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의 그리스도’



Christ in the House of Mary & Martha, 1654-55,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베르메르 –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1654-55년경, <위>

그림의 내용은 예수가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을 방문했을 때를 묘사하고 있다. 언니 마르다는 식사준비로 바쁜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께 나가, 마리아가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주께서는 이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누가복음 10장 41~42)
이 이야기는 당시 네덜란드, 플랑드르, 이태리에서 유행했고. 특히 플랑드르에서 인기있는 주제였다고 한다. 베르메르는 이 주제를 그린 플랑드르 그림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특히 안트워프 화가 Erasmus Quellinus의 작품과 유사성을 지닌다.<아래>

두 그림을 비교해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베르메르와 Quellinus의 작품은 같은 주제이지만 내용은 다르다. 베르메르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같은 비중을 두었고, 그것은 굉장히 마르다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칭찬하시고 불평하는 마르다를 나무라셨다. Quellinus의 그림을 보면 그 느낌이 온다.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반면 마르다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와 마르다는 구원을 얻는 두가지 방편을 상징하고 있다.
마리아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는 것임을 상징하고 마르다는 구원을 얻는 방편으로서 행위를 상징한다.

Quellinus는 마르다는 그림의 중요인물에서 제외시켰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서 ‘구원은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얻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프로테스탄트들의 모토였다.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그는 개신교인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미술에는 그러한 프로테스탄트의 사상이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베르메르는 후에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동일하게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카톨릭은 믿음과 행위의 적절한 조화를 강조하였다.

어찌보면 카톨릭의 이러한 사상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올지 모른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히 논증하듯이, 의롭다함을 받는 방편으로서, 율법과 행위가 중요시 된다면 그리스도는 더 이상 무의미한 것이되며, 우리는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 이 믿음은 참된 자유를 가르쳐준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얼마나 강조하였는지 모른다.

그림 속에 당시 종교개혁의 두 교리가 다르게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굉장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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