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마태를 부르심’


The Calling of St. Matthew, San Luigi dei Francesi, Rome


누가 마태인지 의견이 분분했던 그림…
내가 느끼기에는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저 사람이 마태인 것 같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되는 모양이다.


왼쪽 끝에 있는 사람은 얼른 돈을 숨기고 있고,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 제각각이다.


오른쪽에서 쏟아지는 빛이 가운데 앉은 사람의 얼굴을 향해 쏟아지고 그는 ‘저를 부르고 계십니까?’ 하고 묻고 있는 듯 하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왼쪽에서 돈을 숨기기에 급급한 사람이 안쓰럽다. 나라면 이들중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딕스와 종교(스크랩)

“인류근본의 주제들, 나는 그것들을 내눈으로 보기를 원한다”.

딕스의 이 신앙고백은 그가 그의 생애에 걸쳐 제작해 온 그의 우의적이고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를 준다. 그가 죽기 몇 년 전에 그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줄곧 그에게 해당되었던 일련의 문제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했는데, 우선 그의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즉흥적으로 녹음했고, 그 후 1963년에는 레코드로 제작되었다. 그는 이 녹음에 성경과 종교와 자신의 관계를 상세히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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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딕스, 십자가에 달리심 (The Death of Jesus)


이 이상 슬프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묘사한 그림을 본 일이 없다.

채찍에 맞아 찢어진 몸 정면을 응시하는 고통스런 표정. 어두운 배경. 슬픔에 찬 사람들의 표정.

오토딕스는 아름답게 묘사된 십자가 처형 장면을 거부하였다.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한스홀바인의 ‘무덤속 그리스도의 주검’ 맥락과 비슷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벨라스케스의 그림과 얼마나 다른가?

밀레, ‘만종’


The Angelus 1857-59 Oil on canvas 21 3/4 x 26 inches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들려오는 교회 종소리에 부부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성경에 나오는 어떤 인물도, 천사도, 나오지 않지만,
나는 밀레의 이 그림이 이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난 아마 이 그림을 보고 하나님을 믿었을 것이다.

그만큼 이 그림은 경건하고 엄숙하며, 따뜻하고, 때론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삶을 이토록 아름답고 의미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림이 또 있던가.

카라바조,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


The Conversion on the Way to Damascus, Santa Maria del Popolo, Rome

젊은 청년 바울, 굉장히 특이하면서, 난 이 그림이 바울의 회심을 굉장히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바닥에 납작하게 그려진 바울의 구도와 그 위에 쏟아지는 빛, 감고 있는 눈, 마치 상상처럼 펼쳐지는 그의 사도로서의 미래.

말, 마부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바울과 나는 알고 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을 대의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의 심리를 표현하려면 아마도 저런 무표정이 다른 것들보다 제격일 것이다.

위로 쭉 뻗은 양팔은 표정과 굉장히 대조적이다. 그는 표정이 변하지 않는대신 두 손으로 놀라움과 감격, 충격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