁들여서 읽어내려간다. 역시 천천히, 천천히 읽는다. 미술에 관한 이론서 한 권과 화집 한 권을 대출해서 연장기간까지 2주간 동안 틈틈이 내 영혼을 시원하게 하고 맑게 한다. 그래서 어줍잖은 ‘그림 읽기’도 시도해 볼 염량을 가져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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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보면 좀 당혹스러운데–그래서 나도 괜히 도서관 얘기를 늘어놓고 있나–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난감하다. 전혀 익숙치가 않다.  예수 그리스도-십자가-하나님의 아들-구세주가 도저히 이 적나라한 나체하고는 연관이 되지 않는 듯이 보인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우리들을 외식적인 신앙으로 이끌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벌거벗은 채로였다. 예수님의 옷은 로마 병정들이 가져가 버렸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한복음 19:23-24). 옷을 빼앗긴 예수님은 당연히 벌거벗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림이나 조각들을 보면 한결같이 허리부분을 천으로 가려놓았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본 모습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위선적인 신앙을 강요했던 것이 바로 이런 그림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예수님이 참 사람이셨고 우리를 위하여 ‘수치’를 당하셨다면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당하신 그 수치를 절실하게 깨달을 때에라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보던 그림이나 조각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수치]을 놓치게 하였다. 마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끼어들어서 경건의 탈을 덧씌우면서 우리를 분리주의자[바리새인]로 만들어 버렸다. 감히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그렇게 그리겠는가? 하는 경외의 마음으로 했겠지만, 그 처음의 마음과는 너무도 먼 곳에 와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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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본 것은 데이비드 핀이라는 이가 지은 <<조각 감상의 길잡이>>라는 책에서였다. 역시 도계도서관에 있는 책이다. 이 저자는 이 조각을 힘들게 촬영했다고 적고 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또 다른 훌륭한 작품으로는 첼리니가 흰 대리석을 쪼아 만든 그리스도의 누드상이 있는데, 그것은 현재 스페인의 에스코리알(Escorial: 마드리드 북서쪽에 있는 유명한 건축물-역주)에 보관되어 있다. 나는 이 작품과 좀 특이한 인연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작품이 16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건너왔을 때, 스페인의 국왕은 적나라한 그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다 자신의 스카프를 조각의 허리 부분에 묶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항상 흰 천이 정갈하게 허리에 둘러져 있게 되었다. 언젠가 나는 첼리니에 관한 책에 실을 사진을 찍기 위해 에스코리알에 가서 허락을 받은 다음, 그 작품이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한 작은 성당 안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그리스도의 허리에 걸쳐 놓은 천 조각을 보고는 나를 안내했던 사람에게 내가 사진을 찍을 동안만이라도 그것을 좀 치워줄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은 그럴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마드리드 시의 관계 부서를 찾아가 문의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촬영 장비들을 준비하고 다른 부분들의 사진을 먼저 찍고 있을 동안 빨리 좀 그렇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사람이 문의를 하러 떠났고 대신 자리를 지킬 다른 사람이 한 명 불려 왔다.
  삼십 분 가량 지나자 작업복 차림의 신부님 한 분이 총채로 이곳 저곳의 먼지를 털어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그리스도상 앞으로 와서 그 천 조각을 걷어 내고는 조각 전체를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기뻐서 그분에게 내가 사진을 찍을 몇 분 동안만 그것을 그대로 치워주실 수 없겠냐고 부탁드렸다. 그분이 쾌히 승낙을 해주어서 그 작품이 지닌 본래의 모습 그대로를 몇 통의 필름에 담을 수가 있었다. 내가 촬영을 마치자 그 신부님은 천 조각을 원래 자리에 다시 둘러 놓고는 총총히 그곳을 떠나셨다.
  이윽고 처음의 그 안내인이 되돌아오더니 책임있는 관계자들과 연락을 해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작품의 누드 상태로는 촬영 허가를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미 내가 필요한 사진을 다 찍었다느 사실을 알게 되자 그 사람은 몹시 화를 냈다. 내게 그 사진들을 폐기시키겠다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크게 혼날 줄 아시오!”라고 겁까지 주었다. 좀더 지위가 높은 한 관리는 불법적인 원판들을 확실히 없애기 위해 내 필름들은 스페인 정부의 관계 당국에 의해서만 인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단 한 장의 사진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텼는데, 만일 우리 집사람이 기지를 발휘하여 구해 주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체포까지 당할 뻔했다. 아내는 내가 대부분의 필름들을 이미 안전하게 치워 두었다는 것을 알고는 카메라에 남아 있는 필름만 꺼내서 그게 전부인 양 주어 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귀띔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듯이 일부러 더 큰 제스처를 쓰며 나를 못살 게 군 그 사람에게 필름을 넘겨 주었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웃었고, 우리는 풀려났다.  (데이비드 핀 지음 / 김숙·이지현 옮김 <<조각 감상의 길잡이>> (시공사, 1993), 77~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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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어떤 수치와 욕을 당하셨을까?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스캔된 사진 한 장으로도 뭔가 짚여오는 것이 있다.


<출처 : http://dokyesungsan.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